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독해 첫걸음
초등학교 4학년 손주가 할아버지 집에 오면, 늘 먹 갈아 큰 글씨 쓰는 것을 봐 와서 제 할아버지가 한자에 박식한 줄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한자 서책과 한시를 가까이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도, 초등 4학년 겨울 방학 때 동몽선습을 가르치시던 나의 할아버지로부터도, 누구에게서도 한자 독해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냥 문리를 트면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글자를 알고 명사와 동사를 아니, 대충 흐름을 집어 짐작하는 것이지 정확한 해독법을 모른다. 그것이 필요하지도 않았으니 그냥 칠십 고개를 훌쩍 넘어버렸다.
지은이 ‘정춘수’는 성균관대 석사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등을 쓰면서 고전을 읽고 ‘이순신을 읽고 쓰다.’, ‘유성룡을 읽다’ 등을 쓴 분이다. 필자는 한문 독해의 첫걸음, 한문과 우리말의 차이를 알아채기이고, 두 걸음은, 문장의 맥락 속에서 한자 뜻 이해하기, 세 걸음, 한문의 메시지를 우리말로 재구성하기라 강조하며 책을 시작한다. 필자는 공주 공산성 자락에 사는 신식한학자인 모양이다.
한문의 주어 자리는 서술어 앞이다. 天知 地知 子知 我知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안다. 뇌물을 주면서 아무도 모르니 받아두라는 말에 답한 글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떻게 아는 사람이 없느냐는 말이다. 天長地久(천장지구) 하늘은 길고 땅은 오래다. <노자>의 말이다. 당 현종이 ‘안 사’의 란에 서촉으로 도망가는데 가마꾼이 양귀비가 뚱순이로 무겁다며, 반란 제공의 원흉인 양귀비와 오빠 양창국을 죽이지 않으면 못 간다. 버틴다. 황제란 녀석이 제 황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사랑하는 임도 못 구하고 참하라! 승인한 후, 번민하면서 “행궁견월 상심색”이란 시를 짓고, 종장에 ‘천장지구 유시진’이란 단어를 인용한다. 시조인 이라면 모두 아는 문구다.
한문의 목적어 자리는 서술어 뒤에 온다. 衆勝寡 疾勝徐 勇勝怯(중승과 질승서 용승겁) 많은 것이 적은 것을 이기고, 빠름이 느림을 이기고, 용감함이 비겁함을 이긴다. <관자> 추언 구절이다. 많은 것 주어(중)이, 목적어 적은 것 (빈)을 서술어 이긴다(승).
도재이 道在爾 “길은 가까이 있는데 멀리서 구한다.”라는 구절의 일부이다. 在 A는 ‘A에 있다’이다. <맹자> 이루
한문엔 ‘이(가), 을(를), 이다.’ 같은 말이 없다. 한문이 갖는 이런 특징을 고립어라고 한다. 고립어는 한자 하나하나가 고립되어 있어서 형태를 바꾸지 않고 문장 속에 배치되는 순서에 의해 문법 관계가 형성되는 언어다. 우리말은 다양한 조사와 어미를 낱말에 첨가해서 문법 관계를 나타내는 첨가어(교착어)이다.
信信信也 疑疑亦信也 (신신신야 의의 혁신야) 믿을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니, 의심할 것은 의심하는 것, 또한 믿음이다. <순자> 비십이자 구절. 是是非非 오른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 <순자> 수신
한문에서 한자 한 글자는 한 단어이다.
其語偸 不似民主, (기어투 불사민주), 그의 말이 구차하여 백성의 군주 같지 않았다. <좌전> 노양공 31년
坐立不能自由 (좌립불능자유) 앉고 설 때에 스스로 행하지 못했다. 불능자유는 직역하면 ‘능히 스스로 행하지 못했다.’ 또는 ‘스스로 행하는 데에 능하지 못했다’이다. <태종실록> 태종 3년 8월 1일.
