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추억을 되새기다.
때로는 한가하여 여유 있으면 “청산리 벽계수야!”로 시작하던 시조를 대청마루에서 장죽을 옆에 놓고 은은한 목으로 차분하게 읊으시던 조부의 시조를 들었던 때도 있었다. ‘주성초등학교’ 삼 학년 때인가?, 우리 집 앞 ‘토성’이라 부르는 산 편편한 곳에서 노송 숲, 묘소 제절 앞터에 차일치고, 멍석이 둬 장 깔린 자리 위, 교자상에 정갈한 음식을 차리고 선비들이 모여서 ‘시 모임’을 열었던 추억이 있다. 모두 시흥에 젖어 시를 한 수 짓고 읊는데, 음률은 평시조에 얹어 부르신 듯하다. 오늘 글을 쓰기 위해 조부의 문적을 뒤적이니, 1958년(무술)에 지은 시가 4수 나왔다. 그리고 1964년(갑진)에 보내온 통문을 보니, 문우계 시제는 卽是卽事로 즉흥 마음대로 지어 준비하시고, ‘李斗熙’란 분의 집으로 추석 지나고 8월 28일에 아침나절 오시라는 내용이다. 옛 선비들은 망국과 식민지 시대, 해방정국 낡아빠진 당시 유행했던 이데올로기, 피해로 동족상잔 전쟁을 겪으면서도 여유와 멋을 아시고, 옛 전통을 끈기있게 전승함을 꼬맹이 손주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청주지역의 선비는 무심천을 가운데 두고 동쪽 집성촌 성씨들의 文義契와 서쪽 집성촌 성씨의 文友契로 양분되었듯 싶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들이 이었고, 형이 돌아가시면 동생이 이어왔다. 우리는 작은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어 동생인 우리 할아버지가 이으신 모임이다.
일시, 귀향을 했다가 7년 지나니 선산이 수용되어 모두 이장을 하여서, 더 산책할 산도, 돌볼 조상 묘도 없어져 더 있을 의미가 없어 지금은 서울집으로 귀가했다. 유산으로 마지막 남은, 도시 한가운데 밭에서 채소를 가꾸며 농촌 삶을 즐기는데 재취업이 되어 주말농장을 하던 때, 고구마를 캐고 마늘과 쪽파를 심으려는 차에, 엉터리 시조를 나름대로 “태산이 높다 하되!” 읊조린다. 기왕이면 제대로 배우자고 시조 배울 곳을 찾다가 못 찾아서, 흙 묻은 옷을 털고 고급 식당으로 회를 먹으러 갔다가 인연을 만났다. “작업복을 입었어도 회를 줍니까?” “그럼요!” 당연지사, 방안으로 안내되어 ‘회 정식’으로 잘 먹었는데, 맛도 정성도 범절이 있다. 나와서 가계 벽의 장식을 보니 정성스러운 초보의 붓글씨 현판이 기대어 있다.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초학자지만 정성은 가득하다,”고 중얼거리는데, 주인 여사장이 말을 붙인다. “1년도 안 돼서 전시회에 선생님께서 출품하라고 해, 만든 것”이란다. 내 목소리를 듣고 바로 시조를 배워보란다, 그리잖아도 찾던 중 반갑다고 응수하며, 왜 내게 시조를 얘기하냐니까? “목소리가 시조 목이란다”. 고수의 길거리 캐스팅인 셈인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2017년 10월경에 시조를 입문했다.
