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적공간
비가 온다. 창문에 방울방울 맺힌 빗방울이 보기에 좋다. 창으로 보이는 비 오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난데없이 헛헛함이 찾아온다. 포털 화면에 떠 있는 글 제목이 겹쳐졌다. '감정을 지나 보내다' 라는 글이다. 헛헛함에 대한 자기 감정 상태를 표현하고 있었다.
사람에게 부지불식간에 헛헛함이 찾아올 때, 사람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에 대해 생각이 머문다. 비가 내리는 풍경은 봄비처럼이다. 아직은 풍경이 가을비라는 느낌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비는 빈 공간에서 하염없이 무작위로 낙하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그 막막한 공간을 준비없이 내린다. 그래서일까?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어떤 쓸쓸함이 감도는 것이었다. 풍경은 봄비처럼인데 여름을 벗어나는 시절이라 그럴까 비가 품은 여운은 쓸쓸함이었다. 어젯밤에 허공에서 말갛게 빛나는 달빛 주변 구름에 커다란 달무리가 잠시 서리는 것을 보았다. 혼자서 떠 있는 달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은 달을 볼 때마다 느끼는 의문이기도 하였다. 아마도 그 의문에 충족할 적당한 표현은 끝내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땅에서는 촘촘한 불빛들이 반짝이고, 다행히 하늘은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있어 땅과 하늘 사이의 공간이 넉넉하다. 아직은.
비가 오는 날에 찾아든 헛헛함을 비 감상이나 하면서 그냥 내버려둘까? 하다가 그것 역시 헛헛함을 오래 붙잡고 있으려는 수작인것만 같아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신다. 찻자리를 가장 편하게 만들어 놓으려 했으나 집에서는 그 역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집에는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것들이 몰려 있으니, 찻자리 만드는데 공간을 다 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조금씩 분리했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찻차리를 분리해서 가벼운 형태 - 기본적 형태로만 세팅해 놓았다.
마음에 헛헛함이 침범할 때 차를 아무때나 마실 수 있도록 했다.(찻자리는 정적 그 자체로 보여지지만, 찻자리 그 자체는 어쩌면 카오스적인지도 모른다. 카오스적인 내면을 코스모스적으로 바꾸어내는 시간의 관통이 찻자리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내면에 일면서 붙잡히지 않는 그 바깥의 사유에 대한 시간이 찻자리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럼에도 늘 한곳에서만 차를 마시게 된다. 익숙한 움직임과 장소와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에 자주 앉기 때문일 것이다. 차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다보면 생각이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이내 헛헛함은 어디론가 감춰져 버린다. 그 헛헛함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생각의 동선을 이리 글로 써보는 것이다. 그리따지면 헛헛함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기도 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상념이 또 고개를 치켜든다.
요즘은 모리스 블랑쇼 '카오쓰의 글쓰기'에 눈길이 가서 읽어보기로 하였다. 이 책 서두 부분 '카오스라는 번역어에 대하여'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내 생각의 진행이, 내가 읽을 책을 선정하고 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내가 의문을 느끼고 있거나 해명하고 싶은 지점과 일치하게 될까? 라는 생각이 겹쳐지자, 그러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빈공간 빈 구멍 밝혀지지 않는 공간에 대한 것 - 나의 바깥에 있는 것에 대하여 - 그럼에도 그 바깥은 나의 안일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하여 - 망각된 기억의 저항일지도 모르는 헛헛한 카오스적 공간에 대한 해명이, 오늘 날씨에 대한 감상에서 오는 잡히지 않는 공간적인 감정에 대하여 조금은 접근하게 할 수 있을까?
비가 그쳤다. 2018/08/26
#모리스블랑쇼_카오스의글쓰기
#빈공간_텅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