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향상될수록 인간의 삶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우주 개발도 현격한 진전을 이루게 되는 2020년쯤에는 지구상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2020년쯤에는 세균에대해 어느 정도 극복되어 인류가 병에서 해방되는 그런 세상을 예상했습니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유엔에 모여 세계 문제를 논의하고 힘든 이웃들을 위해 구호활동이나 도움의 손길을 적극적으로 펼 줄 알았습니다. 세계의 종교도 원숙미를 발휘해 타 종교를 배타시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그런 세계가 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1960년대 비틀즈의 존레논이 설파한 노래 <imagine> 가 2020년대이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재산을 가지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욕심부릴 필요도 굶주릴 필요도 없어요. 인류애만이 가득하죠. 상상해 보세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누면서 살아가는 모습을요. 나라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희생시킬 일도 희생당할 일도 없어요. 상상해 보세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속에 살아가는 모습을요." 물론 상상속의 세계지만 그래도 상당부분 이뤄질 것으로 보았습니다. 2020년쯤에는 세상 부조리는 해소되고 세계인 즉 지구촌 인류는 나름 살만한 세상속에서 자신들의 소망을 이룰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그날 지구촌 구성원들은 밝고 희망차고 서로를 존중하는 날이 오기를 기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그야말로 상상속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요즘 들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존레논의 노래처럼 극단적 평화주의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앞에서 언급한데로 뭔가 사람이 살만한 가치를 느끼고 그런 가치를 존중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존재할 줄 알았지만 그런 소박한 희망도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 뼈아프게 느낍니다. 당장 2020년부터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지구인들의 상당수가 희생됐습니다. 그 의학적으로 대단한 수준이라는 미국에서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해 시신처리를 제대로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지구촌에 휘몰아치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부를 많이 가진 나라들은 더욱 부를 늘리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세계의 부를 40%나 독차지하고 있다는 미국은 하늘 높은 줄 모를 과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와 식량으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미국에서 이제 캐나다를 내놓아라 멕시코도 흡수하겠다, 그린란드도 파나마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도 소유하기 위해 군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로부터 전쟁에 투입한 돈을 히토류 등 자원으로 700조 정도 갚으라고 협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얼마나 부를 축척하려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그 슬로건자체도 섬뜩합니다. 위대하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며 국민들을 골고루 평온하게 살게하고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위대한 것이지 나라의 부만 가득채운다고 위대해지는 것은 결코 아닌데 말입니다.
러우전쟁의 후유증이 지금 유럽을 초토화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그 원인제공을 누가 했는지까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러시아에게 나토의 동진을 엄격하게 통제하겠다는 약속을 내팽개쳐버리고 러시아 턱밑까지 나토군을 배치하려한 나토국들의 욕심도 문제지만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고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러시아의 만행도 용서받지 못할 행동입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 스스로 결정하라는 언급으로 유럽 각국은 부랴부랴 군비를 증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유럽도 미국의 방패뒤에 숨어 사실상 군비를 대폭 줄여 복지에 사용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복지에 관해서는 가히 세계에서 가장 존경을 받고 부러움을 받는 곳이 사실 유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군비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면 자연히 복지비용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난민수용을 나름 이웃국가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바라보았지만 경제가 하락하고 군비문제까지 터지자 이제 난민을 아주 혐오하며 미국처럼 추방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 성향을 주장하는 정당들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종교전쟁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동에서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중동은 종교적 화약고라는 별칭이 붙어 있습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갈등이 더욱 첨예화되며 종교전쟁 직전까지 가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불교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종교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그 교리는 그냥 자신들 종교안에서 또한 자신들의 사회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겨우겨우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의해 독립은 됐지만 찬탁 반탁으로 나눠져 혈투를 벌였으며 한국전쟁이라는 민족 최대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한국을 제외한 유엔군과 북한군에 의해 휴전은 되었지만 이승만 독재정권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시절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그당시 독재에 힘들어하던 한국민들의 아주 작고 보잘것 없었던 소형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존레논의 노래를 들으며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한국에 점진적으로 펼쳐진 민주주의는 나름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으며 성장했고 민주주의 모범국가라는 칭송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24년 12월 3일 이 땅에 내려진 비상계엄은 민주주의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묻는 계기가 됐습니다. 45년전으로 역사를 돌아가게 하는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금만 판단해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무비판과 극단주의적 시각으로 사태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일부 극단주의 세력의 준동에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라의 평화와 상식적인 운영은 고사하고 혼란과 무질서의 상황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는 것만 믿는 세태속에 좌절하고 소외된 계층들이 불확실한 시대를 참지 못하고 이른바 종결 욕구 발동에 의해 극단주의적 주장과 세력에게 자신들의 판단과 정신을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의 경제는 급하강하는데 나라의 경제는 중병에 걸렸는데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한 채 영양제만 투여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대수술이 필요하면 즉시 실시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눈치보고 이런 저런 사항을 곁눈질하며 정책을 추진하려니 배는 그야말로 산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경제의 불안정하고 우려스러운 것을 일일히 적시할 수도 없습니다. 너무도 많고 너무도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일부 지역의 아파트값만 유지하겠다면서 세계 경제 흐름도 무시하는 사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폭풍우속에 요트를 즐기는 일부 세력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냐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지금 미국도 유럽도 중국도 일본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타국도 그런데 우리도 할 수 없지 않느냐면서 자신의 임기안에 그야말로 최악의 엄청난 폭탄만 터지지 않기를 숨어 기도하는 태도에서 뭐가 향상되겠습니까. 비록 이 세상에 양지를 발견하기는 어려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양지로 가기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라도 쳐봐야 되는 시기 아닙니까.
2025년 2월 2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