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6년 다해 6월4일 토요일 [(백)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수도회]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성모님의 사랑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이사 61,9-11
† 복음 루카 2,41-51
성모 성심 공경은 17세기 프랑스 출신의 요한 외드 성인에게서 비롯되었다.
이는 예수 성심을 공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성모 성심 공경은
19세기에 별도로 날을 잡아 기념하기 전까지는 예수 성심 미사에서
기억하는 형태로 전례 안에 들어왔다. 1942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맞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세상을
봉헌하고, 이 기념일을 온 교회가 지내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8월 22일이
기념일이었는데, 1996년부터는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날로 옮겨 지내고
있다.
◈ 오늘의 묵상
가톨릭 신앙에서 성모님은 모든 신심의 중심에 서 계십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라면 한번쯤은 성모님을 무시하려는 개신교 신자들을 만나 당혹감을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지를 그들에게
납득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복음서를 통틀어서 예수님의 인격을 가장 가깝게 느끼고 사신
분이 누구였는지 물으면 됩니다.
성모님은 인간이 하느님의 신비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신 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잃은 아들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고, 다소 퉁명스러운 예수님의 대답을 듣습니다. 이럴
때 보통의 우리라면 적지 않게 당혹했을 겁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으면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습니다.
예측하지 못했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면 당혹감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와는 달랐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신비를 깨달으려면 우리가 분주하게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멈추어 돌아보는 묵상과 관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 주신 분입니다. 복음서는 성모님에 대해 아주 짧은
이야기만 남겨 두었지만, 사실 성모님의 모습 속에는 하느님의 섭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티 없이 맑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모습, 하느님의 뜻을 찾아 평생을 기다리며 사신 분.
그런 분을 공경한다는 것은 우리가 따라야 할 가장 큰 신앙의 모범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전적으로 내어 맡기는 의탁의 삶
2016년 다해 6월4일 토요일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제1독서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1,9-11
복음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51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혼자 놀았던 기억이 많습니다. 제 바로
위의 형님과 4살 차이라서, 형님이 학교에 가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집에
혼자 있어야만 했습니다. 더군다나 집 근처에 또래 친구도 없기 때문에
항상 혼자 놀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외로웠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혼자서 잘 놀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멋지고 재미있는 장난감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지금처럼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하루 종일 나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나무토막 하나만으로도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면서 하루 종일
가지고 놀았고, 종이와 연필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심지어는
기도하는 묵주를 가지고서도 헬리콥터라면서 빙글빙글 돌리며 놀았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딱지라도 얻게 되면 며칠 동안 신나게 놀 거리가 되었지요.
이것뿐입니까? 라면 비밀봉지들을 모아서 동그랗게 만들어 공놀이 했던
기억도 납니다.
아마 지금 이렇게 노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큰 일 날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나오는 방송을
보면서 심심할 틈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더 많은 것을 가졌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롭고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히려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를 들어, 신발이 20켤레나 있습니다. 이때 21번째의 신발을 누가 선물한
것입니다. 기쁠까요? 그리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구두가 딱 한 켤레 있는데, 누가 새 구두를
선물했습니다. 어떨까요? 너무 기쁠 것이고, 새 구두 신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릴 것입니다. 많은 것을 갖는 것, 높은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어떠한 상황에도 상관없이 이 순간에
만족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님의 마음을 떠올리면 그 해결책을 찾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 잉태소식을 듣는 그 순간부터 정말로 큰 일이 뻥뻥
터졌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갖게 된 것, 이집트로 피난한 것,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건, 예수님의 공생활
때에는 ‘미쳤다’는 소식까지 사람들에게 듣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
죽음이라는 어마어마한 일도 겪으시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실 뿐이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내어
맡기는 의탁의 삶이 이런 마음을 간직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갈 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지금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지금을 만족하며 사는 삶 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꿈은 환한 양초 불빛처럼 우리 인생의 행로를 장식하고 용기를 준다
(올리버 골드스미스).
빛바랜 사진 속의 제 모습입니다. 혼자서도 잘 놀았어요.
브레이크는 내가 밟아야 합니다.
제게 면담을 요청하셔서 만났더니, 한 형제님과의 면담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즉, 그 형제님과의 면담이 가능한지를 묻기 위해서 면담을
요청하신 것이었지요. 강론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는데, 저와 그
형제님을 만나게 하면 분명히 그 형제님의 고민이 해결될 것 같은 확신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지요.
“물론 면담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형제님이 원하시지 않으면 어떻게
면담을 할 수 있을까요? 본인이 원하지 않을 때에는 어떤 이야기도 통하지
않습니다.”
이분께서는 면담만 해주시면 분명히 형제님의 아픔이 치유될 것이라면서
제발 좀 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너무 완강하게 말씀하셔서 다음 날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허락했습니다.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요?
