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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0일(수)
* 시작 기도
(마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주님...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품꾼들을 부르러 나간 주인이 그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였습니다.
이렇게 약속한 주인은 품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었습니다.
늦게 온 사람도 일찍 온 사람도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임을 천명하시는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천국 곧 하나님 나라는 결코 우열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부자나 가난한 자가 없고, 열심히 했다고 더 많이 받는 상급도 아니고 덜 했다고 덜 받는 이 세상적 개념이 적용되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곳은 내가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전적인 주인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받는 상급은 모두가 동일한 구원 곧 영생입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에 들어가서 더 많은 상급을 받겠다고 이 땅에서 더 열심히 일하고 사역하려 했던 자임을 고백합니다.
마치 새벽 6시에 포도원에 들어가서 12시간을 일한 사람이 오후 5시에 들어가서 겨우 한 시간 일하고 한 데나리온을 받은 사람과 비교하여 불평과 불만을 쏟아낸 자와 똑같은 자입니다.
그런 곳이 어떻게 천국일 수 있겠는지요.
오늘도 이 땅에서부터 그런 아버지 나라를 맛보기 원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자의 삶임을 압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비록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지만 거룩한 불구자로 살아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9:14-26
제목 :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하랴?
14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15 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르스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16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 왕이 거기에 누워 있었음이라.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17 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18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19 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그들에게 가서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를 따르라 하더라.
20 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하니
21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23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하니
24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
25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2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
* 나의 묵상
엘리사는 선지자의 제자를 통해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이는 그로 하여금 아합의 집을 멸망시키고,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주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왕이 된 예후는 아람 군대와 싸우다가 부상을 입어 이스르엘로 후송된 요람 왕에게로 갔다.
그곳에는 유다 왕 아하시야가 요람을 병문안하기 위하여 와 있었다.
예후는 요람 왕이 보낸 파수꾼들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게 하고 나봇의 밭으로 나온 요람과 아하시야와 마주했다.
요람이 자기 신하 예후를 보고 평안을 물었다.
이에 예후는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평안할 수가 있겠느냐’ 하고 대답한다.
이 말을 들은 요람은 예후의 반역을 직감하고 아하시야에게 반역이라고 소리치며 도망한다.
예후가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와 그가 병거 위에서 쓰러졌다.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말하기를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후와 빗갈이 함께 요람의 아버지 아합을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예언하신 일이다.
그 때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다. 그러니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그래서 예후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나봇의 밭에 던지라고 한 것이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음행(음란)과 술수(마술)은 그의 아들 요람의 시대까지 만연하였다.
예후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이세벨의 음란과 마술이 있는데 어찌 ‘평안’할 수 있냐고 말하며 반역을 선포하였다.
언약 백성의 평화는 말씀에 순종하는 언약적 의를 이룰 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
(사 32: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그러나 이세벨의 음란과 마술은 언약백성을 미혹하여 언약적 의를 저버리게 하였다.
그런데 어찌 참된 평화가 그들에게 있겠는가?
이세벨의 음란(히, 자누엔)은 가나안의 바알 신에게 행하는 제의로써 모방주술 의식이며 나아가 성창제도를 장려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세벨의 마술(히, 케쉐프)는 일반대중을 미혹하여 그 의식에 참여하도록 부추기는 것을 말한다.
성경주석은 마술을 가리켜 풍요여신들에 관한 부적사용으로 보는데, 이 부적은 가나안인들의 생활에 있어서 지극히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특히 마술을 부리는 자는 예레미야 당시 언약 백성을 미혹하여 바벨론의 심판을 피하게 하는 선지자들과 꿈꾸는 자들 그리고 복술자들과 동일한 자들로 지목되었다.
다시 말하면 언약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렘 27:9)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복술가나 꿈꾸는 자나 술사나 요술자가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너희는 듣지 말라.
아합의 시대 언약 백성 이스라엘은 말씀을 떠나 언약적 의를 저버렸다.
그 대신 세상의 풍요와 그것을 조장하는 의식들에 속임을 당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에 아합 가문에 여호와의 말씀대로 심판이 임한다.
