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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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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소통광장 스크랩 장보고가 누구인지, 청해진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는 공부하는 여행 - 완도 청해진 유적지
무한의주인공 추천 0 조회 233 14.01.09 08:50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완도에 가면 꼭 들려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청해진 유적지를 돌아보고

새롭게 역사 공부를 한 기분이 들어서 참 좋았습니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바다와 어우러진 주변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던 그 느낌,

완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장보고의 청해진이 있어

완도는 역사의 땅으로 더 많이 기억하지 싶습니다

정말 거닐어 보면 가슴이 트이는 아름다운 작은 섬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을 알았답니다

오늘은 청해진 본거지였던 장도,

청해진 유적지를 공부하게 되는 여행기로 소개합니다.

 

 

 

 

 

 

저 보이는 섬이 장도입니다

장보고 해상왕국의 본거지였던 장도...

 

천 년 전 청해진은 동아시아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해상왕국을 만들었던 장보고의 본거지랍니다

완도 동쪽에 있는 장좌리 앞바다에 있는 장도가 그곳이랍니다

1991년부터 발굴을 시작해 섬 주변으로 둘러진 목책을 비롯해

통일신라시대의 문양이 새겨진 기와. 동아시아 해상교류를 알려주는 중국의 도자기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답니다

그 후 장도는 발굴이 마무리되고 새로 복원해 놓은 건물과

토성이 있는 장도로 들어가 보면 왜 이곳에 청해진을 설치했는지 알게 된답니다

작은 섬이지만 우물이 있어서 생활이 가능했으며

육지는 아니었지만, 썰물 때는 육지와 왕래가 가능하여

청해진 본거지로 충분한 지역이었답니다

 

지금 장도는 장좌리 마을에서 물 위를 가로지르면 200m 정도 떨어져 있답니다

지금은 다리를 놓아 아무 때고 갈 수 있게 해놓았답니다.

 

 

 

 

 

 

장보고 그는 누구인가?

 

9세기 초에 ‘바다의 왕자’로 세력을 떨쳤던 장보고는 대표적인 해상 세력 출신이었다.

그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외 무역에 종사하여 이름을 크게 떨쳤다.

장보고는 당에 건너가 군인으로 출세하였다.

그러던 중 신라인이 당의 해적들에게 잡혀 와 노비로 팔리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귀국 후 흥덕왕을 뵙는 자리에서 “저에게 청해를 지키는 일을 맡기신다면,

 해적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노비로 끌고 가는 것을 막겠습니다.”라고 요청하였고,

왕은 장보고에게 군사 1만 명을 주어 군대를 조직하고, 청해진을 설치하게 하였다.

청해진은 당에서 흑산도와 남해안을 거쳐 일본의 기타큐슈에 이르는 국제 무역 항로의 중간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그는 이곳을 기지로 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황해의 무역로를 보호하면서 황해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함으로써

당 - 신라 -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을 주도하였다.

장보고는 당시 신라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산둥성에 법화원이라는 절을 짓고 이곳을 무역의 거점으로 삼았으며,

아울러 신라인의 친목과 단결, 안녕을 꾀하는 정신적 위안처로 만들었다.


중국을 순례하던 중에 법화원에서 신세를 진 일본의 승려 엔닌에게 일본으로 돌아갈 배편을 구해 준 적이 있었다.

이때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엔닌의 편지를 통해서 그의 명성은 이미 국제적으로 높아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게 되었고, 서남 해안 일대의 커다란 해상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 뒤 왕권 다툼에 간여하여 신무왕이 왕위에 오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성왕 때에 자기 딸을 왕비로 삼으려다가 그의 세력을 두려워한 진골 귀족들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하였다.

〈우리가 배웠던 중학교 국사 교과서 내용〉

 

우리는 교과서에서 역사를 배웠지만

이곳 현장에서 다시 보는 역사공부는 정말 현실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대충 돌아보는 것 보다 자세하게 알아보는 여행도 의미가 있지 싶습니다.

 

 

 

 

 

청해진을 건설하고 해상을 장악했던 장보고...

 

장보고의 출생과 부모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으나

고향은 청해진이 설치되었던 완도 근처의 어느 섬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장보고는 한반도 남쪽 끝자락의 어느 섬에서 아주 미천한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에 따르면 말을 타고 창을 쓰는데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무예가 뛰어났다는 것을 뒷받침한답니다

 

장보고는 우리 역사서보다 중국과 일본 역사서에 더 상세히 소개된 국제적인 인물입니다

당나라 최고 시인으로 평가받는 두목은 장보고를 이르러 명철한 두뇌를 가진 사람으로 동방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칭송했으며

일본 불교 천태종의 엔닌은 자신의 여행기에 당나라를 여행할 당시 장보고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음을

소개하면서 '엎드려 우러러 흠모한다'는 편지를 남길 정도로 존경을 드러내기도 했답니다

 

