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십대-노천명
분야: 어문 > 수필 > 경수필/수필
저작자: 노천명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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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여축(餘蓄)이 많았던 20대에 있어서 청춘의 그 다이아몬드 같은 금새를 내가 알았을 리 없고, 여기에서 내 20대는 괜히 묵혀져 버렸던 것이다.
하기야 화려한 서장(序章)이었다. 그때 이 나라엔 하나밖에 없었던 여자 최고 학부를 나오자 모 신문사에서 금방 데려갔고, 여기서 일을 하는 한편 나는 나이팅게일이 노래를 토하듯이 쉴 새 없이 시를 토했으며, 또 용정(龍井)이니 북간도(北間道)니 이두구(二頭構)니 연길(延吉) 등지를 한바퀴 여행하고 와서는 <산호림(珊瑚林)>이라는 처녀 시집을 내놓았다.
지금은 흔적조차도 없어진 남산동의 그 호화스러운 경성호텔에서 정초에 출판 기념회를 받던 기억, 당시 나는 진달래 빛으로 아래 위를 입고 나타났는데, 고 김상용(金尙鎔) 선생을 위시해 미세스 매이너 등 모두 박수들을 해서 내 입장을 화려하게 해주던 일은 더구나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내 눈은 머언 데로, 높은 데로마 주어졌고 눈앞에 있는 것들은 마땅치가 않았다.
내 일생의 병고는 진실로 여기서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는다.
20대의 내 정열은 시작에만 머물러 있지도 않았다. 이화 시절부터 취미가 있던 연극을 또 하게 되었으니, 당시 인사동 태화 여자관(泰和女子館) 안에 있던 <극예술 연구회>에 들어 가지고 함대훈(咸大勳), 이헌구(李軒求), 서항석(徐恒錫), 조희순(曺希淳), 이시웅(李時雄), 모윤숙(毛允淑), 최영수(崔永秀), 고 김복진(金福鎭), 최봉칙(崔鳳則), 신태선(申泰善) 제씨랑 밤마다 극연구회관에 모여서는 고단한 줄도 몰랐다.
안톤 체흡 작(作)의 <앵화원(櫻花園)>에서 모윤숙 씨는 라네프스카야 부인으로 분장을 하고 나는 그의 딸 아냐로 분장을 하고 부민관(府民館)은 아직 날 생각도 안했을 무렵, 공화당에서 입추의 여지도 없는 관중을 상대로 열연을 한 적도 있다. 이 연극에서 이헌구 씨가 대학생으로 분장을 하고 나의 상대역이 되었었는데, 춤을 추는 장면에서 원스텝도 떼어 놓을 줄을 모르는 대학생(이헌구)이 자꾸만 무대에서 내 발등을 밟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게 된다. 그 시절에 나는 트로트 정도는 출 줄 알았었는데, 일본까지 갔다 오신 그 양반은 춤을 출 줄 몰라서 사람들을 웃겼던 것이다.
그때 연출을 맡아 보시던 홍해성(洪海星) 선생의 무지무지한 신경질을 받다 못해 나는 가끔 맡은 배역을 안 하겠다고 성을 내고 나오려고 하면 번번이 지금은 가 버린 함대훈 씨가 오라버니처럼 나를 알려 주어서 도로 앉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연극을 하면서도 무언지 모르는 채 정열에 둥둥떠서 다녔으나, 이 묘령의 처녀는 여기의 이성들 하고는 얌전히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진짜 사건은 <앵화원>을 공회당에서 며칠 동안 상연할 때 여기의 관객으로 왔던 모 교수가 내 러브 어페어를 일으켜 주게 되었던 것은 무슨 운명적인 일이었는지 모른다.
연애를 하는데 실로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알아듣지 못할 대목이 많다. 늘 가슴은 와들와들 떨렸고, 한 번도 우리는 어디를 뻐젓이 못 다녀 봤던 것이다.
어째 연애를 하는 사람에게는 천지가 그렇게 좁으며 아는 사람도 그렇게 처처에 널려 있는 것인지, 이렇게 와들와들 떠는 마음, 결국은 이런 마음이 내 첫사랑을 보기 좋게 날려 보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용감무쌍했어야 할 이 20대에 있어서 나는 어리석고 약했었다.
응당 화려했어야 할 20대를 정말은 나는 무색하게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이야 무라든-이것이(이하 자료 없음)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