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토요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영지 악기팀이 시골 작은 교회의 마을 주민 전도를 위한 음악회를 엽니다.
이 첫걸음이 어떤 은혜로 이어질지 기대합니다.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행하심만을 보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되고 상한 마음을 덮어 주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2. 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도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13. 예후가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하는지라
14. 이르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15.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16.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17.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8.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19.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20.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
21.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매 바알의 신당 이쪽부터 저쪽까지 가득하였더라
22.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23.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24.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25.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26.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27.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본문 주해)
12~14절 : 예후가 이스르엘에서 아합 가문을 몰살하고 이제 바알 신전이 있는 수도 사마리아로 향하였다.
그가 사마리아로 가는 도중 아하시야의 형제 곧 유다 왕족들을 만나는데 이들은 이세벨과 왕자들과 왕의 친족들에게 문안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예후가 이들 42명을 한 구덩이에 몰아넣어 모두 죽여버린다.
15~17절 : 예후가 계속 사마리아로 가던 중 자기를 맞이하러 나온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다. 예후와 여호나답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후 동행한다.
예후가 자기 병거에 여호나답을 끌어올리고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고 한다.
예후는 여호나답과 함께 사마리아에서도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함으로 엘리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다.
예후의 이 열심-아합의 가문을 처단하고 바알 숭배자들의 뿌리를 뽑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정직히 행하였다고 하시며, 그로 인해 그의 왕위가 4대에 걸쳐 지속하게 된다.(30절)
예후의 이 심판의 과정에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요나답)이 함께 한다.
레갑 족속은 처음 가나안에 들어 왔을 때는 정착하였지만, 여호나답의 명령 이후 평생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살 집도 짓지 않고,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않는, 나그네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렘35:1~10)
여호나답이 후손들에게 이같은 명령을 내린 이유는 그가 예후와 합세하였을 때 바알 숭배자들이 당하는 끔찍한 결말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호나답이 예후와 함께 아합과 이세벨에 속한 자들을 심판하는 일에 동참하면서 자기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야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빠지지 않게 살 것인지를 본 것이다. 그는 여호와를 믿는 자들이 정착지의 생활 방식에 동조했을 때 가져올 위험을 직접 보았으므로, 바알 숭배의 가능성의 뿌리를 아예 제거하기 위해 그와 같은 금기조항을 명령했던 것이다.
18~27절 : 예후가 계책을 꾸며 바알 선지자와 바알 숭배자를 진멸하는 장면이다.
예후는 백성을 모두 소집하고 아합이 바알을 조금 섬겼다면 자기는 그보다 더 열심으로 섬기겠다고 하며 전국에 흩어진 바알 선지자들과 종들과 제사장들을 모두 불러 모아 바알에게 성대하게 제사를 드릴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바알 숭배자 중에 빠지는 자가 있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일을 꾸민다.
바알의 종들이 모이니 바알 신전은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가득 찼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하게 한다.
바알 제사장들이 그들의 제사를 마치자 이미 배치해 놓은 80명의 무관들을 시켜 그들을 다 죽여버리게 한다. 그러고는 바알 신전의 지성소에까지 들어가 우상들을 끌어내어 불태우고, 바알 신전을 헐어서 변소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이 열왕기서가 기록되던 그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나의 묵상)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를 생각한다.
하나는 예후가 말한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고(16절), 다른 하나는 요나답의 등장으로 인한 레갑 족속에 대한 생각이다.
1. 예후가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고 한다.
그의 열심은 정말 대단했다.
그런데 그 열심은 전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죽이는 일’이었다.
여호람을 죽이고, 아하시야를 죽이고, 이세벨을 죽이고, 여호람의 아들 70명을 죽이고, 오늘은 아하시야의 친족 42명을 죽이고, 바알 성전을 가득 메운 제사장과 선지자 들을 다 죽이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너는 어찌 그리 잔인하냐?’ 하시지 않고, ‘정직히 행했다’고 하시니(30절) 정말 다행이다 싶다.
어제 남편과 이 말씀에 대해 잠깐 나누었다.
예후의 잔인함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하시는지 궁금했는데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30절로 내려가니 잘했다고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보기에 일을 바르게 잘 하여, 내 마음에 들도록 아합의 가문을 잘 처리하였으니, 네 사 대 자손까지는 이스라엘의 왕위를 지키게 될 것이다."”(30절, 새번역)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잔인함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거론하시고 바벨론을 심판하셨는데, 예후의 잔인함에 대해서는 ‘잘했다’고 하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름대로의 답을 얻는다.
지지리 말 안 듣는 유다는 돌이키기 위함이었고, 바알 숭배의 근원지인 아합 가문은 멸망시키기 위함이라는 차이점이다.
아합 가문의 멸망은 그들을 다시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 나는 예후의 이와 같은 행동을 죄에 대한 단호함으로 묵상했었다.
그리고 그 죄를 쳐 내는 것은 나의 결심이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죄의 세력을 무력하게 하는 것임을 묵상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을 위한 열심은 내가 무슨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죄를 쳐내기 위해 십자가에 연합되는 일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복음을 몰랐을 때, 교회 안팎의 여러 가지 일들을 잘 해내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나 자신이 높아지려는 열망으로 가득했으니,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심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일’임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던 것이다.
이제 하나님을 위한 나의 열심이란 것 자체가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열심 즉 하나님의 일하심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내가 십자가에 눈을 떴듯이, 역시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해 내가 항상 십자가에 연합되기를 기도한다.
2. 선조 여호나답의 명령 이후 레갑 족속은 나그네의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의 명령도 이렇듯이 잘 지키는데,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유다를 질책하시는 장면에서 예레미야 35장에 나온다.
여호나답이 강조한 나그네의 삶은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강조하시는 말씀이다.
나그네는 이 땅이 본향이 아니니, 이 땅에 마음을 붙이고 사는 자들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성도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사는 자이니, 이 또한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인 것이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창세전 약속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이시다.
나의 구원을 이루신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연합됨도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부터 누리는 영생의 삶도 이루시니, 나는 매일 주님의 열심을 보며 사는 자가 된다.
(묵상 기도)
주님,
자신의 열심을 자랑하던 자,
하나님의 열심 앞에 엎드려 입을 다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저를 살리셨고,
하나님의 열심이 십자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그 열심에 얹혀사는 자가 됩니다.
매일 주님의 열심을 보며 살게 되니 얼마나 안심이 되고 기쁜지요!
날마다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
오늘도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