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눈물나는 사랑은 싫은데..
왜 내 사랑은 항상 눈물나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온 몸이 꽁꽁 얼어버린 기분이었다.
으으. 이 집에 나와 천재영 단 둘 뿐이라니.
처음은 아니지만 그 공간이 천재영의 집이라는 사실만으로
내 맥박은 정상치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어쩔까나.”
한동안 거실 기둥에 서서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던 재영이가
한숨처럼 말을 내뱉으며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흘끔 본다.
“오늘 스터디 못하겠다, 그치?”
지극히 소심한 자태로 무릎을 쓸며 말했다.
재영이는 고개만 까딱거린 채 다시 말을 잃은 사람처럼 침묵했다.
“나 갈까?”
“됐어.”
어느새 내 옆에 와서 소파에 풀썩 앉아버린 재영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다니...
심장이 200m를 전속력으로 달린 것처럼 쿵쾅쿵쾅 뛰었다.
“책 꺼내봐.”
나는 여태껏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풀어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던 책들을
티테이블 위에 꺼냈다.
무심결에 재영이와 손이 부딪쳤고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떼고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가운데 조용한 적막만이 우리를 감싼다.
재영이의 책장 넘기는 소리만 사락사락 들려올 뿐.
결국 나만 오버한거네.
왜 넌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하긴 아무런 게 이상하지.
“이거 1학년꺼 잖아.”
“뭐?!”
재영이가 들고 있는 책 표지는 분명히
개념원리 수학 10-가.
정신없이 챙겨 와서 내가 무슨 책을 쑤셔 넣었는지도 몰랐네.
흐미 쪽팔려. ㅠ_ㅠ
“근데 왜 전부 새 책이냐?”
“공부를 안했걸랑요.”
기어들어갈 듯한 내 말에 재영이가 쿡하고 웃는다.
그 모습에 난 또 혼이 빠진 얼굴이 돼버린다.
이렇게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굉장한 사치처럼 느껴진다.
“수학은 뭐든 다 그렇지만 탄탄한 기초가 있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어.
그리고 그 기초란 것도 기본적으로는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하지만 원리만 알고 있으면
얼마나 많이 연습하고 접해봤느냐가 실력 향상의 관건이야.
그러니까 어차피 가져온 거 이거부터 시작해보자.“
자상한 미소.
재영이는 소파에서 내려와서 티테이블에 바짝 붙어 아빠다리를 하고 앉는다.
“뭐해? 얼른 안내려오고.”
“으응.”
그렇게 재영이의 설명이 시작됐다.
나는 집합이 어쩌고 연습장에 그림을 그려가며 열심히 설명하는 재영이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넋을 놓고 바라봤다.
“내 얼굴보지 말고 책 좀 보지?”
손바닥을 펼쳐 뜨거운 내 시선을 차단하는 천재영.
“아 미안.”
공부하러 와서 이게 무슨 짓이야, 권아미!!
속으로 꾸짖으며 나는 중요부분에 밑줄이 그어진 문제집을 내려다봤다.
재영이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부분집합은 이렇게 이해하면 간단해.”
몸을 뒤척일 때마다 재영이에게선 금방 샤워한 듯한 향긋한 과일향이 풍겨왔다.
쿵쾅쿵쾅...
설명이 머리에 안 들어와.ㅠ_ㅠ
“그러니까 여기서 부분집합은 2의 3 마이너스 1제곱해서 4가 되는 거야.
간단하지?”
하나도 모르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방에서 책 좀 갖고 올 동안 이거랑 요거랑 풀어봐.”
자리에서 일어나며 동그라미 쳐진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자기방으로 들어가는
재영이를 보며 괜히 스터디 같은걸 하자고 그랬나 심하게 후회하는 나였다.
천재영을 진정된 마음으로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연필을 쥐고 연습장을 내 앞으로 끌어다
그 위에 적혀있는 동글동글 귀여운 재영이의 필체를 손끝으로 매만지며
무의식 중에 올라가는 내 입 꼬리.
집중하자, 권아미!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깨트리지 않으려면 잘해야 돼.
다행히 공식에만 대입하면 풀어지는 쉬운 문제였고 그래서 문제를 다 풀 수 있었다.
“에이 이게 아니잖아.”
씨베랄. 잘 풀린다 했더니 틀렸군.
방에서 두꺼운 책 두 권을 챙겨 돌아온 재영이는 빨간 빗금을 그으며
나를 한심하단 눈으로 쳐다봤다.
“봐봐. 공식에 넣으면 되는데 너 여기서 2의 5제곱을 2곱하기 5로 계산했잖아.”
“아 맞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볼까?”
내가 머리를 때리며 자학하자 내 팔을 잡아 막는 천재영이었다.
“머리 때리면 뇌세포 죽어서 더 바보 돼.”
“으응.”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난 어차피 바보니까라며 포기하는 사람이 진짜 바보야.