면담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형제님께서 누구를 만날 마음이 전혀
없다면서 거절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형제님께서 오신다고 해도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오겠다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억지로 끌려와서는 제대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를 운전할 때 앞에 장애물이 생기면 얼른 브레이크를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브레이크를 옆 좌석이나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밟을까요? 또
말로 “브레이크를 밟는다.”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직접
자신의 발로 밟아야만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남이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바로 문제를 안고 있는 내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성모님의 사랑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6월4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루카 2,41-51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The Boy Jesus in the Temple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성모님의 사랑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입니다. 성모성심은 예수성심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일컫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여
성령으로 성자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구원 여정에 침묵 가운데 사랑으로
함께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하느님의 충실한 여종이자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뜻에 온전히 일치한 신앙인이셨습니다. 이처럼 성모 성심은
예수 성심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린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예루살렘
성안에 남게 됩니다. 아들을 잃어버린 마리아와 요셉은 사흘 동안 아들을
찾느라 애간장을 태웠을 것입니다. 아드님 예수님을 찾으신 성모께서는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2,48) 하고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 하고 말씀드립니다. 그런
대꾸 앞에서 예수님의 부모들은 시므온의 예언대로 이때 이미 성모님께서는
가슴이 찔리는 듯한 아픔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성모께서는 구원의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아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모님은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십니다.’(2,50) 이 점이
바로 성모님의 탁월한 점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바로 알아차리지도 다 이해할수도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일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자신의 힘으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면서 하느님에 의해 뜻이
드러나리라 믿고 기다리신 것이지요. 구원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다가오거나 기적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이사 6,11) 서서히, 때로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사랑으로 기다리는 법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분처럼
말하기에 앞서 사랑으로 들을 줄 아는 마음을 지녀야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을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고 주님께 맡기는 법을 배웠으면 합니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 안에 담긴 하느님의 깊은 뜻을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밝히려 하기보다는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면서 그분께서
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
없이는 어려울 일일 것입니다. 오늘도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성모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사랑의 날이 되길 바랍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루카 2, 51)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6월4일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 51)
티 없이 깨끗하신 어머니의 마음 안에서
소중한 우리자신을 다시 만나게됩니다.
티 없이 깨끗하기에 이 세상을 아름답게
빛나게 하신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티 없이 깨끗한 우리의 어머니가 되시기위해 얼마나 많은 아픔과
쓰라림의 시간이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가장 아픈 방법이 실은 가장 맑은 시간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나갑니다.
어머니의 마음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은 어머니의 숨은 마음을 다시 만나고 바라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맨 처음 만난 어머니의 마음이 우리 삶의 평생을 좌우합니다.
마음이 마음을 키우고 마음이 마음을 살립니다.
하느님께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투명하게 내보인
성모님의 마음 안에서 참된 믿음을 만납니다.
믿음은 비우는 것이며 믿음은 하느님 말씀을
성모님처럼 끝까지 간직하는 것입니다.
분주한 일상의 삶 한가운데서도 하느님을 드러내는말씀의 깨끗한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자식을 정확히 알아보는 우리의 어머니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알아보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을 통해 마음의 길을 만나게됩니다.
마음에도 길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했을 때 비로소 얻게되는 말씀의 열매입니다.
말씀의 진짜 열매는 마음입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어머니 마음에서
이해와 기다림을 배우는 은총의 시간 되십시오.
세상의 모든 길 위에는 어머니의 마음이 있음을 알게됩니다.
우리의 마음또한 우리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6월4일 토요일 티없이 깨긋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이사 61,10)
어제는 예수님의 거룩한 성심을 노래하고
오늘은 그 어머니 마리아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을 경축합니다.
"티없이 깨끗한"이란 표현은 흠도 티도 없이 완전무결한 인간을
뜻하기보다는 오로지 하느님께 집중하는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마리아는 처지가 어떻든간에 늘 하느님의 뜻을 생각할 줄 알았고
그에 기꺼이 '예'(Fiat!)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잔머리를 굴려가며 나에게 이익이 될까 손해될까를 고민하는
우리의 갈라진 마음과는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리아는 '막니피캇'(Magnificat)을
언제나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오늘 이사야 예언서의 노래가 바로 성모님의 노래였군요.
자, 우리도 마리아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함으로써
순수하고 깨끗하게 되어 이런 기쁜 영혼의 노래를 불러 봅시다.
오늘 시작되는 저희 성심인애축제가
바로 이런 아름답고 기쁜 영혼들의 축제가
되기를 소망하며 맘으로 함께 해 주시길 청합니다.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서울]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2016년 다해 6월4일 토요일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 루카 2,41-51
수업시간에 ‘영상물’ 상영을 과제로 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강연,
강론, 연설을 통해서 배울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는 ‘스티브
잡스’에 대한 영상물을 함께 보았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 축사를 하였습니다. 축사를 통해서 3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결정을 믿으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린 시절 입양된 스티브
잡스는 양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양부모는 대학을 다니지 못하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학비를 내기 위해서 어렵게 모은 돈을 써야하는
양부모를 생각하였고, 한학기만 다닌 후에 대학을 중퇴하였습니다.
양부모에게 큰 부담을 주는 것이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중퇴한 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였고, 그것이 ‘애플’의 창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결정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남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 자신의 삶을 살도록
하십시오.’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은 모두 내면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을 믿었습니다.
둘째는 삶에는 시련이 있기 마련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앞에서 좌절하고, 실망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시련과 고통을 삶의
전환점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4000명 직원에 수백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큰 기업으로 만들었지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실망하고, 좌절하였지만 그런
시련을 삶의 전환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쓰러져가는 애플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강물은 강을 버려야 넓고 깊은 바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은 시간을
가족들을 위해서 보내기로 하였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더욱 보람 있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끝으로 학생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끊임없기 갈망하십시오.
그리고 우직하게 걸어가십시오.’)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 되셨고, 성모님은
승천하셨다고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모님께 드리는 교회의
사랑과 존경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수많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성모님은 결혼하지 않은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였습니다. 박해를 피해서
이집트 땅으로 피난을 가야했습니다. 어린 아들 예수를 예루살렘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아들이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죽은 아들을 품에 앉고 바라보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런 모든 고통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믿음으로 이겨내셨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시련과 갈등,
고통과 근심이 없는 삶도 없습니다. 성모님처럼 그 모든 것들을 가슴에
묻고, 순명과 믿음으로 사랑의 꽃을 피워야 하겠습니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복되시고 영화로우신 동정녀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