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상공에 미국산 전투기 F-16 '팰컨'(매)이 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솔직히 말하면,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미국 등 서방의 최신 무기들은 모두 '전쟁의 판'을 바꿀 것으로 기대됐다. 자국산 무기에 대한 서방 외신의 '과포'(과대포장)가 주된 원인. 상대(러시아)와 직접 전장에서 무기의 성능을 비교해보지 않았다는 점도 한 이유다. 무엇보다도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정도의 수량을 제공하지 않았다. 전선에서 필요한 수량이 100대인데, 10대를 주고 이길 것이라고 하는 건 무식한 착각이다.
우크라이나의 지난해 여름 반격 작전에 앞장 선 독일의 레오파드, 미국의 에이브럼스 전차(탱크)와 미국의 다연장로켓발사기 하이마스(Himars), 미국의 에이태큼스, 영국의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 패트리어트 방공미사일 등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서방 무기들의 성능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질'(質)이 '양(量)'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티거'와 같은 독일의 최강 탱크도 떼거리로 몰려들어 접근전을 펼치는 소련제 T-34 탱크의 공격에 밀려 후퇴해야만 했다.
◇ F-16 전투기는 앞으로 어떤 길?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F-16 전투기. 꼬리 부분의 우크라이나 표식이 선명하다/텔레그램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4일 우크라이나 공군의 날 기념식에서 F-16 전투기가 자국 영토 내에서 작전 수행을 위한 비행을 시작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F-16 앞에서 공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행한 연설에서 “F-16이 우크라이나에 왔다. 우리가 해냈다”며 “이 전투기의 조종법을 익혀 F-16 전투기 조종을 시작한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F-16 전투기 2대가 기념식장 위 상공을 시험 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장소는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 매체 브즈글랴드는 5일 루마니아 텔레그램 채널 '콘도티에로'(Condottiero)를 인용, F-16 전투기는 루마니아 접경 오데사 지역의 리만스코예 비행장에서 출격 대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군의 날 기념식도 여기에서 열렸으며, F-16 전투기 보호를 위해 패트리어트 방공미사일 시스템 1기와 아이리스(IRIS)-T 방공 시스템 2기가 배치됐다고 했다. 오데사 주민들은 이미 F-16 전투기의 기동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오데사 상공의 F-16 전투기 비행 장면/영상 캡처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F-16 전투기는 10대 정도로 추정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F-16 전투기 10대가 7월 31일 우크라이나에 도착했으며, 연말까지 10개가 더 제공되고, 2025년 말까지 우크라아는 모두 79대를 인수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 워싱턴 포스트(WP)는 덴마크와 네덜란드, 노르웨이, 벨기에 4개국이 모두 합쳐 80대를 인도하기로 약속했으나, 올해 안에 우크라이나가 받을 물량은 20대에도 못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나아가 미 뉴욕 타임스(NYT)는 조종사의 부족으로 우크라이나군은 올해 F-16 전투기를 10대 이상 운용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투기 1대당 조종사 2명이 배치돼 비행과 휴식을 교대하는데, 미국과 네덜란드, 덴마크 등지에서 올해 훈련을 끝내는 우크라이나 조종사는 20명에 불과하다는 것. 미 공군의 비행대대(squadron, 혹은 편대)는 최소 12대로 구성되는데, 우크라이나는 1개 비행대대도 편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F-16 전투기 조종사의 훈련에는 최소 1년이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어를 모르는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은 추가로 4개월이 더 걸린다고 한다. F-16 전투기의 이번 우크라이나 배치가 실제 전투능력의 상승보다는 전반적인 '사기 진작'을 기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나마 2022년 2월 개전 직후부터 러시아에 비해 열세인 제공권의 강화를 위해 우크라이나가 서방 측에 줄곧 부르짖은 F-16 전투기의 지원이 현실화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미국 등 나토 회원국들은 당초 우크라이나의 전투기 지원 요구를 거부했지만,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의 훈련 계획을 승인하면서 물꼬를 텄고, 덴마크 등 4개국이 F-16 전투기를 앞장 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개전 2년 5개월여만에 우크라이나의 숙원이 풀린 셈이다.
