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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후 22차례의 군사쿠데타(성공 13차례, 실패 9차례)를 겪은 태국에서 최근에 쿠데타가 발생한 시기는 2014년이다. 쿠데타 후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진 것은 2017년이었으며, 2019년 3월 24일 총선이 실시돼 친(親)탁씬(Thaksin Shinawatra, 1949년생)계 프어타이당(Phak Phuea Thai, For Thais Party)이 최다 의석, 친(親)군부 팔랑쁘라차랏당(Phak Phalang Pracharat, People’s State Power Party)이 최다 득표를 했다. 그리고 2019년 6월 5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쁘라윳 짠오차(Prayut Chan-o-cha, 1954년생)를 새 총리로 선출하게 되었다.
2019년 총선 후 지금까지 헌법개정은 태국의 가장 핵심적인 정치쟁점이었다. 주요 내용은 왕실 개혁, 상원제도 개혁, 선거제도 개혁 등이었지만 실제로는 선거제도 개혁안에만 초점을 맞춰 추진되어 왔다.
이와 관련해 태국 야권은 국회에 5개의 헌법 수정안 초안을 제출했으며, 여권은 8개의 초안을 제출했는데, 2021년 6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는 모두 13개 개헌안 중 1인 2표제 선거제도를 부활시키도록 하는 개헌안만이 통과됐다. 이외에 2021년 11월 시민단체에서 상원을 폐지하고 독립적인 정치 기관과 헌법재판소를 개혁하며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한 ‘인민헌장(people’s charter)’이라 불리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지만 부결되었다.
새 선거제도 개헌안이 태국 국회에서 통과된 후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2021년 105명의 하원의원과 상원의원들(비례 대표 의석수 산정에 하원 의석수로 ‘500단위’를 선호하는)은 선거법 개정안이 180일 기한 내에 국회 심의위원회의 3차 독회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대법원에 위헌 여부에 대한 판결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결국 2022년 11월 30일 태국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 주요 내용은 1인 2표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100단위’를 정당명부 의석을 할당하는 기초로 채택하는 것에 대한 합헌성이다. 이번 결정으로 대정당에 유리하고 군소정당에 불리한 선거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평가된다. 이로써 태국은 2023년 5월 예정된 차기 총선을 제대로 치르게 될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선거 제도의 변화
이번 개정안은 군부의 정치참여를 제도화한 2017년 헌법 조항을 전면 개정하지는 못하고 선거제도의 변화에 그쳤으나 그 파급효과는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구 의원 선거구 의석수를 350석에서 400석으로 늘리고, 비례 대표제 의석수를 150석에서 100석으로 줄이며, 유권자가 지지하는 지역구 하원의원 후보와 지지하는 정당에 각각 한 표씩 행사하는 1인 2표제 선거제도를 다시 채택하기로 한 것이 골자다. 1인 2표 선거제도에서는 유권자들이 비례 대표 의원에 대한 투표를 각 정당에서 제시한 총리 후보에 대한 투표로 인식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전국적인 유명 인사를 총리 후보로 많이 보유하고 추천한 대정당에 유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1인 2표제 선거제도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이를 두고 정치세력간 갈등을 빚어 왔다. 하나는 ‘100단위(비례 대표 의석수)’를 비례 대표 의석을 할당하는 기초로 채택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500단위(전체 의석수)’를 기초로 삼는 것이다.
두 기준의 큰 차이점은, 후자(500단위)의 경우 비례 대표 의원 득표율에 비례해서 각 정당이 할당받은 전체 의석수를 초과한 지역구 의석을 얻은 정당에는 비례 대표 의석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확보한 지역구 의석수와 관계없이 비례 대표 의석을 보너스로 수여하는 ‘100단위’를 기초로 삼는 전자의 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번에 도입된 선거제도는 2019년 총선에서 ‘500단위’에 묶여 지역 선거구에서 최다 의석을 얻었으나 비례 대표 의석을 한 석도 얻지 못한 프어타이당과 같은 대 정당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총선에서는 비례 대표 의석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1인당 득표수는 7만 표에 그쳤으나 2023년 총선에서는 30만 표 정도로 추산돼 군소정당 후보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사용된 정당명부 비례 대표 의석 산출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정당이 전국에서 획득한 득표수를 하원의원 총수인 500으로 나눈 후(의원 1명당 득표수가 됨), 다시 각 당의 득표수를 의원 1명당 득표수로 나누면 그 당에 할당된 국회의원 수를 산출할 수 있다. 정당에서 확보한 지역구 의석수가 할당된 국회의원 의석수보다 적을 경우 비례 대표 의석으로 채워서 보상받지만, 반대로 정당에 할당된 전체 국회의원 수보다 지역구 국회의원 수가 많은 경우에는 비례 대표 의석이 배정되지 않는다.
