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처치(Slow Church) 운동
유럽에서 금전적 수입과 사회적 지위에 구속되지 않고 인생을 느긋하게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른바 ‘다운 시프트(down shift)족’, 느림보족으로 불리는 이들의 소망은 삶의 속도를 늦추자는 것이다. 유럽다운 시프트족의 확산은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삶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만 보고 쉴 사이 없이 돌진해야 하는 무한경쟁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잠시 쉬기라도 하면 경쟁에서 뒤처지고 만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가? ‘급하면 돌아가라’는 말처럼 슬로시티(Slow City)를 통해 교훈을 얻었으면 합니다.
슬로우 시티(Slow City)란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치타슬로(cittaslow)의 영어식 표현입니다. 슬로우 시티(Slow City)라고 하면 말 그대로 "느린 도시"라는 뜻으로 향토 인으로 하여금 자연 속에서 살면서 그 고장 고유의 먹을거리와 지역의 고유문화를 느끼며 삶의 질을 향유하는 동시에 도시인(관광객)에게 마음의 고향을 제공하며 느리고 조용히 사는 공동체 운동을 말합니다.
1986년 패스트푸드(즉석식)에 반대해 시작된 슬로푸드(여유식)운동의 정신을 삶으로 확대한 개념입니다. 이 운동은 이탈리아의 소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ti)의 시장 파울로 사투르니니가 창안하여 슬로푸드운동을 펼치던 1999년 10월 포시타노를 비롯한 4개의 작은 도시 시장들과 모여 슬로시티를 선언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이 운동은 유럽 곳곳에 확산되기 시작했고, 현재 20개국 132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습니다. 슬로시티로 지정되면 이내 관광 명소가 된다고 합니다.
슬로시티 인증을 받으려면 인구가 5만 명이 넘지 않아야 하고 자연생태계가 철저히 보전돼야 합니다. 유기농 지역 특산물도 있어야 하고, 대형 마트나 패스트푸드점도 없어야 하는 등 조건이 꽤 까다롭습니다. 관광대국을 자처하는 일본도 20개 도시씩 두 차례나 슬로시티를 신청했지만 한 곳도 지정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7년 말 아시아 최초로 전남 신안군 증도와 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 완도군 청산도, 경남 하동군 악양면, 충남 예산군 대흥면과 응봉면 등 6개 지역에서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습니다. 현대인 들이 슬로 시티 운동에 공감하는 이유를 알라 보겠습니다.
이 시대의 석학,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이 시대의 화두는 세로토닌 이라고 합니다. 방화, 폭력, 막말, 묻지 마 살인...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대 사회문제 그 해답이 세로토닌에 있다고 했습니다.
20세기 화두였던 엔도르핀의 시대가 가고 21세기 세로토닌의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이런 사회적 현상(방화, 폭력, 막말, 묻지 마 살인… )은 경쟁이 심화되면서 현대인들의 참을성 부족과 세로토닌 결핍증후군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이시형 박사가 세로토닌 결핍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시형 박사에 의하면 중요한 뇌(腦)내(內) 신경전달물질(호르몬)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놀 아드레날린, 엔도르핀, 세로토닌입니다. 놀 아드레날린은 적과의 싸울 때, 화가 날 때, 증오심으로 불탈 때,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할 때 등 기분이 나쁠 때 나오는 신경전달 물질로 건강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칩니다.
엔도르핀은 이미 잘 아는 데로 마약인 모르핀 성분과 같습니다. 그러나 마약과 같은 부작용은 없이 모르핀을 투여 했을 때와 같이 기분이 상쾌해지고 없든 힘도 불끈 솟아나고 참으로 신바람 나는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따라서 엔도르핀을 행복 호르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항상 엔도르핀만 나오게 그렇게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바람 나게 살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이를 극복해 나갈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뇌에는 놀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의 중간 역할을 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 호르몬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놀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리게 되어 자기도 생각지 못했든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되는 여러 가지 정신 장애를 가져오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세로토닌을 많이 나오게 하면 놀 아드레랄닌과 엔도르핀을 적당하게 조절하여 앞에 말했든 현대사회의 병폐가 많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 이론을 교회 부흥에 접목시켜보면 어떨까?
일제 강점기와 6.25동란기의 기독교 신앙생활은 목숨 내어 놓고 적과 싸워야 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예배시간, 특히 기도시간에 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울음바다가 되는 예배가 가장 은혜 있는 예배였습니다. 특히 새벽 기도 때 우는 사람이 없으면 은혜가 없는 교회로 치부하기 까지 했습니다. 따라서 이때는 놀 아드레날린 신앙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기독교는 신자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라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죽을 각오로 믿는 신앙의 힘이란 강력하기 이를 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방이 되고, 6.25동란이 끝 난 시기의 기독교 신앙은 싸워야 할 적은 다 사라지고 놀 아드레날린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엔도르핀 이였습니다. 모든 예배와 신앙 행위는 엔도르핀 생산 일변도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찬송가 보다는 경쾌하고 신바람 나는 복음 송가를 즐겨 부르게 되고, 교회에 기타가 들어오게 되고, 나아가서는 트림과 북이 들어오고, 성령 운동으로 예배는 열광하게 되고, 방언과 입신으로 엑스다시 상태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심령대부흥회와 기도원의 철야 금식 집회, 은사 집회가 한국교회를 휩쓸었습니다.
이런 교회의 행태는 20세기 화두였든 엔도르핀 시대에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는 경이적인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와 불교는 엔도르핀을 생성하는 종교 의식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개신교의 놀라운 부흥에 따라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20세기가 저물어가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엔도르핀 시대는 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엔도르핀 대신에 세로토닌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이제 개신교의 열광적인 교회 분위기는 시대에 맞지 않는 괴리감을 가져오기 시작했습니다. 심령대부흥회, 기도원 성령 집회, 철야 금식 기도 등은 인기를 일어가기 시작하고 많은 기도원 들이 문을 닫게 되고, 대신 수도원과 수련원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들은 이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아직도 엔도르핀적인 예배를 고수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 차분한 세로토닌 적인 분위기인 천주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무더기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신교회서 교회 부흥을 되찾기 위해서 2008년도에 범 교단 적으로 한국 교회 성령강림 100주년 기념대회를 월드컵 경기장에서 대대적으로 개최했습니다. 그러나 아무성과도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21세기는 엔도르핀 적 방법은 효력을 발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도 엔도르핀의 향수에서 빨리 벗어나 차분하게 하나님의 말씀 연구와 내주하시는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를 위해 흥분을 가라안치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른바 슬로우 처치(slow church) 운동을 펼쳐 나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원로 Essay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첫댓글 "말씀은" 이 아니고 "말씀을" 이 아닙니까?
주님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아, 그렇군요. 제말에 가시가 있었군요. 시정하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말씀은 잘하신다"는 뜻은 그 분을 비하시키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옛날에 그 분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 생각에 "말씀을 참 잘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 생각이 나서 한 말인데...사실 그 분에 대해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그러나 자칫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 같아서... 정정했습니다. 권사님, 죄송합니다.^^
가볍게 한 말씀이었었는데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예종규 목사님은 새글이 있으면 제 블로그를 축복하시면서 메일로 보내주십니다.
많은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권사님, 제가 먼저 쓴 댓글을 지웠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저 분과 같은 노회에 있었다는 것이 제 착각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니 함자중 하나가 틀린 것을 늦게야 알았고 제가 아는 분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웠습니다. 죄송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