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오세요. 저희 집 묵은지가 잘 익었어요."
그저 잘 익은 묵은지 때문에 가게 된 다림하우스.
시를 쓰는 것보다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은 사는 것이 시가 되는 일일터,
열명이 넘는 사람 가벼이 청하는 그 넉넉한 마음밭에 튼실한 시가
깃드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고맙다, 묵은지야! 네가 잘 익는 바람에 우린 이렇게 정갈하고 풍성한 식사를 대접 받았어.
양푼 가득 묵은지와 고기를 퍼와 가위질 퍽퍽하며 많이 먹으라고 권하는 주인님.
메인 요리는 물론 월남쌈도 맛있고, 파강회와 각종 전, 삼색 나물과 물김치도 간이 딱 맞았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 싱그럽고 앙증맞은 베란다의 꽃화분에서도 주인의 면모 엿보였다.
차와 과일까지 잘 먹고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감천 문화마을 투어에 나섰다.
감정 초등학교 담 밖에 주차를 하니 유네스코 국제 워크캠프에서 그린 벽화가
눈길을 끌었다. 제각각의 나랏말로 써 놓은 울림있는 메시지들.
지붕끝과 담장위에 앉아 우리를 내려다 보는 사람 얼굴 새 몸의 조형물.
새의 시선이 조감도이려니......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2010)가 조성한 화살표 따라 골목투어 시작.
감천 문화마을은 2009년 시행된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재개발보다
보존과 재생의 관점에서 문화마을 만들기가 진행 중이다.
골목 초입에서 만난 한 남자분이 전망대에 가면 지도와 여러 정보 접할 수 있다며 권했지만
우린 사전 정보와 설명보다 자발적 여정과 견문과 감상을 택했다는 것.
좁고 가파른 골목 아찔한 계단마다 놓여 있는 꽃과 푸성귀 화분들.
나날이 가꾸는 것이 화초와 푸성귀만이 아닐것이다.
가스통과 장항아리, 제라늄화분과 쓰레기봉투 그리고 빨랫줄.
요긴하고 중요한 사물들이 그늘진 좁은 골목에 졸로리......
한줌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심고 가꾼다.
밥상은 물론 적적함과 고달픔조차 어루만져 주었을 치유의 푸른 생명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각각 다른 두 가정으로 오르는 계단.
남루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텔레비전, 이불, 옷장, 전기밥솥, 사진첩, 쓰레기통 같은
물건들이 있고 어디나 다를바 없는 삶이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세끼 밥 먹고, 잠자고, 웃고, 울고, 싸우고, 사랑하며 한 세상 살아가는 위대한 일상이......
바퀴 없는 마을. 바퀴벌레가 아니고 바퀴 달린 물건은 범접할 수 없는 곳.
크고 작은 가재도구나 물건들을 맞들거나 지게로 져나르는 풍경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느낌.
그러니까 여긴 시간이 머무는 곳이다.
아찔한 계단 저 아래에 할머니 한 분이 구부정한 모습으로 내려가신다.
무수한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사진찍고 지나 갔걸랑요.
까짓거, 기꺼이 구경거리 돼드리죠 뭐.
풍기는 아우라가 개념탑재는 물론 도가 얼 든듯 뵈는 문화마을 견공.^^
포스 작렬이다.
누워 있는 골목 텃밭에 상추 배추가 싱싱한데,
서 있는 꽃밭의 광대나물도 예쁘게 꽃을 피웠다.
한 잔 마시고 이 돌담길 가다가 무수히 발 헛디뎠을 것 같은 길 가장자리의 허방.
한 발 내디딜때마다 알아차림 하고 조심조심 걸어라는 삶의 지침 담긴 골목길.
그렇게 걷다보면 모란과 황매화, 라일락 향기 그윽한 지점도 만나나니.
"군말 말고 따라 왓."
거역할 수 없는 화살표의 명령.
좁은 길에서 공사하는데 일 없이 지나다녀 죄송합니다.
우와, 화살표 세포분열이닷!
이 길에 물 새고 얼면 진짜 큰일나요. 수도관 동파 절대불가 지대.
넵. 명심하겠습니다. 여긴 문화수준 일번지 문화마을, 여부가 있겠습니까!
홈플러스도 메가마트도 존재이유와 가치에서 이 골목점방을 능가하지는 못할 걸.
소주와 탁주, 두부와 계란, 라면과 과자, 빨래비누, 모기약 등 삶에 꼭 필요한 것 다 있는
꿈의 마트, 골목안 점방.
골목길과 같은 높이의 앞집 지붕이 비가 새나보다.
두겹으로 덮고 시멘트 블럭과 돌, 선인장 화분까지 동원해 꼭 누르고 있다.
잦은 봄비, 안방에서 우산 쓰고 밥 먹지 않도록 빨리 방수공사 해줘요.
한 사람도 겨우 지나는 길.
여길 지나면서 행여 끼일까봐 자세를 모로 하고 걸었다.
아마 문화마을에서 제일 마당 넓은 집이 아닐까?
담장안 마당에 고양이 한 마리 봄볕에 온 몸이 노골노골.
혀를 톡 치자 빠안히 올려다본다.
한뼘 마당에도 화분은 있네.
욱현이와 보미는 좋겠다 서로 사랑해서.
여기에 글 새긴지 한 주도 안된 풋풋하고 뜨거운 저 사랑 브라보!
색깔과 향기로 맞는 봄.
시간과 공간이 함께 머무는 감천 문화마을의 봄은 세상 어디보다 찬란했다.
더 가지려 않고, 더 알려고도 않으며 자족하고 자유롭겠다는 마음 하나 챙긴
봄날의 여정이 사뭇 흥감하기 그지 없었다.
첫댓글 부산의 산동네들이 추억의 볼거리인 것도 사실이고 관광상품이 될 수 있는 점도 있지만
마음을 열어준 거주지 주민들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지원방식을 꾸준히 검토하고 적극적으로 펼쳐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다운타운에 사는 주민들과 산복의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될 수 있겠
지요. 그것을 통해 산복의 삶을 가까스로 벗어난 도심의 주민들이 지난 삶의 향수와
오늘날의 도시의 서정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데 저 맛깔난 음식의 어느 시인의 사적 배려인가요?
아님 어느 정갈한 식당인가요?
당근 집밥이지요. 세상의 밥은 딱 두 종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밥과 파는 밥.
산동네에 대한 산거북이님의 인식에 공감하며, 누군가의 삶을 구경하는 행위에 속물성과 폭력성이 짚혀졌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