아합의 아들 요람은 아합이 나봇을 죽이고 빼앗은 나봇의 밭에서 예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거기서 죽임당해 나봇의 밭에 그의 시체가 던져졌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 같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그의 몸의 피도 핥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였다.
그런데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전사하여 사마리아 성에 장사되었다.
예후는 엘리야의 예언이 아합의 아들, 요람의 죽음에서 성취된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의 악행이 끔찍한 결말에 이르렀다.
그 시작은 에뎀에 기회를 타고 들어온 죄의 세력에 있다.
죄의 세력으로 역사하는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자이다.
(요일 3:8)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처음부터 범죄한 마귀는 모든 시대, 오늘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역사한다.
하지만 하나님 역시 쉬지 않고 일하시며 역사하신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보내셨다.
아버지가 아들을 통하여 하시는 일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것이며 또한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요일 3:8b)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 6:40a)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이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 선물을 받기까지 모든 사람은 마귀의 지배 아래에서 죄 가운데 살다가 사망에 이른다(롬 6:23).
그런데 마귀가 역사하는 죄의 세력은 믿는 자까지도 속이려 든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죄악과 파멸에 빠뜨린 이세벨의 음란과 마술을 통해 역사하는 것과 동일하다.
풍요하고 안락한 삶이 인생의 최고 목표인 것처럼 속이며 온갖 술수로 미혹하는 것이다.
잠시 누리는 풍요와 쾌락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과 평안을 대체시킨다.
속고 속이는 세상 중에 거하도록 하며 결국 죄 가운데 살다가 사망으로 끌고간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한다.
(약 1:16-18)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만물 안 곧 땅에 속한 그 어떤 것으로도 생명을 얻을 수 없고 다만 진리의 말씀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아무리 좋고 화려하게 보여도 그것은 다 쇠락의 법칙에 의하여 사라질 것들이다.
하지만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이 거듭나게 되면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얻게 된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벧전 1:23-25)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판 이세벨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말씀을 생명을 주는 복음으로 전하지 않고 내게 무언가 특별한 것을 가져다주는 신비한 물질로 여겼기 때문이다.
말씀을 가리켜 도깨비방망이처럼 취급을 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내게 유익이 되는 말씀만 쏙쏙 골라서 빼먹는 자가 바로 나였다.
그러니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그렇게 편식을 했으니 어찌 나의 신앙이 온전할 수 있으리요.
그뿐 아니라 성령은 또 어떤가?
성령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어떤 물질로 여겨 그토록 성령을 구하곤 하였다.
그 성령이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는 어떤 능력과 체험을 주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믿던 말씀과 성령은 결코 나의 필요와 유익을 가져다주는 수단이 아니다.
나는 너무도 편협한 시각으로 말씀과 성령을 보고 여겼던 자이다.
때로는 성령께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주기도 하신다.
하지만 그것을 받을 때는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좋아하지만 그 기쁨과 즐거움은 결코 지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또 그것을 구하고 또 그것을 구한다.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할 경우 응답받았던 기도원을 찾거나 영험한 목사를 찾아 기도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예수무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바로 이런 예수무당 노릇을 한 자였음을 고백한다.
하여 내가 바로 오늘 이 시대의 이세벨임이 드러났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내 피를 개들이 핥아먹어야 할 자가 아닌가?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진멸하지 않으시고 고난의 징계를 통하여 복음을 알게 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는 사도적 사명을 가진 자로 세워주셨다.
이제 내가 무슨 힘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닌 오직 주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나를 일으켜주신 우리 주님께 그저 감사와 찬송을 올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이세벨의 음란과 마술이 내게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나에게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돼지를 치고 쥐엄열매를 먹던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그를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 안으셨습니다.
그런 은혜를 제가 둘째 아들이 되어 받았습니다.
나의 눈가에 감사와 은혜의 이슬이 맺힙니다.
나의 죄를 보시고 죄의 대가로 죽이지 않으시고 아들을 보내시어 십자가와 장사되심에 나를 함께 연합하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하심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 고백이 나의 평생에 끊이지 않기를 원하오며 오늘도 나의 유익과 필요가 아니라 영원한 그 나라를 소망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