청주대에서 건축공학을 공부하였고 대우그룹에서 근무하다 퇴직하여, 잠시 설계감리회사의 김포 현장에서 근무할 때였다. 퇴근해, 귀가한 토요일 밤으로 시조 전체 교육 시간을 변경하여, 시작한 스승의 열정도 대단하시다. 우리 부부는 시조 공부를 시작해서 앞서니 뒤서니 하며, 을부는 증평군에서, 갑부는 삼척시에서, 특부는 제천시에서 2019년 7월에 마치고, 코로나 발생으로 시조 배움도, 시조 대회도 중단되어, 비대면 대회로 전환되었기에 촬영, 제출하고 심사를 받았고, 명인부는 2021년 11월에 광진구에서 ‘구의회의장상’을, 국창부는 코르나 종식 후, 2022년 10월에 ‘정읍시장상’을, 대상부는 2024년이 다 저무는 11월 초하루, 8번째 도전한 보은군에서 ‘충청북도지사상’을 받아 졸업했다. 그간 7 번 도전했다. 삼척, 광진, 제천, 삼척죽서루, 경주향교, 영동, 대전에서, 1번의 실격과 2번의 장려상을 받았지만, 만 7년 1개월 만이다. 시조창을 잘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 통과되었다. 앞 선창자가 가사를 잊어 실격되고, 다음 창자는 음 이탈로 실격되어서 호박이 굴러들어 온 셈이다. 마이크 음향시설이 말썽을 일으켰지만 운도 준비해야 온다. ‘인간사 7년 운세 변화론’처럼, 온몸의 세포도 ‘미토콘드리아’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듯이, 시조 운도 따라 바뀐 것이다. 처가 촬영한 동영상을 보니, 서두른 것이 평소의 차분했던 모습과 전혀 다르게, 음이 여자를 따라가 높여서 고전을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시조는 조금 할 줄 아는 것이니, 차분하고 겸손하게 연습하고 가다듬어 장관상을 도전하련다. ‘총리상’이나 ‘대통령상’이나 ‘전주대사습’은 타고난 특출한 능력 보유 예인들, 대사습 출신이란 명예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할 일이지, 나에겐 가당치 않다.
그동안 7년을 청주지회는 수업료는 월 삯, 3만 원을 받았다. 한 번도 더 올리지 않고, 시조에 봉사하신 ‘고당 이명숙 선생님’께 참으로 고맙다. 고당 선생처럼 말없이 시조 문화 계승과 창달을 위해 사회에 솔선수범 봉사하는 분이 계시니 이 세상은 아직도 괜찮다. 고당 스승님은 여성 선비로 성품 청아하고, 의지 곧고, 추진력이 무소 같아 참 본, 받을만한 큰 어른이시다. 수업료 3만 원은 회원회식비와 운영비가 1만 원이고, 2만 원이 레슨비다. 시조는 대부분이 늙어서 시작하여 한참 배우다 목소리가 힘이 없어 소리 못 내고 탈락한다. 뇌 노화로 가사와 음정을 까먹고 탈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특수 깔딱고개를 졸업 못 하는 사람도 더러 많다. 그러나 어린이는 발달이 무척 빠르다. 청주지회에 초등학생 4명이 공부하는데, 모두 대상 부에 도전할 수준으로, 이들이 나서면 모두 통과할 것이다. 이런 초등생을 잘 이끌어가야 우리 시조가 맑아진다. 다행히 ‘전주대사습학생대회’가 있어 시조 창달에 큰 도움이 된다. ‘전주대사습’의 큰 안목을 찬양한다. 청주지회는 3년 연속 초등 3~4학년 학생이 참가하여 ‘전주대사습장원’을 차지하였고, 그의 동생들이 4~5살에 다시 입문하려고 한다. 내년이면 어린이만 합창이 가능할 정도다.
명창에서 주저앉는 부류는 대상을 평생토록 못 넘는 사람이 꽤 있다. 아깝게도 70줄, 아직 한참 나이에 병마로 이생을 달리한 나의 친구이자, 시조 도반 ‘임백순’과 나의 ‘진천삼수초등학교’ 1년 후배 ‘김각겸’ 친구는 참으로 애석한 인재다. ‘김각겸’은 놀라운 열정으로 일찍 대상부를 졸업하여, 사범으로 많은 사람을 열정적으로 지도했었다. 고려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그는 이론이 밝았다. 인류사에 가장 오래된 3 대직업의 하나인 건축은 기술적으로 구조가 튼튼하고 생활에 편리한 설계와 마감이 다음인데, 친구는 건축 도면과 공학 이론처럼 시조 악보를 세분하였고, 시조 입문자를 알기 쉽게 분 박하여 현대 용어로 잘 이해 시켰다. 이런 시조 연구를 많이 했던 그가 5년만 더 살았다면, 시조계 탁류가 좀 더 맑게 변화할 수 있었을 것인데, 지금 한두 사람이 맑은 물을 몇 동이 탁류에 넣는다고 정화가 되지는 않겠지만, 시작은 한 바가지의 맑은 물을 넣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니 반드시 맑은 물을 부어야 한다.
시조는 선비의 ‘수신제가’ 교육과정의 강령 중 수단이다. 선비의 수양 항목 ‘三判 六禮’ 중, 樂의 강령으로 채택한 각자의 수양 항목의 방법이었다. 악은 기악과 성악이 있고, 기악의 악기는 구하기도, 연주하기도 사람에 따라 시간과 능력의 차이가 있기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노래인 시조를 택한 듯하다. 작금의 시조는 수양은 배제하고, 음악성만을 평가하고, 측정하고, 단체를 만들고, 울타리를 쳐서, 직권이라며 강자의 논리로 다수를 이러니, 저러니 재단하여 묶으려 한다. 법은 약자와 다수의 편이고, 다수와 피지배자가 약자다. 또 한 부류는 이것으로 밥을 먹고 사는 ‘경제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이는 더욱, 우리 시조를 탁류에 몰아넣은 행위다.
