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피곤한 몸을 깊은 잠으로 쉬게 하시고 새벽에 흔들어 깨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제 음악회를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시골 어르신들의 마음에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이 남겨지게 되길 기도합니다.
매달 그곳에 갈 때마다 선포하고 또 선포하게 하옵소서.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365일이 주님의 날이지만,
주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니 받아 주옵소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정결한 마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의지하오니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8.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29.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30.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31.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32. 이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 내기 시작하시매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에서 공격하되
33. 요단 동쪽 길르앗 온 땅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바산까지 하였더라
34. 예후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5. 예후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6. 예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햇수는 스물여덟 해이더라
(본문 주해)
28~31절 : 바알 숭배자를 진멸한 예후이지만 여로보암의 죄에서는 떠나지 못했다.
예후에 대한 평가에서 특이한 것은 그가 북이스라엘 왕들 중에 유일하게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예후의 왕조는 그의 4대 자손까지 이어진다.(30절)
예후의 왕조는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까지 이어졌다.
이 예후의 집안이 다스린 89년은 한 가문이 북 왕국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가장 긴 기간이다.
북이스라엘은 9번의 왕조가 바뀌고 19명의 왕들이 등장하면서 반역과 반역이 이어진다. 그런 왕들의 역사 속에서 예후 홀로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성경은 예후의 치적을 마무리 지으면서 두 번씩이나(29, 31절)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했음을 반복한다.
북이스라엘에 혹처럼 따라 붙은 것이 여로보암의 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여로보암이 자신의 왕위를 위해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 접근을 막은 것과 금송아지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붙여서 섬기게 한 죄이다.
32~34절 : 예후가 여로보암이 제정한 유사 신앙을 따라 행함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쇠퇴기에 접어든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조금씩 찢어 내기 시작하신다.
아람의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국경 사방에서 공격해 와서, 요단 동편의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의 땅, 즉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을 빼앗긴 것이다.
35~36절 : 예후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과 그가 권세를 누린 일들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모두 기록되었다. 예후는 사마리아에서 28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예후가 죽고 사마리아에 안장되었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나의 묵상)
바알 숭배의 뿌리를 뽑은 예후, 그것으로 가장 정직한 왕이라고 칭찬을 들은 예후조차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제나 혹처럼 붙어다니는 ‘여로보암의 죄’는 여로보암이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 접근을 막은 것이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섬기게 한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접근을 막은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금송아지를 섬기게 한 것은 자신들이 생각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어 내어 섬기는 것이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말 분노하실 만한 죄를 여로보암이 지었구나.... 새롭게 각인된다.
그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천리만리 멀어지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남북을 합쳐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잘한 왕은 다윗의 길로 행했다고 하고, 잘못 한 왕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고 표현한다.
그러니 다윗의 길과 반대되는 것이 여로보암의 길인 것이다.
다윗의 길로 행했다는 것은 무슨 왕으로서의 치적이 대단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회개한 왕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다윗의 영웅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간음과 살인을 한 다윗이라도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신다는 것을 말한다.
신약시대인 오늘날 여로보암의 길은 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구원의 감격 후, 더 이상 십자가를 보지도 말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이 증거 하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그런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는 그 신에게 자신의 소원만을 말하며 열심히 구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날마다의 회개는 사라지고, 탐심만 가득하여 하나님 이름만 불러대는 것이다.
자신의 소원을 구하는 그 열심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말이다.
고 허운석 선교사님은 한국 교회가 이렇게 타락한 이유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기도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이내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자식 잘 되기만을 구하는 그 기도의 뜨거움과 열렬함은 막을 수 없다. 이것이 온통 한국 교회의 기도가 되고, 목회자들이 그것을 부추기며 짝짜꿍이 되니 교회가 본질에서 벗어나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십자가 없이, 소원성취만을 구하는 것, 바로 여로보암의 길로 열심히 달려가는 모습이다.
바알 숭배자들의 씨를 말린 예후도 정작 이 금송아지 신앙을 따라갔으니, 그 역시 우상숭배자가 되고만 것이다.
예후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31a절)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합 집안을 잘 처리하고 그는 왕위에 올랐지만 하나님의 율법(말씀)에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율법은 주님의 새언약의 말씀으로 완성되었다.
주님께서 내 마음에 새겨주신 은혜의 말씀이 아니라면, 나 역시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해 허덕이다가 결국 거짓되지만 편리한 여로보암의 신앙을 답습하였을 것이다.
내 마음에 새겨진 새 언약의 말씀은 날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고, 매일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일, 즉 매일 말씀을 받아 먹으며 사는 것이다.
그러할 때 여로보암의 죄에 빠진 나를 이끌어내 주시기도 하고, 여로보암의 죄에 빠질 나를 경계하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모처럼 북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칭찬을 들은 왕이 나왔지만
그 역시 ‘그러나’(31절)가 따라 붙는 존재입니다.
저 또한 예후처럼 행할 존재인 것은
그 지독하고도 끈질긴 여로보암의 죄가 나의 본성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이 소원성취만을 구하던 자,
십자가 보혈만을 찬양하는 새 언약의 백성으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여로보암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늘 십자가에 연합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