이에 대비해 지역구에서 제1당을 예상한 프어타이당은 원내 과반의석 확보를 위해서 비례 대표 의석 확보를 위해 자매정당을 만들어 두었으나 자매정당인 타이락싸찻당(Phak Thai Raksa Chat, Thai Save the Nation Party)이 선거 직전에 해산되면서 막대한 정치적 손실을 보았다.
2019년 3월 하원 총선거(500 의석: 지역구 350명, 비례 대표 150명) 결과, 지역구 의석수로는 프어타이당이 136석, 팔랑쁘라차랏당이 116석을 획득하여 각각 제1당과 제2당이 되었다. 이어서 아나콧마이당(Phak Anakhot Mai, Future Forward Party)이 81석, 쁘라차티빳당 (Phak Prachathipat, Democrat Party)이 53석, 품짜이타이당(Phak Phumchai Thai, Proud Thais Party)은 51석을 얻었다. 프어타이당은 지역구 의석 136석을 확보했지만, 비례 대표 의석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반면 팔랑쁘라차랏당은 지역구 97석, 비례 대표 19석을 차지했다. 77개 정당이 출마하여 1석 이상을 획득한 정당의 수는 27개 정당이나 됐다. 결국 친군부 팔랑쁘라차랏당 및 군소정당을 포함한 19개 정당 연합세력이 254석으로 과반수를 확보해서 연립정권을 구성했다.
비례대표 의석수 계산법 (100단위와 500단위의 차이)
총선전망
총리선출 방식
2023년 총선에 영향을 미칠 중요요인은 개정된 선거제도 외에 총리선출 방식을 들 수 있다. 2017년 헌법에 따른 총리선출 방식은, 총리 후보를 내는 정당은 하원 전체 의석수 500석 중 최소한 25석의 하원 의석(5%)을 확보해야 하며 각 정당은 3명의 (원·내외) 총리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총리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250명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126명 이상(상하 양원의 과반수인 376표)의 지지를 받아 총리에 당선될 수 있다. 상원의 지지를 받지 않고도 국회에서 단독으로 자당 소속 총리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하원에서 상하 양원의 과반수인 376석을 확보해야 하는 데 현실적인 정치 상황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런 총리 선출방식은 2013년 총선에 참여하는 각 정당의 의석수 확보나 연립정부 구성 전략에 영향을 미친다. 2019년부터 시작된 하원의 4년 임기는 2023년 3월 23일 마치게 되며 선거위원회는 잠정적 차기 총선 일자를 2023년 5월 7일로 정했다. 하지만 하원 조기 해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 총선 일자는 다소 유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여야구도는 다음과 같다. 여권은 팔랑쁘라차랏당을 중심으로 품짜이타이당, 쁘라차티빳당과 군소정당들이 연립정권을 이루고 있고, 야권은 프어타이당을 중심으로 까우끌라이당(Phak Kao Klai, Move Forward Party)과 군소정당으로 형성되어 있다. 까우끌라이당의 전신은 아나콧마이당이다. 차기 총선 후 정부 구성 시에도 대체로 5개 정당들이 주축이 되어 합종연횡이 이뤄질 전망이다. 선거제도 변화에 따라서 군소정당들의 당선 가능성은 2019년 총선에 비해서 확연하게 줄어들 것이다.
