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팔십이라고 하지만 너무 젊으시다.
엊그제도 옅은 핑크 브라우스 차림으로 오셨는데 새댁처럼 고우셨다.
수업이 끝나고 인사동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을 먹자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마침 조순희 선생님께서 오셔서 합류했다.
요샌 인사동 사거리 제주미항을 자주 가는 편이다.
가면서 이민혜 선생님이 화양동에 가서 돈 엄청 벌어 오셨다고 저녁을 산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오정옥 선생님께서 내 옆으로 오시더니 살짝
"오늘 저녁은 내가 살 거야."
하시면서 눈을 찡긋하셨다.
와아! 오늘 저녁은 두 배로 먹어도 되고 두 번 먹어도 된다!
하여튼 영리하고 계산 빠른 나는 아주 비싼 걸 먹어야겠다고 맘먹었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뎌 음식이 나왔다.
물회, 고등어 구이, 막 그런것과 회무침 같은 게 나왔다.
여기저기서 맛있다, 냠냠 짭짭할 때,
내 전화벨이 울렸다.
김지영 선생이었다.
선생은 이틀인가 사흘인가 밤을 새우며 카페를 리모델링했다고 생색을 냈다.
김 선생은 그런 생색을 꼭 나한테 낸다.
옛날에 내가 컴맹일 때도 블로그 만드는 것, 아무나 못한다고 자기가 만들어 주고
엄청 생색을 냈었다.
한 삼 년은 나도 감지덕지 고마웠는데 어느 날,
내가 브로그를 만들 계기가 있었다.
블로그는 자판만 두드릴 줄 알고 한글만 읽을 줄 알면 3분 안에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땐 엄청 배반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진짜 땀흘려 노력한 것도 같았다.
그래서 존경을 바치고 또 사랑도 바치고 전화를 끊으려다가
지난 주 수요일, 오정옥 선생님께서 카페지기 김지영 선생에게 전화를 좀 걸어달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 나서 바꿔드렸다.
잠시 후 오정옥 선생님은 김 선생에게 점잖게 한 말씀 하셨다.
"그런데 김 선생, 카페에 들어가면 오른 쪽에 이름이 죽 뜨잖아? 그런데 왜 내 이름 옆에다만 가위 표를 했어요?
빨간 색으로 엑스 표시를 했잖아. 내 이름에만... 나 그거 기분 나빠. 카페지기가 빨리 지워 줘. 그러지 말고 지워줘요."
모두들 폭소를 터뜨리자 오 선생님께선 시끄러워 전화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하시면서
카페지기를 어르고 달래셨다.
이윽고 통화가 끝났을 때 친절하신 이민혜 선생님께서 설명해 드렸다.
그것은 본인의 이름을 스스로 지울 권한을 주는 것이어요.
그 가위표를 누르면 이름이 안뜨고 유령처럼 카페를 둘러 볼 수 있어요.
정직하게 질문을 던지시는 오정옥 선생님이 나는 너무 좋다.
아 참, 그날 저녁은 누가 산거냐구요?
지나가던 조순희 선생님께서 유령처럼
어느 새 계산을 끝내 버렸다.
첫댓글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어르신한테 무슨 큰 결례라도 했나해서 그날 잠도 못 잤네.
컴맹을 겨우 면했지만 아직도 컴미개인이라 그런 실수를 했답니다. 있을 수 있는 웃음거리죠.
저라면 혼자 꿍꿍 앓고 있었을 겁니다. ㅎㅎㅎㅎㅎ 제가 글 올리려고 했는데.. 전기침을 맞고 비몽사몽하는 중이라서...한발 늦었네요.
하하하 오정옥선생님은 제 후배 되십니다.
어머니 친구(?)를 후배로 두신 기분은?
정말 멋진 오정옥 선생님의 해맑은 미소가 그립기만 합니다.
아~~~~내가 조 쌤한테 밥 안 사줘도 굶어 죽을 일 없구먼.....그거이 바로 인덕이여.....오 정옥 쌤이 팔순....아~~애오개...오 선생님 작품이 맞죠? 그 때가....그 연세였으니 맞네여 ㅎㅎㅎ
선생님, 보고싶어요~ ^*^
다른 사람 글을 읽을 때는 답글 하나만 달랑있는데 제가 글을 쓸려면 세개가 달라 붙어있어서 아주 난감했지요. 누구에게 물었더니 답글, 수정, 삭제 그런거라고.ㅎㅎㅎ 오 선생님 파이팅.
하하하...
나도 그걸 첨 알았네. 조정은샘한테 컴맹이라 혼날만하지
우리 모두가 10년 전, 혹은 5년 전에는 다 컴맹이었더라구요. 지금도 사실은 컴푸터의 무한 세계를 따라 갈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우리 카페만 하루 두 번씩 들어 오시면 그 모든 원시적 어둠을 탈출할 수 있어요. 하루 딱 하나만, 실천해 보는 거예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하여. 그건 에세이스트 카페에 잠시 나오시기죠.
아주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시는 분이신가 보군요. 그렇게 살아가야하는데...
조그만 실수가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줄이야......종종 웃음거리를 던져드릴께요.
존경! 멋져요. 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