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주의 뒤끝은 이제야 날 일으킨다
종주 이틀 간 그리고 오늘,
물 말아 점심을 해결하는 까쓸한 속이지만
맘은 뿌듯한 행복감으로 부드러운 전율 느껴져 온다.
57명의 대 인원, 그도 모두 중년의 여인네들, 무사고 완주.
뒤몰아 채찍한 꼴찌의 마음도 선두를 이끈 회장님의 맘만큼이나....
10월7일의 아침은 비몽사몽간 이었다.
평소 산행시 늦잠은 잔일이 없었는데 종주의 설렘으로 잠 못 이뤘던
그 날은 늦잠을 자고야 말았다.
급히 챙겨둔 배낭과 냉동실의 고기만을 챙긴 채
헝클어진 머리를 엘리베이트에서 뭉뚱거리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는 새벽,
대형버스는 벌써 사람과 설레임으로 꽉 차 있다.
한 대의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갈라지기 싫은 마음에
모두 한 대에 몰아 싣고 이른 6시,
밝아지는 아침길은 노고단으로 열리고 있었다.
싸아한 공기로 아침을 여는 성삼재의 하루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일사불란한 행동 속에 약간의 긴장은 여인네들의 발길을 재촉했고
노고단 산장으로 이어지는 넓은 포장길은 인단풍의 물결로 술렁거렸다.
노고단 산장.
임원진에서 준비한 주먹밥으로 간단한 아침을 해결하고
이제 발길을 조금 비좁은 등산로를 따라
종주의 풍선이 조금씩 조금씩 부풀리기 시작했다.
노고단에 올라서니 가장 먼져 반기는 반야봉의 부드러운
손짓이 다가왔고 능선의 잡목들은
다갈색 그리움으로 완연한 가을을 토하고 있었다.
부푼 기대감의 아침은 꽤 빠른 속도로 산행이 진행 되고
꼴찌를 뒤 따르는 키 큰 배낭의 무늬 좋은 가이드는 가슴이 답답했다.
가끔씩 들려오는 회장님의 목소리도 쌕쌕거림으로 가득했고
회원들의 지나친 긴장이 다소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뒤를 따르는 수 밖에 없었다.
임걸령!
샘의 물 한방울 목축일 여유없이 달아나 버리는 선두가
야속하지만 혼자라도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가져 본다
어느 해, 여유롭던 가을 날의 임걸령,
하늘 높푸르고 잠자리떼 한가롭던 추억속의 오후 한 때,
초콜릿 먹던 다람쥐.
한입 가득 뽈이 삐어 지게 챙겨 넣고는 두 앞발로
비스킷까지 챙겨들고 총총히 사라지든 앙증 맞던 고 녀석
여유롭던 볕살만큼이나 밝았던 여인네들의 웃음소리
혼자 느껴보는 잠깐의 여유는 입가에 그리움의 미소를 번지게 한다.
별살과 쌀쌀한 바람만이 쉬어가는 오늘의 임걸령은 왠지 쓸쓸하다.
반야봉 길 쳐다 보며 달궁 길 그려 보고
다시 뚜벅뚜벅 옮겨 가는 발걸음.
잡목속으로 숨겨진 남부의 능선들에서
얼핏 설핏 스쳐가는 능선의 가을은
맘조리는 맛보기일 뿐 아직 크게 와 안기는 가을은 없다.
삼도봉에서 기다리겠노라는 회장님의 무전이 설레는 음성이다.
뒤처지는 몇 명을 쫒아 삼도봉에 다다르니 선두 그룹이 기다리고 있다.
가슴이 트인다.
지리의 가장 큰 가을을 한꺼번에 안아 본다.
앞으로 바라 보는 남부능선의 아기자기한 꼬물거림이
앞으로 펼쳐질 가을 파노라마의 대장정 앞에
지리 가을의 큰 느낌 하나로 흔적을 남긴다.
펑퍼짐한 여인네들의 둔부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어디를 둘러봐도 거슬림하나 없이
점점이 물감을 흩뿌린 가을의 모습은
찥은 푸르름의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한폭의 멋진 그림이다.
사진속에서 꿈처럼 보아 왔던 믿기지 않든 아름다움의 극치
오래 머물고 싶지만 모자란 듯 아쉬울 때 그리움은 큰법.
내 가슴 만큼만 그리움 안고 아쉬움 남겨둔 채
화개재로 향한다 .
뱀사골 목통골 그리며 발걸음 멈춰 쉬어가는 곳은 토끼봉,
편평하고 널찍한 바람도 쉬어가고 "에라". 자리도 좋으니
약간의 이른감 있지만 점심도 먹고 가자고
연하천에서 먹기로 한 점심을 앉은 자리에 펼쳐 놓는다.
오목조목 야무지게 준비한 아짐들의 정성이 곳곳에 펼쳐지고
매실주 한잔에 느껴져 오는 반주의 전율은 앞으로 펼쳐질 지리의
전율 만큼이나 짜릿하다.
근데 썩 입맛 당기지 않는 밥맛은 왠지?
아침을 생수 말아 먹고 점심도 또 그렇게 반덩이를 말아 먹는다.
꼴찌의 마음허기 일까?
그래도 피해 갈 수 없는 후식, 커피를 마다할손가
남은 물을 모두 모아 한 코펠 가득 커피를 끓이니
그 향기와 맛이 알콜의 전율처럼,
따끈함의 온기가 식은 땀으로 차가와진
몸 안의 냉기를 싹 걷어 가니 피로도 함께 날아가 버린다.
배낭은 줄였지만 앞으로 안았으니 부른배 앞세우고
연하천가는 길은 발검음이 무겁다.
그래도 왠지 짠한 그리움 배가 되는느낌은 ......
그냥 궁금하고 그리웁고 보고지웁다.
잘은 모르나 까페 젊은 친구들의 아지트라는
새로운 느낌만으로도 다시 찾는 연하천은 새롭기만 하다.
그냥 지나쳐도 좋은 느낌있으니까
기인 나무계단 지나 아담스레이 나타나는 연하천의 모습은
세석이나 장터목 벽소령 큰 산장의 여느 모습과는 달리
치밭목과 함께 장작불 아궁이의 따끈따끈한 온돌처럼
따뜻한 그리움 묻어난다
자신이 산을 다니고 절을 찾으면서도
큰 사찰보다는 작고 아담한 암자를 즐겨 찾고
여러 켤레의 정돈된 구두 보다는 댓돌 위에
오두마니 외로운 뽀얀꼬무신 한 켤레를
더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도 이같은 마음이리라...
연하천엔 생각대로 몇 명의 젊은 친구들이
정감어란 나무 벤취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썬그라스를 낀 젊은 친구가 막연히 누구일거라는 느낌이 간다.
생수 한잔으로 목도 축이고 비웠던 물병도 채우고
그리고 캔맥 6개를 사서
3개씩 나눠 담으며 무게의 짓눌림보다는
아름다울 벽소령의 별밤을 생각한다.
시간은 잘 모르지만 벽소령 까지의 시간은 여유롭다.
현재까지의 진핸 상황으로 보아
체력과 시간과의 안배가 고루 이루어진 것 같다.
서너사람 지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배낭의 무게에 일조를 한 비상 구급약통이 제법 몫을 톡톡히 한다.
슬쩍 두고 오려 했었는데, 잘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