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화 농업경제학 박사의 못다한 이야기 2
동토에서도 쌀은 익어가는데 농축산부는 반대만
한국의 농업학자들 벼한포기 나지 않는다 고집
등소평 아들이 삼강평원 빌려준다 했지만 무산
SNS을 통하여 많은 분들을 만난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 이하 농림부) 장관을 역임한 분들과 실.국장급 인사들, 그리고 산하 기관장과 임직원, 농협 회장을 역임한 분들과 농협대학 학장출신들도 이곳에서 만난다. 대충 여나무명 조금 넘게 소통을 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들이 올린 글들을 읽다보면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보는 것 같아 감회가 피부에 와 닿는다. 그만큼 밀려오는 아쉬움도 크고 가라앉지 않는다.
서울 올림픽 직후(1988년) 장 덕진(1934-2017년,30대 농수산부장관)은 코메디언 심 철호(1939-2002년,웃으면 복이와요, 본명 심종섭)소개로 등소평의 아들 등업방을 소개받는다. 등소평 아들의 절대적 지지로 삼강평원 3만 8천ha (약 1억 1천 4백만평)개발을 추진하게 된다 . 당시 대륙연구소 소장은 농림부장관을 역임한 김성훈교수(1939년생,농업경제학자, 중앙대 산업대학장,베이징대 경제학과 초빙교수,50대 농림부장관,상지대 총장)이고 필자는 연구위원.(심 철호는 나와같이 1980년에 중앙대학 지역사회 개발대학원의 동기며 김성훈 교수는 은사였다)
1990년 한소. 한러 국교 수립했으며 1992년 8 24일 한 . 중 수교(2022년 한중수교 30주년)를 수립하여 흑룡강성(헤이롱장성,중국 둥베이지역의 성,남쪽으로 지닐성,서쪽으로 내몽골 자치구,러시아와 국경지역,아무르강이 흐른다.) 삼강평원 개발은 급 물살을 타게 된다. 삼강평원은 중국의 곡창지대로 농업생산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송화강,흑룡가,우수리강이 흐른다)
그런데 충격적으로 어이없는 복병이 나타났다.
그 곳은 동토이고 절대로 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이라는 국내 학자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동국대학교 농경제학과 교수들의 동토론은 집요했고 여기에 농림부도 가세했다.
정보 당국은 89~90년도 2년 동안 지구촌 벼농사 한계지역인 몽골 동쪽 끝자락 처이발상(몽골 더르너드 주의 주도이며 몽골의 4번째로 큰 도시,무역도시) 지역에서 소련군대 제 7극동 군, 고려인과 조선족 공동으로 벼농사 짓는 것을 확인했다.
흑룡강 서쪽 치치하얼시와(헤이룽장성의 도시,중국의 13번째 도시,석유공업도시,역대 최저기온 –39.5°C,최고기온 40.8°C)내몽고자치주를 마주하는 아영기(내몽골자치구의 위치,26개 민족이 거주,4계절이 뚜렷하다) 공동 자치현에서도 벼농사 짓는 것을 확인하고 장 덕진 장관에게 비공개 조건으로 전달했다.
당시 모든 언론은 그 곳들은 모두 동토라며 농림부와 대학교수 편을 들어 기사를 쏟아냈다.
기사내용의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며 내가 나서 하소연 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시베리아를 포함한 흑룡강성 북쪽과 연해주땅도 6월 초순까지는 그늘에서는 한자( 30센티) 이상만 파면 얼음이 남아 있는 동토다.
그러면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시베리아 제1의도시,인구 160만명,용맹한 노동의 도시라는 칭호받음,연평균 기온 +1.3도,1월의 월평균기온 -17.7도, 7월엔 19.3도.최저기록은 1915년 1월 9일의 -51.1도, 최고기록은 2014년 6월 12일의 41.1도)는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살까.
5월 중순 동토가 7~10센티정도 해동되면 가을추수 끝난후에 로타리 친 평탄 농토에 트렉터용 갈쿠리로 밀 파종을 한다. 이때부터 밀은 자라고 동토는 밑에서부터 차츰 차츰 해동 된다.
6월 중순경이면 밀은 80~100센티 자라고 땅은 전부 녹아 완벽히 해동된다.
벼농사도 이와 꼭 같다. 꽁꽁 언 논에 물을대고 모심기하고 물을 벼보다 높게 채운다. 흑룡성 동강(이곳에서 다리만 건너면 아무르주다)도 5월달까지도 얼음이 얼어있는데도 모심기를 한다.
하지만 국내 여론의 동토 주장은 승리했고 삼강평원의 한국영 농사는 물건너 갔다.
지금 바로 그 삼강평원이 1헥터당 벼조곡 생상량이 11톤이고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다.
동토라고 주장하던 그 많은 학자들은 그곳이 지구촌 최대 쌀 생산 곡창지역으로 변한 것에 대해 그 누구도 해명이나 변명조차 없다.
농림부는 왜, 그리도 연해주 개발에 반대 했나
삼강평원과 같은 맥락으로 농림부는 연해주땅도 동토로 취급하고 한국기업의 진출을 반대했다.
나는 한국인 처음으로 고르비정권(미하일 고르바초프,1931-2022년,집권 89년-91년,노벨평화상)에서 극동러시아 농업경제 자문위원으로 임명받았다.
김제평야보다 휠씬 넓은 연해주 호롤군(郡)(야쿠샤 블라디미르 호롤군수가 한국을 방문했고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는 땅 3,800만평을 장기 임대해 99년부터 영농을 시작했다.)을 1990년 한.소수교 이전부터 여러차례 다녀왔다.
이곳의 현장사진을 내가 발행인으로 있든 [월간 상업농경영] 지에 한달도 거르지 않고 연재했지만 사기 치지 말라면서 농림부는 재단 허가를 취소한다고 공문을 두번이나 보냈다.
YS 정부 초기때다.(김영삼정부,1993년-1998년)
지금은 연해주 총영사관에 농림축산식품 담당 농무관도 나가있고 농어촌공사 직원들도 한국 진출기업 지원한다고 우수리스크 중심부에 사무실을 꾸려 몇명이 파견되어 있다.
내가 몇번 방문했을 때는 직원 두명과 현지 고려인 직원들이 몇 명 있었다.
극심히 반대하던 농촌진흥청과 적극 동조한 농림부는 그저 꿀먹은 벙어리다.
그리도 반대만 했던 농림부가 지금은 현지에 왜 파견근무까지 하고 있을까.
장기전략을 외면하는 한국의 외교력에 대한 한계가 보여지는 잊지못할 기억의 저편이다.
*이병화박사는 1945년생으로 건국대 농과대를 3년간 수학하고 러시아 프리모리스키 농업아카데미에서 농업경영학 박사를 하바롭스크기술대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했다. 박정희정권시절 대통령특별보좌관실 농업담당관(새마을 담당관)으로 활동하고 러시아연방정부 극동지역 대통령 농업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 장계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