해봐야 답을 알지. 내가 진짜 바본지 아닌지.”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보는 재영이의 까만 눈동자에 숨이 멎을 뻔했다.
“좋아해.”
바보. 지금 무슨 소릴 한 거야.
여기서 갑자기 왜 그런 말이 나와?ㅠ_ㅠ
재영이도 갑작스런 내 고백이 당황스러운지 턱을 괴고 있던 손으로 얼굴을 쓸며
못 들은 척 책을 펼쳤다.
“공부하자.”
“응.”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있잖아.”
“또 뭐?”
“첨엔 니 얼굴이 좋았던 거. 맞다고 내가 인정했잖아. 근데.”
“그런 얘기 그만...”
“너 나한테 가식 떤 적 없지? 그럼 나 그대로의 너를 보고 좋아하는 거야.”
책에 뒤적거리던 재영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 까만 눈동자에 비친 내가 참 애처롭게 와 닿는다.
“오늘 그만해야겠다.”
재영이는 소파에 있는 내 가방을 끌어 테이블 위에 있는 내 책들을 집어넣었다.
“대단해. 나도 너처럼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나를 억지로 집 밖으로 끌어낸 재영이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았다.
s(-ㅅ-)(-ㅇ-)v 아미 논스톱 v(-ㅅ-)(-ㅇ-)z
“천재영 걔 혼자 산다더라.”
짱지랑 연습하다 들은 얘기라며 현경이가 학교에 오자마자
내 자리로 조르르 달려오며 말한다.
“왜?”
“몰라. 부모님이 어디 외국이라도 가셨나보지.
형제도 없데. 혼자래. 완전 외롭겠지?
그나저나 어제 어땠어?“
“그냥... 공부했어.”
그 넓고 화려한 집에 혼자 있는 천재영을 떠올리니 쓸쓸하고 슬프게 느껴졌다.
어제 괜한 고백을 했다.
그런다고 달라질건 없었는데 분위기만 더 서먹해진 거 같다.
일요일날 꼭 만회해야지.
손꼽아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 시간이 그렇듯 자연스레 일요일이 다가왔다.
아침부터 밝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능청스럽게
재영이를 대하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책을 꾸려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재영이 집 근처에 내리고...
[오늘도 단둘이 잘해봐. 언니들이 도와주는 거야.]
[짱지는 우리가 책임지고 막고 있을께.]
여현경과 표정란의 배신 문자를 받은 나는 당혹감을 맛봐야 했다.
안 그래도 분위기 어색하건만.
오늘 안심한 것도 니네들이랑 같이 있음 좀 달라질까 생각해서였는데...
어쩌라고!!
집에 확 가버릴까?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자니
멀리서 어기적 이쪽으로 담배를 피며 걸어오고 있는 재수탱이의 모습이 보인다.
“어? 촌닭!”
뭐야? 이 새끼 이 동네 살았어??
윤찬영도 이 의외의 만남에 놀란 모양이다.
“전화도 안했는데 왜 왔냐?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하루라도 안보면 미칠 것 같지?”
“존나 착각. 니보러 온 거 아니거든.”
니네 동넨지도 몰랐다, 씨베랄 놈아.
엿 같은 상황이로다.
천재영 집으로 얼른 가야지.
“그럼 이 동네 왜 왔냐?”
“관심 끄시죠.”
자꾸 따라붙는 윤찬영에게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말투로 응수했건만
이 놈은 껌처럼 질기게 조잘대며 나를 따라왔다.
“촌닭 요즘 좀 개긴다?”
“흥!”
어느덧 재영이 집 앞에 도착하고 나는 친구 집 놀러온 거라고 윤찬영의 등짝을 밀었다.
재영이네 집 호수를 누르고 벨 버튼에 손을 갖다대는데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재영이가 보였다.
화색이 도는 내 얼굴을 찜찜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윤찬영이 고개를 빼 그 쪽을 본다.
“친구가 남자였냐?”
“뭐시여, 저 여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재영이를 뒤따라 여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어딘지 까맣게 태닝한 피부가 섹시하면서 이효리를 연상시키는 그 여자를 보며
나도 모르게 모퉁이로 윤찬영을 끌고 가 숨어버렸다.
“고양이 등. 꾸부정하게 걷지 말랬지?”
“잔소리쟁이.”
재영이의 등을 때리며 섹시한 눈웃음을 짓는 그 여자.
누난가? 아니야. 형제 없댔는데.
누구야 저 여자는!
“저녁 쯤 들어오면 돼?”
“응.”
“저녁 뭐 먹을까?”
“아무거나.”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재영이의 얼굴을 끌어다 볼을 꼬집는 그 여자.
난 손도 못 대봤는데. 저 행위들이 너무 자연스럽다.
거기다 잔인하게도 눈웃음치는 게 완전 이효리다.
김도진이 말한 게 이거였나?
김도진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재영이한테 다른 여자가 있다고 나한테 경고한거였어?
“이런 걸 해킹이라고 하는 거야. 해킹.”
