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반드시 만나시게 되십니다. 음독을 하셨다고 하여도 그것을 불교는 탓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어 떠나신 분이라면 어떠한 벌도 받지 않는다고 풍왕의 이름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믿으셔도 됩니다. 두분의 인연은 이어질 것입니다. 두분의 앞날에 더많은 행복을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살아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때 다시 만나고 싶으면 언제 어느 장소 에서 다시 만나자.. 약속이 있어야 만날수 있듯이 하물며 생사를 넘나드는 경계선에서 막연히 죽음이 임박 할때 자식이 우리 부모님은 착한 일을 많이 하였으니 다음생에 좋은 곳에서 좋은 인연으로 만날수 있다고들 막연한 기대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것은 무척이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부터라도 살아서 만날수 있는 확실한 장소 아미타부처님 극락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시고 서로 서로 약속을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살아서 분명히 서로 서로 약속 하셔야 사후 만날수 있으니 나무아미타불 염불 열심히 합시다. 나무아미타불 ()()()
두 분이 저승에서 다시 만나실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것을 아실 수 있는 분은 불보살님 뿐이겠지요 아버님께서 어머님을 그리워 하시다 음독을 하셨다면 자제분들께서는 아버님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종의 천도재)아버님께서 어머님과의 사별로 마음의 고통을 받으신 것은 모두 아버님의 업보입니다 아버님께서 모두 감내하고 받아들여 그 업을 금생에 모두 받으셔야 했는데 그것이 고통스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으니 아버님에게는 옳은 선택이 아니셨습니다 스님들이 소신공양을 하시는 것과 일반사람들이 고통이 힘들어 자살을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금생에 회피한 업보
는 내생의 몸을 받는데 절대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나 아닌 남을 위해(이타행) 목숨을 끊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목숨을 끊는 것은 불교의 인과법으로 봤을 때 죄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마음이 불편하실 수도 있겠지만 자제분들께서 고인이 되신 아버님을 위하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지혜롭게 판단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님. 죄송하지만 불교가 바라보는 자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시면 합니다. 아직 정보가 부족하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생명을 끊었다고 합시다. 그것이 누구에게 피해를 주었기에 죄가 되어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말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 것이 만약 죄를 짓는 것이라 한다면 누가 불교를 자비의 종교라 하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금 이야기하신 것보다 더 관대하십니다. 불교는 결코 기계처럼 정해진 공식으로 인과를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내면도 살펴야 됩니다. 업은 의식의 차원이니까요. 부디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들어주십시요. 인간의 업보는 기계적인 인과가 아닙니다. 인간에게 감정과 의식의 어떤 요인들이 작동을 하는지 들어다 보아야 그 다음 업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지금과 같이 인과를 바라보신다면 남은 이에 대한 또는 업에 대한 자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순히 인과가 아닙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제외한 그 어떤 존재도 인과의 법칙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자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려고 하시지 마시고 좀더 깊게 들여다 보시길 바랍니다. 잘못하면 이 글을 올리신 분이 불안해 하실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몸이 아퍼서 힘들어 하는 아라한이 한분 계셨습니다. 늙고 병들어 이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가서 목숨을 거두어도 되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치료되지 않는 병을 가진 존재에 대해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당시에 많은 수행자들이 뭔가를 보았다고 하여서 자살을 하였을 때 부처님은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것은 중생들에게 아무런 이익을 주지 않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하지만 병든 아라한이 청하였을 때에는 그 상황을 보시고 허락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이렇게 상황마다 다른 법이 적용이 되었습니다. 모든 걸 카테고리화 시켜서 고정관념처럼 전달된 그런 법이 아니었다는 걸 공부하시는 분들께서는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그런 고정관념화 된 틀에서 벗어나야 비로서 법을 볼 수가 있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렇게 보실 수는 없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보살이 중생을 사랑하여 윤회를 하고 스스로 생과 사를 넘나들 듯이 이 분의 아버님 역시 자신의 생을 아까워하지 않고 먼저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면 누가 이것을 고의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과 정보을 제대로 읽어내는게 우선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초보불자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부처님의 법을 배울 때에는 부처님의 양날개를 함꼐 보셨으면 합니다. 한쪽에 지혜가 있으셨다면 한쪽은 자비가 있으셨습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공부는 님들에게 반쪽의도움만 되실 것입니다. 가슴과 머리 모두가 살아숨쉬는 공부가 되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공부의 길이지만 잘 정리하시면서 가신다면 반드시 왜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생을 해방시켜주고 자유롭게 해주는 것인지. 지혜롭고 자비로운 공부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 글을 달아주시길 바랍니다. 불자들께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잘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실 듯 합니다. 법문은 항상 이익을 주는 것이니 편안하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시간이면 합니다. 저도 제가 공부하고 체험한 선에서 솔직히 올리겠습니다.
