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7: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본장에서부터 시작되어 다음 장까지 연결되는 우상 숭배 및 제사장 사건은 그 정확한 발생 시기를 추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삼손 이후가 아닌 사사 시대 초기로 보는데 그 가운데서도 대개 사사 옷니엘. 당시인 것으로 본다 에브라임 산지 -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하고 있었던 팔레스틴 중부의 구릉 지대를 가리킨다.
이곳에는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의 중심지인 실로 및 벧엘도 위치해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3:27 주석을 참조하라. 미가 - 이 이름은 '미카예후'의 단축형으로 그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으리요'이다. 성경에는 서로 인물은 틀리나 이와 같은 이름을 소유하였던 자들이 여럿 나온다.
[삿 17:2]"그 어미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어미에게서 많은 돈을 훔친 미가가 그 어미의 저주의 말을 듣고 돈을 다시 되돌려 주는 장면이다. 어머니께서...저주하시고 - 여기서 '저주하다'에 해당하는 '알라'는 본래 신에게 '탄원하다', '간청하다'는 뜻이다. 미가는 어미가 돈을 잃고서 신께 탄원한 이 같은 간구 자체에 어떤 주술적 신통력이 있는 줄로 굳게 믿고 있었다.
은 일천 일백 - 삼손을 유혹하는 대가로 들릴라가 블레셋 방백들에게서 받기로 약속한 돈의 액수와 동일하다. 16:5 주석 참조. 미가가 레위 소년에게 일년에 은 열을 주겠다고 약조한 것만 보더라도 이 은 일천 일백은 엄청난 금액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 미가는 어떤 용도를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으나 처음에는 어미의 수중에서부터 거액의 돈을 훔치고서도 회개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어미가 자기 돈을 훔친 도둑에게 저주하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처럼 어미에게 돈을 돌려주며 자신이 도둑임을 자백했다. 고대 사회에서 저주는 하늘의 심판으로 여겨졌으며 단순히 입술을 통하여 난 소리가 아니라 마음에 원하는 것을 그대로 성취시켜주는 대리자로 여겨졌다.
그리고 다들 저주는 그에 상응하는 축복의 말을 함으로써 저주의 덫에서 풀려지게 되는 줄로 믿었다. 본절에서 미가의 어미가 '내아들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한것도 그녀의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고대의 주술적인 미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분명 이는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저주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삿 17:3] "미가가 은 일천 일백을 그 어미에게 도로 주매 어미가 가로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만들 차로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돌리리라...."
내가...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 이처럼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을 저주의 덫에서 풀어내기 위해 가증스러운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면서도, 그것을 여호와에 대한 간절한 신앙의 표현인 양 여겼다. 이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 행위이며.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가증스러운 범죄였다.
아뭏든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며 부패해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 차로 - 우상이 하나인지 아니면 둘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양하다. 여기서 '한 신상을 새기며'에 해당되는 '페셀'은 돌이나 나무를 깍아 새긴 우상을 가리킨다.
그리고 '한 신상을 부어'에 해당되는 '마세카'는 아론의 송아지 우상처럼 주조하여 만든 우상을 가리킨다. 이로 볼 때 미가의 어미는 분명 두 개의 우상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와 관련 4절에서 '그 신상'이라고 하여 단수로 표현되어있고 18:20, 30에서도 '새긴우상'이라 하여 단수로 표현되어 있는 점에 의거하면 미가의 어미가 만든 우상은 하나 뿐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 따라서 혹자는 이 양자의 견해를 절충, 미가의 어미가 먼저 은으로 주조한 뒤에 끌로 다듬고 조각하여 하나의 우상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뭏든 그 우상은 암송아지 형상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아론의 금송아지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훗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도 이러한 금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단과 벧엘에 각각 하나씩 세운 적이 있다.
한편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론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겨왔던 금송아지는 불가시적인 여호와를 가시적인 형상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본다. 어쨌든 그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짓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이것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친히 천지 만물을 조성(조성)하신 분이긴 하나 그분은 그 어떠한 형상으로도규정될 수 없는 참된 신이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같은 하나님을 지상의 어떤 피조물의 형상으로 나타낸것은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가 되지 못하였다. (2) 여호와를 송아지 형상으로 만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애굽의 아피스신과 같은 여타 신들 중의 하나로 본 것이니 이는 일종의 불경죄에 해당된다.
[삿 17:4]"미가가 그 은을 어미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미가 그 은 이백을 취하여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어미가 그 은 이백을 취하여... - 미가는 훔친 돈 은 일천 일백을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레 6:5에 의하면 도적이 훔친것을 주인에게 돌려줄 때는 훔친 것에다가 1/5가치를 더하여 돌려주도룩 되어 있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에 언급되어 있는 은 200세겔은 미가가 은 일천 일백에 더하여 속죄금으로 지불한 바로 그 돈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 은 200세겔은 미가가 어미에게 되돌려 준 은 일천 일백 가운데서 떼어낸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레 5:24의 율법이 여기에 적용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전후 문맥상 이 두 견해중 보다 더 타당한 견해는 후자로 볼 수 있다. 은장색 - 원어 '차라프'는 '제련하는자', '세공하는 자'란 뜻이다. 곧 은을 재료로 하여 여러 가지 장신구나 물건을 만들어 내는 장인 의미하는 말이다.
[삿 17:5]"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 미가의 신당은 하나님의 법궤가 안치되어 있는 실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에브라임 산지에 있었다. 1절 주석 참조. 이것은 그 당시에 실로가 종교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단적인 증거가 된다. 그리고 미가가 하나님의 성소 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파행적으로 개인적인 신당을 소지했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얼마나 문란했던가를 입증해 준다.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 '에봇'은 금실, 청색실, 자색실, 홍색실로 짜 어깨에 걸치는 의복으로 대제사장이 입는 예복이다. 그런데 이 에봇이 우상처럼 숭배된 것은 기드온 때이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에게서 전리품으로 취한 모든 금으로써 에봇을 만들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기념하려고 했는데 이러한 기드온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음란히 섬겼던 것이다
본문에서 미가가 다시 에봇을 만들어 우상 숭배에 사용한 것도 아마 그 같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 상으로서 고대로부터 근동 지방의 각 가정에서 숭배되던 우상이었다. 에스겔은 바벨론 왕이 점을 칠 때 이 드라빔을 사용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스가랴는 이 드라빔에서 거짓 예언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로 볼 때 드라빔은 미가가 세운 제사장이 점을 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것 같다.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 이스라엘의 제사장 제도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으로서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들이 그 직분을 세습토록 되어있다(출 28:1). 그런데도 에브라임 사람 미가가 이처럼 독단적으로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은곧 하나님에 대하여 월권
행위를 저지른 것일 뿐 아니라 죽어 마땅한 대역죄를 저지른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도 우리는 당시의 타락한 이스라엘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