뭔 소리야?
윤찬영은 내 뒤에서 숨죽여 미친 소리를 지껄여댔다.
“너 해킹 알아? 해킹? 모르지? 야... 표정이 왜 그래?”
“사전이나 다시 찾아봐.”
이효리 같은 여자가 손을 흔들며 멀어지자 재영이는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절망적이 되어 숨어있던 모퉁이에서 걸어 나와
이젠 잘 보이지 않는 그 여자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봤다.
“너 우냐?”
윤찬영의 말에 손을 얼굴 가에 가져다 대니 뺨이 축축이 젖어있었다.
그래. 눈물 나.
도저히 상대가 안 되잖아.
내 깟 거에 관심 없는게 다 이해가 돼.
저런 여자랑 같이 사는 거야?
이 아침에 나가는 걸 보면... 동거라도 하는 건가?
완전 범생인 줄 알았는데...
배반당한 마음이 너무 쓰리고 아프다.
“예쁜 여자가 좋아, 착한 여자가 좋아?”
“뜬금없게. 예쁜 게 착한 거 아니냐?”
“그렇지.”
게다가 빌어먹게 난 예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고... 가능성이 없네.
결국 주저앉아 목 놓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야 왜 울어. 미쳤어?”
윤찬영은 당황해하며 내 앞에 쭈그려 앉아 내 등을 두드리며 나를 달래느라 애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울음은 더 커져갔다.
이거 완전히 차인 거야. 보란 듯이 차여버렸다.
내 심장은 내 껀데...
왜 너에게 있어선 내 맘대로 안 되는지 모르겠어.
천재영, 니꺼 아니란 말이야.
내 꺼야. 내가 원할 때 두근대고, 또 아파야할 심장이야.
그런데 왜 니가 쥐고 흔들어?
왜 이렇게 아파야 돼?
“아까 그 새끼 때문이야?”
“이제 끝이야. 아미 논스톱 연재 끝이라고.ㅠ_ㅠ”
“미친 소리 그만하고. 뭐야? 그 씨발 새끼 뭔데?”
“재영이 욕하지 마.”
천재영은 그래. 잘못 없어.
내가 혼자 신나했던 거야. 겨우 짝사랑이면서...
괜히 나를 보는 시선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하고..
어쩌면 잘될 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확신을 하며...
부담스럽게 한 건 나였는데.
“아파. 이거 놔.”
“그럼 그 자리에 앉아 처량맞게 계속 우는 데 어쩌라고.”
나를 일으켜 어디론가 무지막지하게 끌고 가던 윤찬영이 짜증스런 표정이 되어
나를 돌아본다.
“진짜 아파. 놔줘. 니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한동안 미동 없이 서있던 윤찬영은 손에 주었던 힘을 스르르 뺀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빨간 자국이 남은 내 팔목을 주물러준다.
“너 매력 있어.”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 내게 줄께. 에이에~ (BGM. 클래지콰이 she is)
갑자기 삼식이스런 대사를..!!
“니가 현빈이냐?”
윤찬영은 나의 뜨악한 표정에 피식 웃으며 더 느끼하게 내 팔목을 잡고 말했다.
“자기가 얼마나 매력 있는지 모르는 게 당신 매력이야.”
“풋.”
“이제 웃네.”
어이가 없어 터트린 웃음에 윤찬영은 그제야 맘에 놓인다는 듯 한숨을 쉬며 미소 지었다.
“잘생겼냐?”
웩. 뭐야. 또 지나친 왕자병 나오셨네.
저걸 질문이라고 하냐.
나는 대답대신 혀를 내두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아. 미친. 나 말고 그 새끼. 잘생겼냐?”
“그럼 재영이 얘기한 거였어?”
고개를 끄덕이는 윤찬영.
“당연하지. 멋지고, 다정하고, 똑똑하고, 어른스럽고...”
그래서... 그 눈이 나만 봐주길 간절히 바랬고.
무섭게 꾸짖어도 이 마음이 자꾸 그 애한테 달려가 버리고말고.
꼴사납게 굴고.
“바라만 봐도 좋았는데... 이젠 그것도 못해.”
멈춘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차오른다.
시야가 뿌옇게 될 때까지 나는 어떻게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딴 남자 때문에 우냐, 왜.”
오늘 윤찬영이.. 윤찬영 답지 않다.
나를 품에 끌어다 안아주는 강한 팔, 단단한 가슴.
그게 너무 포근하고 따뜻해서 나는 그 가슴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망각해버리고
그를 껴안고 꺽꺽 울어버렸다.
하나님...
조금 더 강해지게 해주세요.
흔들리지 않게
사소한 일에 눈물 글썽이지 않게
어떤 상황에 닥쳐도 마음 아파하지 않게
튼튼한 심장이 될수 있게...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1.
[ 장편 ]
아미 논☆스톱 vol. 14
치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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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1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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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크흠..만화책제목 따라하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