각 정당의 상황
프어타이당
새로운 선거제도에 따라서 가장 많은 의석수를 확보해 제1당이 예상되는 정당은 탁씬 계열의 프어타이당이다. 이전 총선 때와 달리 지역구 의석이 50석이나 늘어난 만큼(350석⊳400석) 의석수 확보의 기회도 늘었으며 비례 대표 의석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탁씬계 정당들은 2006년 군사쿠데타로 탁씬이 축출된 이후 모든 총선에서 제1당을 고수해 왔다. 지역적으로 가장 많은 유권자를 확보하고 있는 동북부뿐만 아니라 농민과 도시빈민의 절대적 지지까지 얻고 있기 때문이다. 프어타이당은 단독정부를 구성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우선적으로 전체 하원 의석수 500석 중 과반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리고 자당 출신 총리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하원 376석을 목표로 몇 개 정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상하고 있다. 프어타이당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탁씬 전 총리의 막내딸인 패텅탄 친나왓(Paetongtarn Shinawatra, 1986년생)을 차기 총리 후보로 내세우려 하고 있다. 패텅탄은 대다수의 총리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프어타이당의 포용과 혁신 자문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프어타이 가문의 수장(Head of the Phuea Thai Family)이라는 색다른 당내직책에 임명되기도 했다. 최저임금 두 배 인상, 대졸자 최저임금 2만 5,000바트(한화 약 93만 원) 보장, 의료 보장 범위 확대, 방콕 대중교통 요금 인하 등 포퓰리즘 정책을 발 빠르게 제시하고 있다. 패텅탄 친나왓은 현재 부동산 전문업체인 에스시에셋(SC Asset Corporation)의 최대 주주이며, 아동교육 자선단체 타이콤파운데이션(Thaicom Foundation)의 재단 이사직을 맡고 있다.
패텅탄 친나왓의 부친인 탁씬 전 총리 정권(2001~2006년)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다. 농가 부채 상환유예, 30바트(한화 약 1,130원) 의료복지 공급, 면 단위당 100만 바트(한화 약 3,750만 원) 농촌개발기금 할당 등을 추진한 ‘탁시노믹스(Thaksinomics)’라고 불린 탁씬의 경제정책 노선은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난 받으면서도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바 있다. 탁씬의 지지자들은 전통적인 태국 기득권층이 그의 인기 때문에 권력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반대자들은 그를 권력 남용과 부패의 상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쿠데타 후 부인의 토지매입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로 2년 실형을 판결받고 해외망명 중인 탁씬은 집권 기간 중 발생한 부패혐의 등으로 총 10년형의 판결이 내려진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도 정치적 복귀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프어타이당 내에서 그의 딸의 역할은 당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표시라고 볼 수 있다. 탁씬은 얼마전 조만간 귀국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그의 귀국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프어타이당의 연립정부 주요 가능 파트너는 까우끌라이당, 품짜이타이당, 쁘라차티빳당, 팔랑쁘라차랏당이 될 것이다. 프어타이당이 이념적으로 가장 가까운 당은 까우끌라이당이다. 하지만 정치 성향이 겹쳐 총선에서 경쟁적인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까우끌라이당이 왕실 개혁과 형법 112조(왕실 모독죄)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점이 현실적인 정치를 지향하는 프어타이당으로서는 연립정권 파트너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프어타이당은 현재의 여권 정당들(팔랑쁘라차랏당, 품짜이타이당, 쁘라차티빳당)과도 연립정권을 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2014년 쿠데타 주역인 현 총리 쁘라윳 짠오차를 배제해야 한다는 우선 조건을 내걸고 있다. 프어타이당이 탁씬 총리 귀국을 보장받고 팔랑쁘라차랏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이라는 관측도 정치권의 이목을 끌고 있다. 프어타이당은 차기 총선에서 제1당으로 강력하게 부상되는 만큼 외부의 견제를 받고 있다. 프어타이당과 에스시에셋은 근래 들어서 중국인 범죄조직과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고 탁씬 전 총리의 당무 간섭 의혹으로 정당 해산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까우끌라이당
까우끌라이당의 전신은 아나콧마이당이다. 아나콧마이당은 2019년 선거에서 31개의 지역구 의석과 무려 비례 대표 의석 50석을 얻었으나 군사정권에 대한 강경노선을 고수하면서 다양한 법적 문제에 직면하던 중 2020년 2월 21일 정당 기부금 불법 수령과 관련한 선거법 위반으로 해산되었다. 해산 후 새로 만든 정당이 까우끌라이당이다. 까우끌라이당은 사회민주주의 진보정당으로 군부와 왕실에 가장 적대적이다. 피타 림짜른랏(Pita Limjaroenrat, 1980년생) 까우끌라이 당 대표는 2019년 총선에서 아나콧 마이당 소속 비례 대표 의원으로 당선된 바 있으며 정치무대에서 참신한 이미지로 각종 차기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다. 이전 선거제도 하에서 비례 대표 의석수 확보에 가장 득을 본 것은 까우끌라이당의 전신인 아나콧마이당이었지만 2023년 총선에서 까우끌라이당은 선거제도가 변경됨에 따라 이런 점에서 불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2014년 군부 쿠데타 이후 정치의식이 크게 성장한 MZ세대, 진보적 지식인들과 학생운동세력들의 지지는 총선에서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최근 주요 정당 선호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까우끌라이당은 프어타이당에 이어 두 번째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까우끌라이당은 프어타이당과 지지세력이 겹쳐 총선에서 경쟁적인 관계에 설 것이지만 총선 후에는 연정구성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팔랑쁘라차랏당이나 루엄타이쌍찻당과의 연정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
피타 대표는 다수의 해외대학에서 인상적인 해외 유학 경험을 갖고 있으며 25세의 나이에 가족기업으로 쌀겨기름을 생산하는 CEO애그리푸드(CEO Agrifood)의 부실 경영을 회생시키기도 했으며 그랩타일랜드(Grab Thailand)의 전무직을 맡기도 했다. 2019년 7월 하원 연설에서 농촌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토지 소유권, 농민 부채, 대마초, 농업 관광, 수자원에 관한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해 여론의 주목을 받고 떠오르는 스타 정치인의 반열에 올랐다.
