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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교수(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현대 사회에서 도시와 공간은 더 이상 단순한 거주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다. 도시는 브랜드가 되었고 장소는 정체성과 이미지를 가진 상품으로 변모하였다. 특정 장소나 도시 공간을 상품처럼 인식하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미지를 개발하여 그 공간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방문자 또는 소비자를 유치하는 마케팅 전략이 바로 ‘장소마케팅’이다.
도시 브랜드의 구축, 관광객 유치, 투자자 관심 증대, 주민의 자부심 고취까지, 장소마케팅은 이제 지역발전과 도시 경쟁력 확보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장소마케팅의 개념과 배경
장소마케팅(place marketing)은 본래 기업 마케팅의 영역에서 차용된 개념으로, 특정 장소를 상품처럼 포지셔닝하고 홍보하여 고객(방문객, 관광객, 투자자, 신규 주민 등)을 유치하는 일련의 전략을 말한다. 이 전략은 마케팅의 4P(제품, 가격, 유통, 촉진) 개념을 공간에 적용함으로써, 장소를 ‘경험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예를 들어, 서울의 홍대는 젊음과 예술의 이미지, 제주도는 자연과 치유의 이미지, 부산의 해운대는 해양 관광의 이미지로 소비자에게 인식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나 행정구역을 넘어서서, 감성적·문화적 가치를 포함한 ‘브랜드’로 작동한다.
장소마케팅의 부상은 세계화, 정보화, 도시 간 경쟁 심화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가속화되었다. 도시가 경제적 주체로 나서야 하는 환경에서는, 더 많은 인구와 기업,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도시의 고유한 특성과 매력을 살려 브랜드로 구축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홍보함으로써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이다. 또한, SNS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장소의 이미지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촉매 역할을 하며, 장소마케팅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국내외 장소마케팅의 사례
국내에서 장소마케팅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는 ‘강릉’을 들 수 있다. 강릉시는 원래 전통적인 동해안 관광지였지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함께 도시 이미지의 전환을 시도했다. ‘커피도시’, ‘슬로시티’, ‘문화예술 도시’ 등, 새로운 키워드를 중심으로 마케팅 전략을 전개했고, 이는 젊은 층과 중장년층을 모두 아우르는 관광 수요를 창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강릉은 카페 거리, 안목 해변, 아르떼 뮤지엄 등, 감성적 공간을 적극 활용해 도시의 감성적 가치를 부각시켰다. 이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도시’로 인식하게 만든 주요 요인이 되었다.
국외 사례로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들 수 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건축물, 지중해의 분위기, 예술과 스포츠가 어우러진 도시 정체성을 통해 강력한 도시 브랜드를 구축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 재생과 글로벌 이미지 제고에 성공한 바 있으며, 현재까지도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관광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도심 전반에 걸쳐 ‘걷고 싶은 도시’를 지향하며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공 공간을 조성한 점은 장소마케팅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장소마케팅의 효과와 중요성
장소마케팅은 단순히 외부 방문객을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전략은 지역 주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하고 도시 거주자에게 삶의 질 향상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제공한다. 지역경제 활성화, 고용 창출, 부동산 가치 상승 등, 다양한 경제적 효과는 물론, 사회적 통합과 문화적 다양성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장소마케팅은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발굴하고 재조명함으로써, 무형의 자산을 유형의 성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전통시장, 골목, 오래된 공장과 창고 같은 공간은 장소마케팅을 통해 새로운 문화공간이나 관광지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이처럼 장소마케팅은 ‘재발견’의 과정이자 ‘재생산’의 전략으로 작동하며, 장소의 역사성과 현대성을 결합한 복합적 가치 창출을 가능하게 한다.
장소마케팅의 한계와 문제점
그러나, 장소마케팅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장소의 상품화가 과도하게 이루어질 경우, 본래의 지역 정체성이 훼손되거나, 지역 주민의 삶이 관광객 위주로 재편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서울의 익선동, 경리단길, 성수동 등은 장소마케팅을 통해 인기를 끌었지만, 임대료 상승과 상업화로 인해 원주민이 쫓겨나거나 지역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장소마케팅이 일회성 이벤트 중심으로 이루어질 경우,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단기적 홍보나 축제 중심의 마케팅은 잠시 관심을 끌 수 있으나, 장기적인 도시 브랜드 구축에는 한계가 있다. 실질적인 콘텐츠 개발, 도시 기반 시설 개선, 주민 참여와 같은 내실 있는 전략이 수반되지 않으면, 장소마케팅은 ‘겉치레’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SNS와 미디어 중심의 마케팅은 특정 장소에 대한 과잉 노출과 소비를 야기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관광객 과밀, 환경 훼손, 지역 사회 피로도 증가와 같은 문제도 함께 나타난다. 따라서, 장소마케팅은 단순한 ‘홍보 전략’이 아닌, 통합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 계획의 일부로 접근해야 한다.
장소마케팅의 미래와 방향
미래의 장소마케팅은 단순한 ‘장소 팔기’를 넘어, 사람 중심의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로 진화해야 한다. 지역 주민, 방문객, 행정기관, 민간 기업 등이 함께 협력하는 ‘참여형 장소마케팅’이 요구되며, 공공성과 상업성 사이의 균형 잡힌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장소마케팅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메타버스, AR/VR, 데이터 기반 분석 등은 장소의 경험을 가상으로 확장하고 맞춤형 마케팅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주목받는다.
또한, 장소마케팅은 문화, 환경, 사회적 책임 등, 다양한 요소와 융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친환경 도시, 문화 창작 공간, 커뮤니티 중심 공간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브랜드를 재편함으로써,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지속 가능한 도시의 모델로 발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결국, 장소마케팅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 과거와 미래의 연결, 공간과 시간의 연결을 통해 완성된다. 진정성 있는 콘텐츠와 스토리텔링,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역량이 장소마케팅의 성공을 결정짓는다.
장소마케팅은 단순한 도시 홍보가 아니다. 그것은 장소가 가진 가치를 발굴하고 그것을 정교하게 가공하며, 사람들에게 감동과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의 브랜딩’이다. 도시와 공간이 무한한 경쟁에 노출된 오늘날, 장소마케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 전략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장소마케팅을 위해서는 깊이 있는 지역 이해, 장기적 관점, 그리고 다양한 주체의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도시가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날까지, 장소마케팅은 더욱 진화해야 한다.
김성수(現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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