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편 유홍준 지음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장릉에는 다른 왕릉에서는 볼 수 없는 건물과 시설이 많이 들어섰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던 엄흥도의 ‘정려각’도 있고, 꿈속의 현몽으로 단종의 무담을 다시 갖춘 영월군수 낙촌 박충원의 기적비를 모신 ‘낙촌비각’도 있다.
그 중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건물은 장판옥이라는 제향 건물과 배식단이다. 이곳은 1791년 정조가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분들의 위패를 장릉에 모시고 매년 한식날 제향하라는 특명을 내려 세워진 것이다.
정조는 계유정란 때부터 단종이 사사될 때까지 그에 연루되어 죽은 억울한 인물을 조사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이에 신하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명하며 명단에 올릴 것을 진언했다. 이때의 일이 『정조실록』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그 결과 충신이 32인, 조사(관리와 선비)가 186인, 환자군노(환관과 군대 노비)가 44인, 여인이 6인, 총 286명이었다. 장판옥에는 이분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4개의 넓은 판이 위패로 모서졌다. 그래서 장판옥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해 3월 한식날 정조는 친히 비문을 짓고 예조판서를 보내 고유제를 지냈는데 장릉 위로 한줄기 서기가 일어나 축판의 작은 글씨를 촛불 없이도 읽을 수 있었으니 모두들 이는 단종의 혼이 감응한 것이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장판옥 위패에 새겨진 이름을 보면 안평대군, 사육신, 생육신 등 단종 애사의 정변 중에 희생된 이름뿐만 아니라 범삼, 석구지 같은 노비 이름과 아가지, 덕비 같은 여인의 이름들이 들어 있어 이를 읽다보면 어이없이 죽은 노비와 여인네들의 영혼까지 위로하는 그 자상한 마음 씀에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정조는 불의에 희생된 모든 분들에 대한 위로의 뜻을 이렇게 나타낸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유공자, 민주화운동 유공자를 매년 기리는 제단을 설치한 것이니 이 장판옥과 배식단은 조선왕조가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을 30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끝내는 찾아내어 기리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께는 사죄를 했다는 사실을 중언하는 자랑스러운 유적이다. 정조의 경륜과 치세는 이처럼 존경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