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삼사(東鶴三祠)란 계룡산 동학사의 초혼각지(招魂閣址)에 있는
숙모전,삼은각,동계사의 세 사당을 말하며, 이곳에는 신라의 충신 박제상,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이색,길재와 그리고 조선의 단종과 사육신 등
신라,고려,조선 세 왕조의 충절 인물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동학삼사(東鶴三祠) 전경
숙모전은 계룡산 동학사 안에 있는 사당으로 신분과 관계없이
국왕,재상,관료,학자,서민,노비 등 충절인 351위를 기리면서
왕을 모신 전(殿)이라는 뜻의 권위가 있는 장소이며,
유교와 불교가 함께 제사하는 특별한 전통을 지닌 곳이다.
동학삼사 전경 안내도
1455년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매월당 김시습은
벼슬을 버린 뒤 머리를 깎고 동학사를 찾아 단을 세우고 통곡하였다.
다음 해 사육신이 참수당하자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서울 노량진
언덕에 매장하고 동학사로 다시 돌아와 단을 만들고 제사 지냈다.
숙모전(왼쪽)과 삼은각,동계사(오른쪽) 등 동학삼사(東鶴三祠) 정문
봄과 겨울 두 차례 숙모전 대제를 지내고 있는데, 이는 조선 초기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가 동학사 서쪽에서 고려의 왕과 스승을 위해
지낸 초혼제로부터 시작됐으며, 1399년(정종 1) 금헌 유 선생이 단을
만들어 고려의 왕과 포은, 목은을 초혼했으며, 1400년에는 이정간이
수령으로 부임해 야은 길재를 추가로 배향하고 삼은각이라 이름 지었다.
숙모전 정문인 인재문(仁在門)
1456년(세조 2) 김시습이 사육신의 초혼단을 설치, 초혼례를 지냈고
1457년(세조 3) 김시습(金時習)이 조상치(曺尙治), 이축(李蓄),
조려(趙旅) 등과 더불어 삼은각 옆에 단을 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 단종의 제단을 증설하였다.
숙모전(肅慕殿)과 동무.서무
숙모전 정전(正殿)에는 단종과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위패를 모셨으며
동무에는 종실의 안평대군을 비롯한 계유정난 때 순절한 세 재상인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奔), 그리고 생육신 및 주요 충신들인
김시습, 이맹전, 조려, 남효온, 엄흥도, 조상치 등 47위의 위패가 봉안되어있다.
서무에는 주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참형을 당한 사육신과 그 가문의 인물들과
국문 중 순절한 송현수(정순왕후의 부친),정종(단종의 매형),김문기,이보흠 등
47위와, 동.서무 합동 배향으로 동무 121위, 서무123위의 신위가 봉안되어있다.
삼은각(三隱閣)과 동계사(東雞祠)
삼은각(三隱閣)에는 고려 말의 절신인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등 삼은(三隱) 등 총 6인의 위패를, 동계사(東鷄祠)에는
신라 눌지왕 때 일본에 끌려간 왕의 아우 미사흔을 구출하고 순절한
박제상과 고려의 개국공신 류차달(문화유씨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숙모전 옆의 삼은각과 동계사 정문
1457년 세조가 동학사에 들렀다가 초혼단을 보고 감동하여 팔 폭
비단에 단종을 비롯한 정순왕후, 안평대군, 금성대군,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 정분(鄭奔) 등과 사육신 등 억울하게 죽은 280여명의
명단을 써서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였다.
또 인신(印信,도장)과 토지 등을 하사하였으며 동학사라 사액하고
승려와 유생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
숙모재
그뒤 제향이 중단되었다가 1963년 숙모회가 발족하며 봉안 대상과
의례 절차를 정비하고, 매년 김시습이 최초로 제사한 음력 3월 15일에
춘향제를, 단종이 사사된 음력 10월 24일에 동향제를 거행하고 있다.
초혼각은 소실되었다가 1869년(고종 6)에 다시 지었으며,
1904년(광무 8) 고종이 숙모전이라 사액하여 국가인정으로 격상되었다.
동학사 초입의 홍살문 ~ 숙모전이 있는 동학사를 한바퀴 돌아본다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
동학사는 724년(신라 성덕왕 23) 상원조사(上願祖師)가 암자를
지은 곳에 회의화상(懷義和尙)이 절을 창건해 상원사(上願寺)라 했다.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곳에 와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절을 지으니
승려들이 모여들어 사찰이 커지면서 이름을 동학사로 바꾸었다.
동학사 숲길
1394년(태조 3) 고려 충신 길재가 고려 태조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고,
1457년(세조 3)에는 김시습(金時習)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단종의 제단을 증설했는데, 다음해 이곳에 들른 세조가 단종을 비롯해
세조찬위 때 억울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을 짓게 하고 동학사라고 사액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학사 문화원
관음전
길상암
미타암
세진정(洗塵亭)
계룡산 동학사 전경 안내도
1)실상선원 2)강설전 3)화경헌 4)화엄료 5)조사전 6)삼성각 7)대웅전
8)육화료 9)영화실 10)범종루 11)삼층석탑 12)청량사지 5층석탑, 7층석탑
범종루
육화료(六和寮)와 동학사(東鶴寺) 편액
대웅전 입구
대웅전 연등
동학사 삼층석탑
대웅전 불상
대웅전 석등(천상천하 유아독존)
동학사 돌담길
화엄료
강설전
계룡산 동학사 계곡
계룡산 탐방로 입구
내려 오는 돌담길
5월말의 계룡산 계곡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