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전도팀 방학을 하니 여유로운 금요일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잘 준비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아합의 아들 칠십 명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서 이스르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2.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3.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4.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 왕이 그를 당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5. 그 왕궁을 책임지는 자와 그 성읍을 책임지는 자와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6. 예후가 다시 그들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너희가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 명이 그 성읍의 귀족들, 곧 그들을 양육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7. 편지가 그들에게 이르매 그들이 왕자 칠십 명을 붙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8. 사자가 와서 예후에게 전하여 이르되 그 무리가 왕자들의 머리를 가지고 왔나이다 이르되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 어귀에 두라 하고
9. 이튿날 아침에 그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10.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11. 예후가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의 귀족들과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본문 주해)
1~5절 : 예후가 요람과 아하시야와 이세벨을 죽인 후에 요람의 아들 70명(개략적인 수치이다.)이 있는 사마리아에 편지를 보낸다.
사본을 만들어, 사마리아에 있는 관리들과 원로들과 아합의 아들들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낸 것이다.
귀족들은, 예후의 말대로, 요람의 아들들이 함께 있고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있기에 아들 중에 한 명을 왕으로 세우고 예후와 싸울 수도 있겠지만, 항복을 권고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예후의 말-어디 한 번 덤벼보라-에 겁을 먹은 것이다. 그만큼 예후는 사마리아 정복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자 지도자들은 왕을 세우지 않고 예후의 처분대로 하겠다고 한다.
요람의 충성된 신하였다면 예후를 반역으로 몰아 전쟁을 할 수도 있는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이유는 여호와의 심판이 집행되기 때문이다.
6~10절 : 그러자 예후가 그들에게 두 번째 편지를 써서 보낸다.
편지가 사마리아 성읍의 지도자들에게 전달되자 그들은 그 왕자들을 잡아서 70명을 모두 죽인 후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서 이스르엘에 있는 예후에게 보냈다.
예후는 사마리아에 입성하거나 칼을 휘두르지도 않고 왕족을 처단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전령이 예후에게 와서 왕자들의 머리가 왔다고 알리니 그 머리들을 성읍 어귀에 두 무더기로 나누어, 아침까지 두라고 명한다. 이와 같은 것은 반란의 기운의 꺽기 위한 예후의 조치이다.
예후는 왕족들에 대한 대량 학살에 관하여 백성들의 무고함을 선언하면서, 요람의 죽음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또 ‘여기에 있는 사람들(왕자들)은 누가 죽였는가?’라고 하면서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에 대한 혐오감을 은근히 암시한다.
그러나 예후는 엘리야의 신탁을 인용함으로써 사마리아의 대량 학살을 정당화한다.
예후는 자신이 죽인 요람 왕, 그리고 사마리아 지도자들이 죽인 왕자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이 일은 여호와께서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왕의 살해와 대량 학살은 예후가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일으킨 반란이 아니라, 이것은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성취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인해 도리어 예후를 신뢰하고 그에게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11절 : 예후는 이렇게 백성들을 납득시킨 다음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아합 가문의 관리들과 친지들과 제사장들-을 모두 쳐 죽였다.
(나의 묵상)
예후의 냉혹함과 잔혹한 심판이 계속 이어진다.
요람, 아하시야, 이세벨을 처단하고 이어 아합의 아들 70명의 머리를 자르게 한다.
자신의 손으로가 아니라, 그 아들들의 스승이요 보호자들이 나서서 그들을 죽이는 참담한 상황을 유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가?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왕상21:20~22)
이미 선지자 엘리야가 선포한 예언의 말씀대로 아합 집안의 멸문지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잔혹한 예후의 행동은 정당한가?
예후의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과 이어지니 매우 당혹스럽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려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으니(왕상21:21), 그가 어떻게 부드럽고 인자하게 이 일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행동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합 가문의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들들은 다 우상숭배자요, 탐심의 마음들이란 것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애초에 하나님과 분리되어 태어난 내가 바로 아합의 아들이요, 내 안에 있는 탐심이 70명의 아들들로 우글거리는 것이다. 그렇게 태어나 공중권세 잡은 사탄에게 조종당하며, 그 죄의 세력이 끄는 대로 이 세상을 사랑하며, 이 세상에 밀착되어 살아가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주님이 찾아 오셔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나의 죄인 됨과 십자가를 보게 하신다.
아들들의 머리가 잘려지는 것은 나의 옛 사람의 죽음으로서, 그것은 십자가의 은혜이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하던 내게는 그것이 죽을 만큼 아프고, 이해가 되지 않아, ‘하나님 이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있습니까?’ 하며 십자가의 삶이 싫다고 악다구니를 쓰면서 도리질하는 것이다.(이것이 복음을 알기 전 내가 해 온 기도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십자가에 연합됨이 없으면 진정한 성도, 진정한 주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생각한다.
‘주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나를 구원하여 주셔서 새 생명을 주신 것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십자가 이야기는 그만하고, 긍정의 마음으로 열심히 잘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 라는 엉터리 생각을 말이다.
이것이 왜 엉터리인가?
첫째, 십자가 보혈의 이야기는 구원받은 그때 한 번만이 아니라, 내가 평생토록 해야 할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구원받았어도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늘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더러움은 나의 결단과 결심으로 정결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보혈 아래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긍정의 마음이란 것을 살펴보면 그것은 다 땅에 속한 것으로서 자기확장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자기확장’은 주님이 말씀하신 ‘자기부인’과는 정반대인데, 그것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가 있겠는가?
셋째, 애초에 인간은 그 어떤 행실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없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린 예수님, 이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창세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함께 하신 그 영광을 아들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온전하게 만들어 가신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것처럼 성숙도, 성장도 주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바로 십자가로 이끄셔서, 나의 죄에 대해 몸서리치게 만드시고, 그 죄를 나 스스로가 처리하지 못함을 알게 하시고, 성령을 의지하여 그것을 십자가로 끊어 내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내 안에 있는 아합의 아들들의 머리를 잘려지게 하심으로 주님의 거룩하심과 온전하심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 다가가게 하시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예후의 잔인함은
죄에 대한 저의 단호한 태도임을 생각합니다.
자기사랑이 무한한 저는
죄에 대해 한결같이 단호하지 못하고 때때로 미적거릴 때가 많습니다.
온갖 핑계를 대며 자신을 변호하는 가증스런 자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제 안에 성장하는 아합의 아들들이 없도록
그 징그러운 것들이 다 목이 잘려지게 하옵소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께 연합됨으로
호시탐탐 맴도는 죄의 세력을 무력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