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 오늘(1920년 6월 25일) 민족문화실현운동으로 세운 개벽사(開闢社)에서
천도교 월간잡지 《개벽(開闢)》을 창간했습니다.
《개벽》이란 이름은 “태어날 때부터의 어두운 세계는 끝나고 후천의 밝은 문명세계가 돌아온다.”라는 뜻의
‘후천개벽’에서 따온 것입니다.
창간 취지는 “세계사상을 소개함으로써 민족자결주의를 고취하며, 천도교사상과 민족사상의 앙양,
사회개조와 과학문명 소개와 함께 정신적ㆍ경제적 개벽을 꾀하고자 함”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실제 《개벽》의 기사들을 보면 종교ㆍ사상은 물론 정치ㆍ경제ㆍㆍ역사ㆍ천문ㆍ지리ㆍ문학ㆍ미술ㆍ음악ㆍ기술ㆍ풍속ㆍ인물 등을
아우르는 종합지적인 성격을 보여주었습니다.
▲ 《개벽(開闢)》 창간호 표지
그러나 《개벽》은 창간호부터 큰 시련을 겪게 되는데
발간과 동시에 표지(호랑이 그림)와 ’금쌀악‘ㆍ’옥가루‘ 등 몇몇 기사가 문제가 되어 일제에게 전부 압수되고 말았지요.
이에 문제가 된 기사를 삭제하고 호외(號外)를 냈지만, 이것마저 압수되어 다시 임시호(臨時號)를 발행하였으며,
그 뒤에도 일제의 탄압은 계속되었고, 결국 1926년 8월 1일 통권 제72호를 끝으로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폐간되었습니다.
폐간될 때까지 발매금지(압수)가 40회를 넘었고, 정간 1회, 벌금 1회 등 많은 압력과 박해를 받았으며,
그로 인한 경영난도 심각하였지요.
《개벽》은 짧은 6년 동안이지만, 일제의 정책에 항거하여 정간ㆍ벌금
그리고 발행정지 등의 가혹한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민족의식을 드높이는 데 역점을 두었던 대표적인 종합잡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문예잡지 못지않게 문학이론의 전개, 문학작품의 발표, 외국문학의 소개, 신인 발굴 등 다각적인 배려를 함으로써,
1920년대 문학 발전에 이바지한 바가 커서 이 시기 문학연구에 귀중한 문헌적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