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커피 한 잔 만들어 마시며 인터넷 게시판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누가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올려놓은 게 있어
지금 세번 째 듣고 있습니다.
이 노래 올린 이도 아마 <오아시스>를 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처럼 가을 나들이를 했지요.
우리 학교 생일이라 아침 일찍 둘이서
낫 챙기고 포도 좀 챙기고 집을 나섰습니다.
표충사 가는 길로, 밀양댐 위로, 양산 공원묘지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댐 만든답시고 많이도 망쳐놓았더군요.
댐 경치 구경하러 사람들이 많이 오는 모양이던데
제 눈에는 결코 구경할 경치가 아니라 아픈 내 모습이었습니다.
팔송 공원묘지에 들러 엄마 묘 손보고
정관에 가서 아버지 묘 손보고
시간 맞춰 해운대 그랜드 호텔에 가
<오아시스> 봤습니다.
보고 나니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이 노래(내가 만일)가 나오는 부분에서
먼산은 눈물이 났다고 했습니다.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 노래를 죽죽 부르고 싶은
여주인공의 마음이 참 절절했지요.
정말 앞으로는
내 눈에 보이는 게 절대 실체가 아니니 이러저러 판단하지 말고
그저 아, 저러는 구나. 저 사람이 저러는데는 무슨 까닭이 있겠지
이렇게 넘어가야겠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게,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게 얼마나 많은데
뭐 안다고 판단하고, 지적하고, 가르치러 들고, 탓을 하고...
내 눈으로 세상을 살지 말 일입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차가 조금 탈이 나서
자동차방에서 잠시 고치고
덕계에 들러 입에서 솔솔 녹는 쑥밀면 곱배기 먹고
석남사 길 굽이굽이 돌아왔습니다
양산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장만 보이더니
석남사 넘어오니
냄새가 다르고 공기가 다르고 어둠이 다릅니다.
사람이 이런데서 살아야 하는데, 했습니다.
따가운 가을 햇살에 빨간 고추 말리고
김장 배추 무, 벌레에 다 뜯기지 않도록 손보는 일을
요즈음 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풀 깎는 기계로 아직도 늠름하게 버티고 있는 풀 베고.
약 안 친 감이 홍시가 되어 달달한게 맛 좋습니다.
산이는 그 자리서 감을 열 개도 먹어냅니다.
감 좋아하는 사람들, 와서 좀 따가면 좋을텐데.
산자락 위에서 내려다보는 가을 들판이
점점 아름다워지고 있습니다.
일하다가 아래 들판 내려다보고 일하다가 내려다보고
몇 번 그러고 나면 해가 꼴닥 넘어갑니다.
어둑어둑한 산길 내려오면서
때때로 반딧불을 만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