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일 오전 10시 30분에 연해주 신한촌 기념비에서 제 93회 3.1 만세운동 기념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총영사, 교육원장, 한인회 이사회, 한인회원 등 30여분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함으로써 3.1절의 취지와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았습니다.
평일임에 불구하고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신 분들과 일정 상 참석은 못하였으나 마음으로나마 3.1절을 기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오는 8월15일에도 이렇듯 값진 광복절기념식이 있습니다. 그때도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타국에서 뜻깊은 애국자세와 자긍심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한촌과 한인독립운동
신한촌과 한인독립운동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
러시아지역에서는 구한말부터 1920년대 전반기까지 활발히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신한촌은 한인독립운동의 기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러시아 지역의 한인독립운동을 대표하는 1910년대의 권업회, 권업신문, 대한광복군정부, 한인신보사, 한민학교 등이 이곳에 있었으며, 이동휘 등 수많은 한인 애국 지사들이 신한촌에 거주하며 활동하였던
것이다.
또한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의 3.1운동이 이곳을 시발점으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한민학교 등 신한촌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계획들이 수립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 일세당, 노인동맹단 등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들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일제는 항일운동의 성지인 신한촌을 그대로 두려고 하지 않았다. 이곳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졌던 것이다. 일본군의 계획된 공격은 1920년 4월 4일 한밤중에 시작되어 5일 새벽 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신한촌 참변에 대하여 1920년 7월 이르쿠츠크에서 결성된 전로고려공산단체 중앙위원회의 기관지인「동아공산」창간호 (1920년 8월 14일 간행)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신한촌에는 한민학교에 기름을 부어 불 지르고 한인계에 유지자와 청년을 다수 붙들어 갔으며, 일인 앞으로 정탐하는 한인은 기회를 만나듯 이 부도덕한 야만행동을 하는 일본놈을 도와 부모와 동생이 다 붙들려 가고 고도기 있는 어린 여자를 불러다가 여러 가지 형벌 노문료를 받았으며 그 항내에 보물과 상선 수십 척까지 탈취하였다고]
즉, 동아공산에서는 당시 일본군의 한인탄압 그리고 친일파의 발호 등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군들은 조선인 희생자들을 녹슨 철도에 매달아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의 우리쓰만 바다에 던지는 만행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한촌 등 러시아 연해주지역에서 활동하던 한인들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투쟁하였던 것이다. 이들 한인들의 투쟁이 결국 조국해방에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바로 올해는 이들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이주 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주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아울러 신한촌 등 러시아 전역에서 이루어진 항일투쟁의 역사가 새로이 평가되고 부활되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해준 고려인들의 후손들에게 따뜻한 동포애가 전해지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