이렇듯 장보고에 대한 기록은 중국, 일본, 우리나라 역사에 모두 전해지는 기록이 있답니다

우리 역사상 정말 드물게 국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장보고(張保皐)의 다른 이름은 궁복(弓福), 궁파(弓巴)였답니다

신라에 있을 때는 신분이 낮아 성이 없는 궁복이라 불렀을 것이다

활을 잘 쏜다는 의미가 있는 이름이다

그러다 중국에 가서 '궁'자와 한자가 비슷한 장씨라는 성이 붙고

'복'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비슷한 '보고'로 바뀌었다고 추측한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기록에는 장보고(張寶高),

그러니까 재물을 많이 획득했다는 의미로 한자의 표기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신분이 올라가면서 이름도 진화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장보고는 신라 최초의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신라의 왕을 바꿀 만큼 위대했고

장보고는 감의군사가 되었습니다

감의군사는 상징적인 군사 최고를 말하며

이러한 특별대우는 김유신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답니다

 

신라 문성왕은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려고 했으나

신하들이 섬사람의 딸을 어찌 왕실의 배필로 삼을 수 있겠느냐며 반발했다고 전해지고

또 다른 얘기로는 김우징이 청해진에서 군사를 부탁하며 왕위에 오르면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고 약속했다가

왕위에 오른 김우징이 약속을 지키려 하자 신하들이 반대했다고 전합니다

그 일로 장보고는 크게 분노했으며, 청해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으나

자세한 정황은 전하는 바 없답니다

이때 염장이 나서고 거짓으로 장보고에게 접근한 염장은 술에 취한 장보고를 칼로찔러 죽였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장보고가 846년에 죽었다고 전하지만

엔닌의 기록에 따르면 841년 암살된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장보고의 허망한 죽음 뒤 그의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려 했지만 염장이 진압했고

청해진은 염장의 통제 아래 놓였고

장보고의 심복들은 중국이나 일본으로 떠나고 계속되는 완도 주민들의 반발로 결국 851년에

청해진은 폐쇄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장보고 기념관

장좌리 마을에 2008년에 장보고 기념관이 완공되어

청해진과 장보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답니다

장보고는 이곳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주변의 해적들을 소탕함으로써

동아시아 해상 교통을 다스렸는데 지금 바다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 일본과 중국 간의 분쟁을 생각한다면

우리 시대에 장보고와 같은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기념관을 돌아보고 청해진 유적지로 향했습니다.

 

 

 

 

 

 

 

청해진은

통일신라 말기 장보고의 웅지와 꿈이 활짝 피었다가 허무하게 스러진 곳이며

당나라, 일본, 그리고 동남아로 연결되는 국제 무역을 주도하는

해상왕으로 위용을 떨쳤던 장보고의 고장 완도,

청해진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상사였다고 생각하면 된답니다

 

장보고는 완도의 상징적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한스럽게 죽은 장보고,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장도에서 마주 보이는 장군 묏등에 목 없는 장군 묘가 있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만 전해질 뿐이라는데...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장도에는 작은 사당이 있습니다

장좌리 주민들이 그 사당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 당제를 봉행한답니다

이곳 완도 사람들에게 장보고는

마을의 안녕과 평안, 풍어와 풍작을 기원하는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전해지고 있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장좌리 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장도,

청해진의 본거지였다는 작은 섬은

전복을 엎어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답니다.

 

 

 

 

장보고 기념관이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면 발밑에 바닷물이 출렁이듯

느껴지는 바닷가로 난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 되더군요

 

 

 

 

 

 

 

지금은 다리가 설치되어 있지만

밀물과 썰물이 반복돼 하루 6시간씩 2차례

바닷길을 걸어 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갔을 땐 밀물이라서 물이 차 있더군요.

 

 

 

 

장좌리와 장도가 연결된 데크로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있답니다

다리를 건너면서 주변 풍경을 담으면서 걷는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푸른 빛을 띠는 봄 풍경... 싱그럽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동서고금의 역사는 바다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사를 제패했음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 유수의 해운국으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장보고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우리 국력의 뿌리를 찾는 일'이라고

각계에서는 목소리를 높인다는데

저도 맞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안내문과 안내도를 보고 돌아보면 훨씬 이해하기에 쉬웠습니다.

 

 

 

 

 

 

 

외성문

청해진 성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외성문은 성의 내외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유사시 적의 공경을 저지하고

적을 역습하거나 격퇴하는 통로입니다.

 

 

 

 

 

외성문 바로 앞에 있던 우물...

청해진 장도에 들어서면

맨 먼저 '청해청'이란 우물을 만나게 됩니다

청해청은 1만 명의 군인이 물을 마셨다는 우물로서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우물인데요

요즘도 맑은 샘물이 솟아오르고 있어

장도의 명소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물을 둘러싸고 있는 'ㄷ'자형 판축유구가 신기했으며

이곳에 대형 우물이 있었다는 것은

청해진이 당시에 해상기지로서,

무역의 거점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번창한 곳이었음을 말해준다고 합니다.

