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3일 묵상 본문 : 열왕기하 10장 12절 - 27절 - 주와 교제하는 삶을 통해 믿음의 연합과 온전한 공동체로 세우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주말의 아침을 시작하며 주께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난 하루의 삶 가운데 부끄러운 모습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어리석은 자의 모습으로 말하며 행한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주님 앞에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내어드리오니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의 인자하심과 긍휼을 따라 저의 삶도 인자와 긍휼을 나누는 자가 되도록 도와주시고 삶에서 주와 함께 거룩한 백성으로 서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의 지체들도 은혜로 이끌어 주시고 주 안에서 교제하는 삶이 되도록 도와주시기를 소망하며 날마다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2 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도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13 예후가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하는지라
14 이르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15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16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17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8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19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20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
21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매 바알의 신당 이쪽부터 저쪽까지 가득하였더라
22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23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24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25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26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27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본문 해설
이스르엘에서 아합의 아들 70명을 죽인 후 예후는 사마리아로 가다가 목자가 양털을 깎는 집에(목자들의 회합 장소) 이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게 된다.
우연히 만난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보고 예후는 누구인지 물었고 그들은 아하시야의 형제이며 북이스라엘의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기 위해 사마리아로 가고 있음을 밝힌다.
이는 당시 유다의 아하시야 형제들은 북이스라엘의 왕실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것과 자신들이 만난 자가 요람과 아하시야와 이세벨과 70명의 왕자를 죽인 예후라는 것을 몰랐음을 보여준다.
이에 예후는 그들을 잡은 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42명을 모두 죽이게 된다.
그리고 예후는 그곳을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으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나게 되었고 서로의 안부를 물은 후 예후는 여호나답이 자신과 함께 할 것인지를 묻게 된다.
이에 여호나답은 예후의 제안을 수락하고 예후의 병거에 함께 올라 북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을 위해 움직이게 된다.
여호나답은 레갑 자손인데 레갑은 모세의 장인 호밥이 속한 겐 족속의 후예로 광야생활을 하다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에 들어간 족속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돈독하였다.
그리고 여호나답은 레갑 족속의 족장으로 역사가 요세푸스는 여호나답이 예후와 오랜 친구사이였으며 예후와 함께 북이스라엘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후는 여호나답과 함께 사마리아에 가서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진멸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하신 말씀(왕상21:19~24)을 성취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에 예후는 백성들을 모아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지만 자신은 많이 섬기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려고 하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제사에 참여하도록 명령하고 참석하지 않는 자는 살려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내린다.
그리고 이 일은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는 계략으로 시행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예후의 반역이 사사로운 반정과 같은 성격으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바알의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예후의 이러한 명령에 조금의 의심을 하지 않고 동참하게 된다.
예후의 명령을 따라 신하들은 북이스라엘 전체에게 이 명령을 전했고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대회에 참여했으며 바알의 신당을 가득 채우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예후는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예복을 주어 입힌 후 참여하게 했으며 예후는 여호나답과 함께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 섬기는 자들만 남기고 여호와의 종은 남아있지 못하게 한다.
이는 실제로 여호와의 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알 숭배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바알 숭배자들이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기 위해 신당에 들어가자 예후는 80명의 군사를 밖에 두고 안에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면 그 생명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무리들이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일 것을 명령하자 그들은 들어가서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바알 신전의 내부에까지 들어가서 우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신당을 헐어서 변소로 만들어 버린다.
신전을 변소로 만드는 것은 신전을 더럽히는 행위로 그곳에 다시 신전을 세우지 못하게 만드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신전의 영구적인 폐쇄의 행위를 의미하고 있다.
나의 묵상
아합의 아들들을 제거하고 사마리아로 향하던 예후는 우연히 유다의 왕 아하시야이 형제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도 제거하면서 아합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척결하는 일을 한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우연의 일치였지만 그 안에는 아합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징계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이 담겼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아하시야의 형제들은 아합에 의해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이 영향 받게 되었고 그 결과는 죽음으로 향하게 되는 것임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죄의 쓴 뿌리를 잘라내 버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인생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며 성도가 거룩한 삶의 모습으로 세워지도록 만드시는 은혜를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성도가 거룩한 삶을 위해서라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교제하지도 말라고 권면한다.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전5:11~13)
이는 거룩한 행실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죄악을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 자는 교회 안에서 함께 교제하는 자가 될 수 없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성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로써 정결함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주 안에서 연합되어야 하는 자이기에 성도는 주 안에서 교제하는 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함을 보여준다.
그런 관점에서 예후와 여호나답의 만남은 예후가 북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을 위해 힘쓰게 만드는 만남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레갑 족속은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기 위해 택한 삶의 방식이었으며 당시 여호나답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자였다.
여호나답이 예후를 만나기 위해 나아온 것은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했기 때문이며 예후도 자신의 반역이 개인사가 아닌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임을 종교개혁의 모습을 통해 드러내도록 만들게 된다.
결국 인생에 있어서 사람들의 만남과 그들과의 교제는 자신의 모습을 세우는 중요한 밑거름이 됨을 보여주고 있으며 무엇보다 주님과의 교제가 가장 중요한 만남의 시간임을 보여주고 있다.
주와 교제하지 않는 자는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기 때문이며 자신의 사명과 나아갈 길은 오직 주와 교제할 때 바르게 깨닫고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교제와 만남의 결과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한 것으로써 예후와 여호나답의 만남, 그리고 행하는 모든 일이 아합 가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예후의 종교개혁은 아쉬움을 남기는 개혁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알 선지자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예후가 거짓말을 통해 바알 숭배자들을 모았다는 것에 있다.
비록 바알 숭배자들을 제거하는 일에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결국 거짓을 통한 일이었기에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것이 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예후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이 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자신의 생각과 방법에 익숙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일에 부족한 모습임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결국 예후는 바알 숭배자들을 제거했지만 그는 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된다.(29절)
또 다른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르지 않고 자기 이익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으로 나아가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결국 참 된 믿음의 삶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될 때 바르게 세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며 믿음의 동역자도 주와 교제하는 삶이 전제될 때 지속적으로 동역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도 주의 말씀은 성도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고 바른 믿음을 세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다.
우둔하고 어리석은 자에게 갈 길을 가르쳐 주시고 교훈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고 주 안에서 지체들과 함께 교제하며 믿음의 길을 가는 자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인생에서 힘써야 할 삶의 가치와 기준을 배우게 됩니다.
성도는 주와 교제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동역자도 역시 주와 교제하는 가운데 함께 교제의 장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주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인간적인 연합은 오래가지 못하며 믿음도 변질되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하게 됨을 고백합니다.
어리석은 자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날마다 주 앞에 서기를 힘쓰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직 주 안에서 연합되는 것만이 진실 되며 온전하고 끝까지 변질되지 않게 만듭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고 날마다 주와 교제하며 믿음의 길을 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해야 할 일들을 감당하게 하시고 주 안에서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