팔랑쁘라차랏당
2022년 8월 24일 헌법재판소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에 대해 헌재의 최종 판단이 있을 때까지 직무 정지 결정을 내렸다. 그가 직무 정지를 당한 이유는 2017년 개헌으로 확정된 8년이라는 총리 임기(4년 두 차례)를 언제부터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 때문이었다. 야권에서는 쁘라윳 총리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2014년 8월부터 8년이 되는 시점인 2022년 8월 24일로 그의 임기가 끝난다고 주장했다.
9월 30일 태국 헌법재판소는 쁘라윳 총리의 임기 시작은 개헌 시점인 2017년으로 봐야 할 것이기 때문에 헌법상 최장 8년인 총리 임기를 넘기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이 결정으로 쁘라윳 총리는 야권이 제기한 임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총리직에 복귀했으며 연임에 성공할 경우 2025년 4월 6일까지 재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는 총리 전체임기 4년 중 절반만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현재 팔랑쁘라차랏당은 당권투쟁과 야권의 의회내 정부불신임 과정에서 자중지란이 발생해 다수의 의원들이 탈당함으로써 당세가 약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정당 선호도 여론조사에서도 팔랑쁘라차랏당은 하위권에 머물러있다.당내 반발에 처해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 쁘라윳 총리는 급기야 신생정당인 루엄타이쌍찻당(Phak Ruam Thai Sang Chart, United Thais to Build the Nation)으로 옮겨 출마하기로 결정했다.
이 당은 2021년 3월 쁘라윳 총리 측근들이 만든 정당이다. 쁘라윳 총리는 얼마 전 루엄타이쌍찻당 대표를 총리 비서실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주로 현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친 쁘라윳 총리계 쁘라차티빳당 탈당 정치인들과 2014년 잉락 친나왓 전 총리 퇴진 시위를 벌였던 정치 세력들이 당의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다. 루엄타이쌍찻당은 신생정당이긴 하지만 단독으로 최소한 25석의 하원 의석을 확보하기만 하면 총리 후보를 낼 수 있다. 또 다른 정당과의 연합으로 126석의 하원 의석수를 확보하게 되면 쁘라윳 현 총리를 지지하는 상원(250석)과 함께 그를 총리로 당선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얼마 전 태국 정부는 쁘라윳 총리 지지세가 강한 남부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개발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남부 국경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 14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대다수가 무슬림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이 지역을 세계 시장을 겨냥한 할랄 식품과 서비스 중심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다분히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공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정책들이다.