◇ 게임 체인저 F-16 전투기
이론적으로만 보면 F-16 전투기는 판세에 영향을 미칠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
F-16은 우크라이나군이 그간 보유했던 구소련제 미그 전투기 등과 비교하면, 사거리가 긴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최소 30~80km 떨어진 곳에서 사거리 160km의 AIM-120 미사일로 에어폭탄(활공폭탄) '카브'(KAB)를 투하하는 러시아 폭격기를 격추할 수 있다. 자주 공격 작전에 투입되는 러시아군 헬기도 고양이 앞에 쥐가 될 수 있다. 또 대레이더 미사일 AGM-88 함(HARM)으로 러시아의 방공망을 파괴하거나 후방에서 날아오는 러시아 미사일·드론을 요격하는 등 방어력을 높일 수 있다.
F-16 전투기는 또 우크라아나 지상군의 공격작전에 투입돼 장거리 합동직격탄(JDAM)이나 사거리 70km의 고정밀 GBU 폭탄을 투하하는 방식으로 측면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은 일찌감치 F-16 전투기를 최전선에서 최소 40km 떨어진 곳에 배치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하려면 적정 수량의 F-16 전투기가 필요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 측을 향해 최소한 128대의 F-16 전투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F-16 전투기의 비행을 지켜보는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작전에 투입되는 F-16 수는 너무 적고, 격추를 노리는 러시아 방공망은 너무 촘촘하다”며 "F-16 팔콘이 최전선에 자주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F-16 전투기는 미사일·드론 등 후방에서 공중 표적을 요격하는 방어작전에 주로 투입될 것으로 이 매체는 내다봤다. 미군 당국자들도 러시아의 방공망 체제로 볼 때, F-16 전투기가 당분간은 우크라이나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F-16 전투기의 주둔 기지로 예상되는 우크라이나 공군기지를 계속 공습하는 것도 위험요소다. 러시아 탄도 미사일이 도달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주요 공군기지로는 흐멜리츠키 지역의 스타로콘스탄티노프 기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지에서 이륙한 F-16 전투기는 공격 지점으로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그 사이에 러시아군 레이더에 포착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격추될 기회가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러시아의 대응조치는?
러시아는 수호이(Su)-35와 미그(MiG)-31 전투기를 투입해 F-16 '팰컨'에 맞설 것으로 보인다. 이들 전투기들은 사거리가 200km에 달하는 R-37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 훨씬 더 먼 거리에서 F-16 전투기의 이륙을 포착하고 공격에 나설 수 있다.
러시아의 한 군사 텔레그램 채널은 최근 213km 거리에서 우크라이나 미그(MiG)-29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를 공식 확인하지 않았지만, 서방 외신도 이 사건을 언급했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관건은 그만한 거리에서 F-16 전투기를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망을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느냐다.
러시아의 방공시스템 S-400의 사거리는 200km 이상이다. 후방에 배치돼 있더라도, F-16의 이륙을 확인하고 요격에 나설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서방 측이 제공한 미사일과 드론으로 S-400 방공망 시스템을 최대한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몇주 혹은 몇달 뒤 F-16 전투기를 전장에 투입하면 곧바로 F-16과 조종사를 잃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 국방부도 우크라이나군의 서방 전투기(F-16)를 파괴하는 데 약 20일쯤 걸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더 큰 우려는 러시아의 전방위 보복 조치다.
세르게이 랴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해 7월 나토의 F-16 전투기 지원을 러시아에 대한 '핵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전투기가 핵무기를 운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방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일정 대수의 F-16 전투기를 외국 공군 기지에 두고, 비상시 투입하는 등 교체 필요성에 대비할 것으로 본다. 이 경우, 러시아가 외국 공군 기지를 직접 공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전투기가 이륙하는 나토 국가의 공군 기지도 공격 목표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