죄송하지만 그것이 어리석은 선택이라 할 지라도 그러한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불교에서 보기에 어리석은 중생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마음을 가진 존재들에게 그것은 어리석다고 이야기를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고 하여서 그것이 설법이라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음이 어디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오만한 모습이라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은 상황에 따라 법을 다르게 전하셨습니다. 업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업보를 풀어주시기 위해 수준을 살펴가면서 이루어졌지요. 획일화된 가르침이 아니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처님은 결코 무정하신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무정한 마음을 유정하게 전달하셔서 감동을 주셨죠. 부처님의 가르침을 무정이라 생각하신다면 불법을 공부해서 얻는게 뭐가 있겠습니까. 일체의 고에서 벗어나 얻고자 하는게 복인데 복은 느끼는 것입니다. 평온도 행복도 모두 느끼는 것이지 무정한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하여서 무정한 존재가 된다면 어찌 보살이 자비의 화신이되고 법의 왕이 되겠습니까. 인과는 어쩔 수 없다고 하여도 법을 설하려고 하시는 분이 무정하시면 안되는 것이지요. 무정한 인과를 전하실 때에도 유정하게 듣는 사람을 배려하여 전해야 하는 것이 설법이 아닐까요.
자살을 통해서 외부에서 오는 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의 업보만큼 자신이 짊어지고 가면 그만이지요. 인연의 끈은 어머님 아버님이 서로를 선택하셔야 된다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저 세상에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 입니다. 제가 본 이 글을 쓰신분의 마음은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두분이 다시 만나뵈실수 있겠지요? 님들. 만나뵐 수 있을지 없을지는 불보살님들만이 아시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것조차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그런건 아무도 모른다고 이야기 하시기 보다는 그러시길 기도하십시요라는 답변이 이 글을 쓰신 분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두번째 여기계시는 그 어떤 분도 돌아가신 분의 이전 생활과 어머님 아버님이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직접 본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음독 자살의 배경에 대해서도 모두 추정할 뿐입니다. 정말 추정일 뿐인데 더 많은 정보나 이야기를 접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그 다음 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실 수 있으시다 보시는지요. 아버님께서 이 생에서 어떤 의식체계를 가지셧고 혹은 어떤 종교생활을 하셨고 그것이 의식속에 어떻게 남아있고 또는 돌아가시기 전에 의식과 죽음을 선택하셨을 때의 의식, 그리고 죽음을 택하셨을 때 사후 생에 대한 생각이 어떠셨는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나온 것이 없는데 어찌 알 수 있냐는
것입니다. 종교적 의례를 통해 아버님의 더 낫은 윤회를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속에서도 아버지께서 짐지고 가셔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저희는 얼마만큼인지 모른다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답변을 하는 사람들은 정보가 부족하다면 차라리 침묵하든지 이러하게 추정이 된다고 하시던지 아니면 위로를 하는게 좋은 법문이라고 말씀드리는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말씀드린 것은 이러한 면 때문입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깊은 앎을 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댓글 하나 역시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이구요.
