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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편에 서서 낡은 건물을 바라보며 다카유키는 일 년 전의 일을 생각해봤다. 아버지와 둘이서 지냈던 그날 밤의 일을.
지금 돌이켜봐도 도저히 현실 같지가 않다. 아니 지금도 꿈을 꾼 건가 가끔씩 의심이 든다. 미래에서 편지가 온 것이 정말로 있었던가? 그날 밤의 일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때 맡아두었던 편지 뭉치를 아버지의 관에 넣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다른 가족들이 무슨 편지냐고 물어 대답하기 곤란했으니까.
불가사의한 일을 들자면 아버지의 죽음 역시 그랬다.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지만 별다른 통증도 없었고, 낫토의 끈적끈적한 실이 길게 늘어나듯 아버지의 목숨은 끊어지지 않고 가느다랗게 붙어 있었다.
의사조차 놀랐다. 식사도 변변히 못하고 거의 잠만 잤지만 그로부터 일 년 가까이 생존했다. 마치 아버지의 육체에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다카유키가 멍하니 회상에 젖어 있는데 ‘저기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았다. 운동복 차림의 키가 큰 젊은 여자가 자전거를 잡고 서 있었다. 짐받이에는 가방이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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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다카유키가 대답했다. “무슨 일이시죠?”
여자가 망설이듯 물었다. “나미야 씨와 관련이 있는 분이신가요?”
다카유키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아들입니다. 여긴 아버지의 가게였구요.”
여자는 놀란 듯 입을 벌리고 눈을 깜박깜박했다. “그러시군요.”
“우리 가게를 아세요?”
“예. 하지만 물건을 샀던 건 아니에요.” 여자는 미안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사정을 짐작한 다카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 상담을 하셨나요?”
여자는 그렇다고 했다. “아주 귀한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그게 언제쯤이었습니까?”
“작년 11월이었을 거예요.”
“11월이라구요?”
“이 가게, 이젠 영업 안 하나요?” 여자는 가게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아버지가 돌아가셔서요.”
여자는 놀란 눈치였다. 슬픈 듯 눈꼬리가 쳐졌다.
“그러시군요. 언제쯤?”
“지난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