시조는 가정경제 문제에 지장 없는 선비들이 모여서, 노래하며 즐기고, 남에게 전수하며, 거기에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혹자는 레슨비를 선불 받거나, 사람을 가려서 가르치려거나, 비법이라며 ‘고급 창자’가 부르는 ‘테크닉’이니 별도 레슨비를 요구하기도 한다. 혹자는 총리상, 전주대사습 등 수상자 출신이니 레슨비를 많이 내라고 한다면, 그것이 시조를 탁류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스승에게 배워서 대상부를 수상을 한 뒤, 제자가 다시 그 짓을 할 것 아닌가? 그런 짓들이 시조라는 전통문화를 추한 모습으로 변질시킬 뿐이다. 우리 시조란 장르는 공연예술로는 손님이 없다. 즉 돈이 안 되는 장르란 얘기다. 시조는 주로 한자나 고어로 된 시를 노래한 것이니, 창자들은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문자 해독도 안 되고, 다른 지식이 없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다 맞는 것이 아니지만, 교육과정도 일천 하고, 단순하게 타고난 목소리와 음악적 소질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또 경기소리, 남도 판소리에서 늙고 힘들어 시조로 넘어와서 자리를 잡는다고 팬을 확보할 수 있는 장르 또한 아니다.
시조는 모두 자기주장 강한 선비들이, 남이 뭐래도 제멋과 제 흥에 살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적과 맞서는 의지, 나를 인정치 않으면 내 길을 가다 낭떠러지에서 추락해 장렬히 바다에 빠져 죽을지언정, 나의 뜨거운 감정을 노래한 우리 조상의 인격 수양 장르이다. 그러니 이익을 추구하려는 추한 발상은 그릇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즐기면서 부르고, 그 맛을 아는 사람이 차츰차츰 늘어야 발전의 밑바탕이 된다.
장차 우리나라 시조를 이끌 뜻이 있는 분이라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었으면 한다. 첫째 탁류 정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둘째 시조인의 확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국제화, 세계화 방안은 더욱 지평을 넓힐 것이다. 일본의 시조 ‘하이쿠’는 이미 미국 교과서에 실였고, 한국의 시조도 미국 교육과정에 등록되었다. 우리 한국인들이 서방 문화를 동경하여 등한시하는 동안, 서구인은 동양의 조용한 참선과 느림의 아름다운 시조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세계적 노래가 된 아리랑을 듣고, 민요의 리듬에 도취 되고, K-팝처럼 펴져 나가듯이 시조의 세계화는 우리 시조 인의 몫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춘 그런 지도자감이라면 우리 시조인과 시조협회, 정회원들은 아무 말이 없어도 잘 가려낼 것이다.
반성을 해보시라! “나는 사심 없이 과연 잘하고 있는가?”를 명경에 비추어 스스로 허물 여부를 가려서 부족하다면 지금부터 적선하고 수신하여야 한다. 시골 마을 이장만도 못 한 명예를 가지고, 단순 명예욕으로 지도자가 되려는 자는 빨리 접어야 한다. 먹고 사는 수단으로 쓰려는 사람은 더더욱 접어야 한다. 차라리 ‘적은 돈’이라도 있으면 ‘이 카페’에서 필자의 글 “배당투자 공략 방법”을 읽고 돈이 돈을 벌어오게 하시라, 자본도 없고 몸뿐인 70대이면, 택시 운전을 추천한다. 수입이 좋다. 그런 언덕을 만들어 경제 기반이 충족된 후, 시조를 즐기고 후학의 인성과 음악성을 지도하여야 한다. 이것이 나름 그간 시조계에 발 담근 7년 간의 필자의 개인적 생각으로, 시조에 대한 원초적 추억이며, 그동안의 시조로 만났던 인사들에 대한 현실의 비판이며, 앞으로의 우리 시조계가 나아갈 기대에 대한 소견을 적어본다.
2024.11.01.
제6회 보은 ‘전국시조창경연대회’ ‘대상부’ 수상 소감
장소 보은문화예술회관
첫댓글 숙독하고 갑니다 ㆍ감사합니다
거촌 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