인과는 철저하지만 업은 많은 변수들이 있습니다. 그건 의식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의식의 수준과 형성되어 있는 모습, 어머님과 어떻게 만나고 싶어하시는지, 윤회를 생각하셨는지, 삶에 대한 괴로움에 의한 죽음인지, 죽음을 각오하셧을 때 마음은 어떠셨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일체의 판단은 보류하여야 하고 그것이 불교의 윤회를 보라보는 불자들의 관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좋지 않은 죽음을 맞이 하셨다면 그에 걸맞는 의식을 통해 혼란스러운 존재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의 판단은 금물이고 특히 자제분들에게 불안감을 줄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지혜이면서 자비라고 말씀드린 점입니다. 우리들이 추측은 할 수 있을지언정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점들 때문이라 말씀드리며 초보불자님들에게 그 점을 알려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는 것이 괜찮은 것이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세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어떠한 판단을 하는 것은 구업이 될 수 있으니 조심스러워야 하고 자신의 생각에 대해 여러번 숙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판단의 기준이 하나처럼 보일 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넓은 의미인지 속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 먼저 심사숙고 하자는게 제 이야기입니다.
첫댓글 지난번 아버님께서 어머님 너무 그리워하다 그리워하다 ~ 글 올리신분이 시군요 글 보면서 맘이 많이 아팠는데 ...2년전에 어머니보내시고 또 아버님 마져 보내시니
그 아픈맘을 어찌 할까 어찌 위로가 될까 싶네요 극락왕생길 편히 가시게 나무아미타불 부처님께
어머니 만나서 극락왕생길 함께하시라 기도 많이해주셔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저도 힘든하루보내고 지금은 부처님께 매달려봅니다 사랑한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사랑합니다 ()()() ~~
눈물이........사랑합니다.그저그저 사랑합니다....두분극락왕생하시옵길 두손모아 발원합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존재하시는 부처님이시여 저님의 발원처럼 두분영가함께 부처님계신곳에서 오래도록함께하시길 지극히 발원합니다()()()
_()_
네. 반드시 만나시게 되십니다. 음독을 하셨다고 하여도 그것을 불교는 탓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어 떠나신 분이라면 어떠한 벌도 받지 않는다고 풍왕의 이름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믿으셔도 됩니다. 두분의 인연은 이어질 것입니다. 두분의 앞날에 더많은 행복을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살아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때 다시 만나고 싶으면 언제 어느 장소 에서 다시 만나자.. 약속이 있어야 만날수 있듯이 하물며 생사를 넘나드는 경계선에서 막연히 죽음이 임박 할때 자식이 우리 부모님은 착한 일을 많이 하였으니 다음생에 좋은 곳에서 좋은 인연으로 만날수 있다고들 막연한 기대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것은 무척이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부터라도 살아서 만날수 있는 확실한 장소 아미타부처님 극락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시고 서로 서로 약속을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살아서 분명히 서로 서로 약속 하셔야 사후 만날수 있으니 나무아미타불 염불 열심히 합시다. 나무아미타불 ()()()
원왕생, 원왕생. 극락국토 아미타불 연화지 발원.
부디 좋은곳에서 두 분이 꼭 만날수 있기를 빕니다..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마하살..()()()...