한편 팔랑쁘라차랏당은 현재 당 대표인 쁘라윗 웡쑤완(Prawit Wongsuwon, 1945년생)을 차기총리 단독후보로 추대했으며 총선 후에는 (쁘라윗의) 팔랑쁘라차랏당, (쁘라윳의) 루엄타이쌍찻당이 다시 연합하여 연립정부 구성의 핵심세력이 될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지만 양 당 관계는 총선이 다가올수록 협력과 대립이 교차되는 긴장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쁘라윳 총리와 쁘라윗 당 대표는 2014년 쿠데타를 일으킨 동지이며 군대 내에서는 밀접한 선후배지간으로 보병 제21연대를 기반으로 한 태국판 하나회(Burapha Payak, 동부호랑이그룹) 멤버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자는 총리가 되기 위한 상원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경쟁적 관계에 놓여 있다. 상원이 둘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이지가 확정된 것도 아니다. 상원은 정치안정을 위해서 두 사람이 이끄는 정치세력 중 연립정부 구성시 하원 과반수 이상(251석 이상)을 확보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상원의원은 2014년 쿠데타 후 만들어진 군사평의회(NCPO, National Council for Peace and Order, 2014년 5월 22일부터 2019년 7월 10일까지 존속)가 임명했다. 쁘라윳 총리는 군사평의회 의장이었지만 이 기구를 실제로 운영한 것은 자문회의 의장 쁘라윗이었다. 쁘라윳 총리의 선배이기도 한 쁘라윗은 지금도 당뿐 아니라 군부와 상원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이다. 쁘라윗은 쁘라윳과 연대하지 않고 오히려 프어타이당과 연정을 구성한 후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프어타이당이 제1당이 되고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상원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연립정부를 안정되게 이끌기 위해서 쁘라윗 총리카드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쁘라차티빳당
쁘라차티빳당은 태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친 왕정 보수정당(1946년 창당)이며 전통적으로 남부와 방콕에서 지지를 받았다. 2019년 총선을 앞두고 아피씻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1964년생) 쁘라차티빳당 대표는 군부가 지지하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와는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쁘라차티빳당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총선에서 전통적 거점인 방콕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으며 주요 텃밭인 남부지역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1946년 창당 이후 태국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의 고비마다 중요 역할을 담당했던 쁘라차티빳당은 관료화된 정당구조, 경직된 연공서열제, 지역 연고주의 등이 당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당 대표 리더십의 위기와 당내 갈등(쁘라윳 총리 지지파와 반대파 갈등)으로 많은 당내 중진들도 당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쁘라차티빳당을 탈당한 인사들 중에는 쁘라윳을 차기 총리로 내세우고자 한 루엄타이쌍찻당으로 옮겨 간 인사들이 많다. 현재 품짜이타이당과 함께 연립정부의 핵심축을 이루고 있는 쁘라차티빳당은 대마초법안 제정을 앞두고 이를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품짜이타이당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2019년 총선에서 쁘라차티빳당은 지역구 33석, 비례 대표 20석을 얻은 바 있지만 정치 상황과 선거제도의 변화에 따라서 2023년 총선에서 선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품짜이타이당
품짜이타이당은 2019년 총선 후 유일하게 원내 의석수가 크게 증가한 정당으로 연립정부 내 2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품짜이타이당은 원래 탁씬계 정당인 타이락타이당(Phak Thai Rak Thai, Thais Love Thais Party)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정당으로 동북부 부리람(Buriram)을 정치적 근거지로 삼고 있어서 프어타이당과도 지지 세력이 겹치고 있다. 품짜이타이당 대표인 아누틴 찬비라쿨(Anutin Charnvirakul, 1966년생)은 차기 총리로 다크호스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이다. 임기 절반밖에 채울 수 없는 쁘라윳 총리의 강력한 연정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총선에서 품짜이타이당 총리 후보로도 나섰던 그는 현재의 연립정부 하에서 부총리 겸 보건부 장관을 겸직하고 있으며 근래는 의료용 대마초 재배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유명해졌다. 이 정책은 대마초를 비즈니스 기회나 일부 질병을 치료하는 대체 약초로 보는 중소기업인, 한약 옹호 단체 및 일반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데 약 백만 명의 일반 시민들이 대마초 재배를 신청했다고 알려졌다.
2022년 12월 말 다수(34명)의 다른 정당 의원들이 품짜이타이당으로 대거 입당하는 사례가 있었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정치적 갈등이 만성화 되고 있는 정치 상황 속에서 중도정당으로의 적절한 자리매김이나 정치적 양극화를 지향하는 정책 등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정치적 확장력이 기대되고 있다. 그래서 품짜이타이당은 연립정부 구성 시 가장 선택지가 넓은 정당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중립적 정치성향을 갖는 아누틴 대표가 때때로 차기총리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품짜이타이당은 2019년 총선에서 지역구 39석, 비례 대표 12석을 차지한 바 있다.
