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으므로 - 이러한 표현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왕정 제도에 대한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1) 부정적 측면 : 당시 이스라엘에는 전민족을 통솔하는 정치 지도자가 없었으나, 통치법은 있었다. 그 통치법은 바로 율법이었고 입법자는 하나님 당신 자신이셨다.
이스라엘의 궁극적 통치자는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은 응당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여 그 통치에 순응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할때 전 백성의 결속은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늘 함께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진 않고 단지 이방 나라들의 세속적 왕정 제도를 통해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던것이다.
(2) 긍정적 측면 :시일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가 늘어가고 그로 인해 여러 부차적 문제들이 증가함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를 구체적으로 대행할 지도자가 실제적으로는 강력히 요청되었다. 왜냐하면 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여 자발적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결집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더 잘 아셨기 때문이다.
요청에 따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왕정을 허락하였으나, 당신의 우려하신 바대로 이스라엘의 왕정사는 수많은 오점들로 얼룩지게 되었다.
[삿 17: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더라..."
본절에서 13절까지는 미가가 자기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은 것을 폐기하고 대신 한 레위인 소년을 제사장으로 삼은 경위에 대하여 기록하고있다. 유다 가족에 속한...레위인 -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레위인들에게는 여섯 도피성과 40여개의 성읍을 각 지파에서 떼어 주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사사기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무질서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이 제대로 시행될리가 없었다.
그래서 본래 유다 지파의 땅에 살고 있던 이 레위인 소년도 자신이 거할 적절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하여 이곳 저곳으로 방랑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서 자신의 본분을 잘 지키지 못하고 생계의 방도를 찾기에만 급급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고 율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시대에는 하나님의 사람들 역시 타락하거나 곤욕을 당하게 되기 마련이다.
[삿 17:8]"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미가의 집에 이르매 - 한때 베들레헴에 우거하던 이 레위인은 베들레헴을 떠나 에브라임 산지로 여행하던 중 우연히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된다. 아마도 미가의 신당은 큰 길가에 있어서 여행자들의 눈에 쉽게 띄었는지도 모른다.
[삿 17:9]"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뇨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 베들레헴은 본래 레위인들에게 할당된 성읍들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레위인 소년이 베들레헴에서 살게 된 것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땅이 당시 블레셋의 치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를 근거로 하여 그가 레위인이 아니었으며 다만 레위인과 같은 역할을 베들레헴에서 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실증적인 예를 들기를 사무엘은 에브라임 태생이지만 실로의 성전에서 제사장의 교육을 받아 레위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분명 레위 지파 중 고핫 가문의 사람이니 그 아들 사무엘도 당연히 레위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절에 나오는 소년도 레위인임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만일 이 소년이 베들레헴에서 교육을 받아 레위인 행세를 했다면 굳이 그가 베들레헴을 떠났을 이유가 없다. 또한 그가 단지 레위인으로서의 역할만 행했던 비레위인이었다면 미가가 자기 아들을 폐위하고 대신 그를 제사장으로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가가 그를 제사장으로 세우고 지극히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바로 율법에 정한 그 레위인이었기 때문임에 틀립없다.
[삿 17:10]"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벌과 식물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니...."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 여기서 '아비'는 '우두머리'란 뜻으로 남을 지도하며 권고하는 위치에 있는 자를 높여 칭하는 말이다. 창 45:8에서는 요셉에게, 왕하 6:21에서는 엘리사에게, 그리고 사 22:21에서는 엘리아 김에게 이 '아비'라는 호칭이 사용되었었다. 반면 이에 상대적인 용어는 '아들'인데 이것은 피교육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보다 인간을 높이는 자들을 경계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한편 본절에서 '아비'와 '제사장'이란 말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라는 말 속에는 바로 시민의 지도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바. 내가...
주리라 - 일정한 거처 없이 생계에 곤란을 느꼈던 이 소년에게 해마다 일정한 봉급이 주어진다는 것은 매우 만족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돈으로 성직자를고용하거나 고용되는일은 물질 만능적인 타락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시대를 막론하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성직자들은 보수보다 일 자체에 관심과 기쁨과 보람을가져야 한다.
따라서 비록 보수가 적더라도 그일이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명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해야한다. 여기 레위 소년은그러한 사명감과는 상관없이 보수에만 관심을둔 타락한 성직자였으니 이에서 역으로 경성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의복 한벌 - '한벌'에 해당하는 '에레크'는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것을 가리키며 출 40:23에서는 '진설병'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에레크'를 옷의 단위로 보고 열두 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역 성경처럼 이는 곧 상의와 하의 한 벌을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
[삿 17:11]"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이는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 혹자는 본절의 의미를 레위인 소년이 미가의 아들(5절)과 같은 종류의 비정상적인 제사장이 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본절의 의미는 레위 소년이 미가의 아들처럼 호의적인 대접을 받고 그의 집에서 편히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삿 17:12]"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한지라..."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 이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미가가 레위인의 손을 채웠다'라는 뜻이 된다. 이로 보아 아마 미가는 출 29:24에 나오는 것과 같은 제사장의 임명에 따른 성별 의식을 이 레위 소년에게 행한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제사장의 성결 의식만을 흉내낸 이러한 임명식은 완전히 율법에서 어긋난 것이다.
[17:13]"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 이러한 미가의 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시 하나님을 가나안의 우상과 동일 선상에서 미신적인 대상으로 섬겼음을 분명히 알수 있다. 미가는 파행적인 방법으로 세운 레위인을 합법적인 제사장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12절과 같이 행한 제사장 임명식을 정당하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비록 아론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규례가 있다 할지라도 미가는 레위인이면 모두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레위인을 통하여 미가는 이제 어머니로부터 받은 저주가 자기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가정을 번영케 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즉 미가에게 있어서 여호와는 드라빔과 같은 일개 가정의 수호신에 불과하였다. 이처럼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우상 숭배로 인한 혼합주의에 의하여 크게 왜곡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