 

아래 안내문을 보면 아주 귀한 우물임을 알 수 있더군요.

 

 

 

 

 

 

 

 

외성문에 올라가 바라본 장좌리와 연결된 풍경...

 

 

 

 

이곳 장도엔 동백림이 있었는데

붉은 동백꽃이 애달프게 느껴졌습니다

동백꽃 뚝뚝 떨어지는 것이

마지막 칼에 베인 장보고의 슬픈 죽음처럼....

 

 

 

 

 

 

 토성 위를 걸어보았는데

청해진 본거지로 사용할 만큼 좋은 장소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요즘 각 학교에서도

해상왕 장보고 혼이 서린

청해진 유적지에 전국 학생들의 답사가 이어지고 있으며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정말 배우는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

장보고 대사의 진취적 기상을 배우고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을 유적지로 복원하기 전까지는

허리 너머까지 자란 무성한 풀이 자라고

그 당시 장보고의 영화는 세월의 무심한 흐름 속에 묻혀있다가

새롭게 정비되어 지금의 유적지로 제 탄생한 것이랍니다

돌아보면서 이곳이 그랬었구나...

지금은 걷기 편하고 아주 아름답게 꾸며진 토성을 따라 거닐어볼 수 있는

곳으로 변모해 있답니다

 

지금도 해안가에 밑부분만 남아있는 목책이 천 년 전의 위세를 말없이 대신해준다고 하는데

제가 갔을 때는 물이 차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고대

동서로 이어지는 청해진 남쪽, 성벽의 높은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이다

청해진 성의 고대는 동쪽, 북쪽, 남쪽 3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일본과 중국 등 외국에서 내륙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연안의 상선과 해적을 감시하기 유리한 곳이다

 

-안내문-

 

 

 

 

 

 

 

판축

판축기법: 청해진 성의 성벽은 판축법으로 만들어졌다

판축이란 흙으로 기초 및 성벽을 쌓는 방법 중 하나로

돌을 판판하게 깔고 그 위에 흙을 고르며 다져가는 공법을 말한다

 

판축토성: 청해진 성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능선을 따라 축조하였으며

성의 규모는 둘레 길이가 890m이다

성벽은 좌우 내. 외측에 기단석렬을 깔고 기단석렬을 맞물린 상태에서

그 안쪽으로 흙을 시루떡처럼 다져 쌓은 판축 토성이다.

 

-안내문-

 

 

 

 

 

청해진 유적지 장도를 거닐어 보고

바다의 왕자로 널리 알려진

장보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리를 건너오며 뒤돌아 다시 담아본 청해진 본거지 장도...

활발했던 청해진의 예전 그대로 복원은 아니어도

그곳이 청해진 본거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여행이었습니다.

 

 

 

 

 

산책로처럼 거닐어 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도 다시금 느껴보게 되는 것과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는 여행,

대충 눈으로 보고 즐기는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공부하듯 돌아보는 여행도 의미가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다리를 건너 다시 장좌리로 돌아오면

집 앞이 마당처럼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넉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은

여행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듯 포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썰물 때는 장좌리에서 장도까지 걸어 다닐 수 있답니다

제가 찾았을 때는 출렁거리는 바닷물이 차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새롭게 청해진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는 여행이어서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누구나 완도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완도는 가볼 곳이 무궁무진 많습니다

어느 곳을 가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고

어느 섬을 기웃거려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완도란 생각을 해봅니다

 

완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일기가 고르지 못한 날씨가 연속되고 있습니다

건강 유념하시는 하루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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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1.09 10:47

    첫댓글 제가 아는 청해진은...
    중국 중서부 청해성의 청해호입니다.

  • 작성자 14.01.09 11:01

    근거를 말씀 해보세요

  • 14.01.09 16:37

    저도 대륙사를 공부한다지만 청해호라는건못들었습니다 산동성지역이지 내륙깊숙한곳은 아닙니다 청해호는 청해성(靑海省)에있는것이지 청해진(淸海鎭)입니다 한자 구별하셔서 연구하시는게좋을것같습니다 한자하나로 착각하는경우가많습니다

  • 14.01.09 17:08

    그냥 거기가 좋아여...ㅡ , . ㅡ

  • 14.01.10 08:36

    지명이나 강이름이 처음 부터 있었는 것은 아니지요! 내고향 성곡안데 성곡을 찾아보니 100여개의 이름이 있더군요!

  • 14.01.11 05:59

    청해진은 중국사람들이 한반도에 옮겨놓은 지명 완도 청해진이 아니라 중국에 있습니다. 장보고 사당인 적산서원이 있는 산동반도 앞바다를 지도에서 자세히 보면 청해라는 글자가 보일겁니다. 청해진이 그곳에 있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청해진은 완도에 있는데 대규모 사당은 산동에 있는 것이 이상합니다. 지명 한자에 부가 다르나 소리가 같은 것은 같은 글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복이 있는 이름 짓느라고 획수를 달리합니다. 아니면 청해진이 중국에 있는 것을 감추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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