두분 모두 극락왕생하기를 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두 분이 저승에서 다시 만나실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것을 아실 수 있는 분은 불보살님 뿐이겠지요
아버님께서 어머님을 그리워 하시다 음독을 하셨다면 자제분들께서는 아버님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종의 천도재)아버님께서 어머님과의 사별로 마음의 고통을 받으신 것은 모두 아버님의 업보입니다 아버님께서 모두 감내하고 받아들여 그 업을 금생에 모두 받으셔야 했는데 그것이 고통스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으니 아버님에게는
옳은 선택이 아니셨습니다 스님들이 소신공양을 하시는 것과 일반사람들이 고통이 힘들어 자살을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금생에 회피한 업보
는 내생의 몸을 받는데 절대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나 아닌 남을 위해(이타행) 목숨을 끊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목숨을 끊는 것은 불교의 인과법으로 봤을 때 죄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마음이 불편하실 수도 있겠지만 자제분들께서 고인이 되신 아버님을 위하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지혜롭게 판단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님. 죄송하지만 불교가 바라보는 자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시면 합니다. 아직 정보가 부족하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생명을 끊었다고 합시다. 그것이 누구에게 피해를 주었기에 죄가 되어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말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 것이 만약 죄를 짓는 것이라 한다면 누가 불교를 자비의 종교라 하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금 이야기하신 것보다 더 관대하십니다. 불교는 결코 기계처럼 정해진 공식으로 인과를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내면도 살펴야 됩니다. 업은 의식의 차원이니까요. 부디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들어주십시요. 인간의 업보는 기계적인 인과가 아닙니다. 인간에게 감정과 의식의 어떤 요인들이 작동을 하는지 들어다 보아야 그 다음 업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지금과 같이 인과를 바라보신다면 남은 이에 대한 또는 업에 대한 자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순히 인과가 아닙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제외한 그 어떤 존재도 인과의 법칙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자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려고 하시지 마시고 좀더 깊게 들여다 보시길 바랍니다. 잘못하면 이 글을 올리신 분이 불안해 하실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몸이 아퍼서 힘들어 하는 아라한이 한분 계셨습니다. 늙고 병들어 이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가서 목숨을 거두어도 되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치료되지 않는 병을 가진 존재에 대해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당시에 많은 수행자들이 뭔가를 보았다고 하여서 자살을 하였을 때 부처님은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것은 중생들에게 아무런 이익을 주지 않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하지만 병든 아라한이 청하였을 때에는 그 상황을 보시고 허락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이렇게 상황마다 다른 법이 적용이 되었습니다. 모든 걸 카테고리화 시켜서 고정관념처럼 전달된 그런 법이 아니었다는 걸 공부하시는 분들께서는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그런 고정관념화 된 틀에서 벗어나야 비로서 법을 볼 수가 있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렇게 보실 수는 없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보살이 중생을 사랑하여 윤회를 하고 스스로 생과 사를 넘나들 듯이 이 분의 아버님 역시 자신의 생을 아까워하지 않고 먼저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면 누가 이것을 고의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과 정보을 제대로 읽어내는게 우선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초보불자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부처님의 법을 배울 때에는 부처님의 양날개를 함꼐 보셨으면 합니다. 한쪽에 지혜가 있으셨다면 한쪽은 자비가 있으셨습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공부는 님들에게 반쪽의도움만 되실 것입니다. 가슴과 머리 모두가 살아숨쉬는 공부가 되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공부의 길이지만 잘 정리하시면서 가신다면 반드시 왜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생을 해방시켜주고 자유롭게 해주는 것인지. 지혜롭고 자비로운 공부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귀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_()()()_
_()_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 글을 달아주시길 바랍니다. 불자들께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잘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실 듯 합니다. 법문은 항상 이익을 주는 것이니 편안하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시간이면 합니다. 저도 제가 공부하고 체험한 선에서 솔직히 올리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죄송하지만 그것이 어리석은 선택이라 할 지라도 그러한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불교에서 보기에 어리석은 중생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마음을 가진 존재들에게 그것은 어리석다고 이야기를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고 하여서 그것이 설법이라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음이 어디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오만한 모습이라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은 상황에 따라 법을 다르게 전하셨습니다. 업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업보를 풀어주시기 위해 수준을 살펴가면서 이루어졌지요. 획일화된 가르침이 아니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처님은 결코 무정하신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무정한 마음을 유정하게 전달하셔서 감동을 주셨죠. 부처님의 가르침을 무정이라 생각하신다면 불법을 공부해서 얻는게 뭐가 있겠습니까. 일체의 고에서 벗어나 얻고자 하는게 복인데 복은 느끼는 것입니다. 평온도 행복도 모두 느끼는 것이지 무정한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하여서 무정한 존재가 된다면 어찌 보살이 자비의 화신이되고 법의 왕이 되겠습니까. 인과는 어쩔 수 없다고 하여도 법을 설하려고 하시는 분이 무정하시면 안되는 것이지요. 무정한 인과를 전하실 때에도 유정하게 듣는 사람을 배려하여 전해야 하는 것이 설법이 아닐까요.