기타 군소정당
선거제도 변화에 따라서 군소정당들이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체급을 키우기 위해서 합당을 추진하고 있는 몇몇 유의미한 군소정당들의 움직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정당들을 이끄는 지도급 인사들의 개인적인 인기와 정치적 비중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7년에 창당되어 2019년 선거에서 3석을 차지한 찻팟타나당(Chart Pattana Party)은 껀 짜띠까와닛(Korn Chatikavanij, 1964년생) 전 재무장관이 당 대표를 맡고 있는 신생정당 끌라당(Kla Party)과 2022년 9월 합병했다. 찻팟타나-끌라(Chart Pattana Kla Party)라는 기치 하에 모인 그들의 조합은 2023년 총선에서 정치적 기회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3월 설립된 타이쌍타이당(Thai Sang Thai Party)은 2022년 1월 탄생한 쌍아나콧타이당(Sarng Anakot Thai Party)과 파트너십 체결을 위해 협상을 추진하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쌍아나콧타이당은 전 재무 장관 겸 경제 차르라고 널리 알려진 쏨킷 짜뚜씨피탁(Somkid Jatusripitak, 1953년생)이 이끌고 있다. 이들 정당들은 이러한 지도급 인사들을 총리후보로 내세우면 비례대표 득표율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타이쌍타이당은 팔랑쁘라차랏당과의 합당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군소정당들의 군소정당간 혹은 기존 대정당들과의 합당 등 이합집산 현상은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총선에 영향을 미칠 변수: 헌법개정과 국민투표
앞으로 총선에 영향을 미칠 중요 변수 중 하나가 헌법개정과 국민투표이다. 비록 선거제도가 개정되었더라도 현행 2017년 헌법은 여전히 비민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왕실 개혁, 상원제도 개혁 등 보다 근본적인 정치구조 변화를 요구하는 내용은 헌법개정에서 제외되고 선거제도 개정만이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2017년 새 국왕으로 등극한 와치라롱껀(Wachiralongkon, Rama X, 1952년생)은 2014년 군사쿠데타 세력의 호위하에 왕권 강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군부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으며, 군사정권과 새로운 왕권 사이에는 호혜적 공생모델이 구축되어 있다. 왕실 재산관리국(Crown Property Bureau)을 국왕이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받았고, 왕실 관련 기구들의 운영 주체는 정부에서 왕실로 이관되었으며 왕실 수비 부대들은 국왕이 직접 통제하게 되었다. 또 태국 헌법에는 국왕은 지존의 존재이며 누구도 국왕의 지위를 침해할 수 없으며 국왕을 비난하거나 고소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 태국 형법 112조는 국왕, 왕비, 그의 상속자나 섭정을 비방, 모욕하거나 위협하는 자는 3년에서 15년까지 형벌에 처해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7년 헌법에 따르면 완전한 문민 통치가 복원되기까지 잠정적으로 (2017년 헌법에 따른 2019년 총선 후) 5년간을 민정 이양기로 정하며, 이 기간 동안 상원의원은 군사정부(NCPO)가 임명한다. 군부 지도자들도 상원의원에 자동적으로 포함된다. 총리 선출과 관련해서도 하원의원이 아닌 자도 선출될 수 있게 하여, 군 출신 인사의 총리 선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또한 국가 위기 시에는 최고사령관, 3군사령관, 경찰청장 등이 포함된 위기관리위원회가 행정과 입법 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국민투표에서 추가항목으로 실시한 상원과 하원이 함께 총리를 선출하도록 하는 개헌안이 가결되면서, 군부가 임명하는 상원 250명이 총리선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새 헌법은 민정이양 후에도 5년간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명문화하면서, 군부의 권력 유지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까우끌라이당을 중심으로 왕실 개혁안이나 상원제도 개혁안을 포함한 전면적인 헌법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헌법 제256조는 상원 의원 3분의 1 이상이 찬성하지 않는 헌법개정은 불가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256조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국민투표 실시가 의무화되어 있다. 그래서 얼마 전 다음 총선 때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행하자는 법안이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상원에 계류 중이다.
만일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헌법개정을 찬성하게 되는 경우 상원제도 개혁이나 왕실 개혁 추진은 다시 정치 갈등의 기폭제가 될 것이 확실하다. 특히 까우끌라이당은 형법 112조 폐지를 강력한 선거 이슈로 삼을 것이 예상되어 총선과정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이후 연립정권을 구성할 때도 주요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헌법개정의 핵심적인 주요 내용과는 또 다른 내용의 개정도 새롭게 부상되고 있다. 현재의 총리 8년 임기제한을 철폐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다. 임기제한에 걸려있는 쁘라윳 총리가 새로운 총리가 될 경우를 대비해서 상원 일각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정치갈등의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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