자살을 통해서 외부에서 오는 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의 업보만큼 자신이 짊어지고 가면 그만이지요. 인연의 끈은 어머님 아버님이 서로를 선택하셔야 된다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저 세상에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 입니다. 제가 본 이 글을 쓰신분의 마음은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두분이 다시 만나뵈실수 있겠지요? 님들. 만나뵐 수 있을지 없을지는 불보살님들만이 아시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것조차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그런건 아무도 모른다고 이야기 하시기 보다는 그러시길 기도하십시요라는 답변이 이 글을 쓰신 분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두번째 여기계시는 그 어떤 분도 돌아가신 분의 이전 생활과 어머님 아버님이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직접 본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음독 자살의 배경에 대해서도 모두 추정할 뿐입니다. 정말 추정일 뿐인데 더 많은 정보나 이야기를 접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그 다음 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실 수 있으시다 보시는지요. 아버님께서 이 생에서 어떤 의식체계를 가지셧고 혹은 어떤 종교생활을 하셨고 그것이 의식속에 어떻게 남아있고 또는 돌아가시기 전에 의식과 죽음을 선택하셨을 때의 의식, 그리고 죽음을 택하셨을 때 사후 생에 대한 생각이 어떠셨는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나온 것이 없는데 어찌 알 수 있냐는
것입니다. 종교적 의례를 통해 아버님의 더 낫은 윤회를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속에서도 아버지께서 짐지고 가셔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저희는 얼마만큼인지 모른다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답변을 하는 사람들은 정보가 부족하다면 차라리 침묵하든지 이러하게 추정이 된다고 하시던지 아니면 위로를 하는게 좋은 법문이라고 말씀드리는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말씀드린 것은 이러한 면 때문입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깊은 앎을 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댓글 하나 역시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이구요.
인과는 철저하지만 업은 많은 변수들이 있습니다. 그건 의식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의식의 수준과 형성되어 있는 모습, 어머님과 어떻게 만나고 싶어하시는지, 윤회를 생각하셨는지, 삶에 대한 괴로움에 의한 죽음인지, 죽음을 각오하셧을 때 마음은 어떠셨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일체의 판단은 보류하여야 하고 그것이 불교의 윤회를 보라보는 불자들의 관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좋지 않은 죽음을 맞이 하셨다면 그에 걸맞는 의식을 통해 혼란스러운 존재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의 판단은 금물이고 특히 자제분들에게 불안감을 줄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지혜이면서 자비라고 말씀드린 점입니다. 우리들이 추측은 할 수 있을지언정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점들 때문이라 말씀드리며 초보불자님들에게 그 점을 알려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는 것이 괜찮은 것이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세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어떠한 판단을 하는 것은 구업이 될 수 있으니 조심스러워야 하고 자신의 생각에 대해 여러번 숙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판단의 기준이 하나처럼 보일 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넓은 의미인지 속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 먼저 심사숙고 하자는게 제 이야기입니다.
꼭 다시 만나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어디서 봤는데 생전에 비슷한 업을 지으면 만날 수 있다고요..돌아가셨지만 방생마니 하시고 복덕 마니 지으시고 기도 하시면 만나실 수 잇을까요...두분이 꼭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나무아미타불 ()
저도 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어머니 아버님이 못다하신 안타까운 사랑
다시 만나셔서 꼭 백년해로하시며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두 분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