獨立古阜 擧目四望 (독립고부 거목사망) 높은 언덕에 홀로 선 채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다보았다. 독립은 홀로서다 이다. 근래에 다른 나라 속박에서 벗어 난다'로 쓰였다. <열하일지> 도강록 6월 24일
가까운 것과 먼 것을 가리키는 정확한 대응 한자가 없다. 먼 것을 지칭하는 말과 가까운 것을 지칭하는 말로 대신한다. 此, 是, 斯, 玆 모두 가까운 것을 지칭하는 이차,이시, 이사, 이자이다. 먼 곳은 彼, 夫로 저피 사내부가 먼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彼日積貧 我日積富 (피일적빈 아일적부), 그들은 나날이 가난을 쌓고 우리는 나날이 부를 쌓는다. 부는 플러스를 더 하고 가난은 마이너스를 더 하는 그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전쟁 무기와 장비를 과시하고 소진 시키고, 재물과 양식을 함부로 낭비하고, 인적자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가난해진다.
此賤而彼貴 (차천이피귀), 이곳에서는 천하고 저곳에서는 귀하다. 조선의 각지방 특산물이 서로 유통이 되지 않아 바닷가의 생선은 썩어 나지만 내륙에서는 귀한 것은 유통 도구, 수레 재도 미발달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나’를 나타내는 吾, 我, 余(여), 予(여) 吾는 화자가 자신을 가리킬 때 쓴다. 나는 내가 나를 정도입니다. 存과 沒은 살아있을 때와 죽을 때를 대비시킨다. 너를 나타내는 爾(이), 若(약), 乃(내)
我死汝生 理之常也 汝死我生 (아사여생 이지상야 여사아생),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 이치에 맞는 일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후 막내아들 면이 전사했다는 편지를 받고 쓴 <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일기다.
汝는 화자의 말을 듣는 사람을 지칭한다. 若勝我 (약승아), 너가 나를 이긴다.
자신을 낮추는 복 僕, 신 臣, 첩 妾 같은 말이 있다. 소인이나 아무 某, 어리석을 우 愚처럼, 자신을 보잘것없음을 드러내는 호칭도 있다. 왕과 제후도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과인 寡人이라 낮추었다. 상대를 높이는 족하 足下, 폐하 陛下 같은 말이 있다. 보통 公이나, 子, 君, 卿 같은 신분이나 작위에서 기원한 호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有 A는 A가 있다는 뜻이다.
今臣戰船尙有十二 (금신전선상유십이) 지금 저에게는 싸울 배가 아직도 12척 남아 있습니다. 이충무공전서 이분(행록) 보성에 머물던 충무공이 선조에 보낸 공문이다. 장계는 충무공의 조차 이분의 행록에서 인용한 것이다.
夕有人自天安來傳家書 (석유인자천안래전가서) 저녁때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 집안의 편지를 전했다. 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유의 뒤의 말이 길면 해석이 불편하므로 ‘어떤’은 그때의 유를 우리말로 식으로 풀이한 데서 나온 새김으로 짐작한단다.
防民之口 甚於防川(방민지구 심어방천) 백성의 입을 막는 일이 강을 막는 일보다 심대하다. 십팔자락 주.
요즘 정치권을 보면 백성의 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는 듯하다. 하천 터진 것보다 더 위험하고 폭발성이 큰 것이 민심이란 것을 고대 군주도 알았다는 얘기다.
度夜如年 (도야여년) 하룻밤을 지나기가 일 년 같았다. 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한문에서 같다를 뜻하는 말에는 닮을/같을 似, 같을 猶, 같을 如, 같을 若, 같을 同 등이 있다. 相似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부정을 나타내는 아닐 不과 아닐 非의 차이.
不은 서술어 앞에서 부사어 노릇을 하면서 부정을 나타낸다. 非名은 명칭이 아니다. 한문에서 不와 非가 혼재되어 쓰이기도 하고, 우리말에서 아니 하다, 하지 않다, 하지 못한다고 두루 쓰인다. 비슷한 듯 다른 無와 莫. 없을 無는 있을 有의 반의어이다. 없을 막은 무와 같은 뜻이지만 주어를 지시하는 기능이 無보다 강하다. 莫敢仰視는 감히 (항우)를 올려다보는 이 없었다. 뜻으로 해석한다.
금지를 나타내는 말 무 毋, 말 물 勿, 없을 무 無, 말 막 莫. 말 무 毋는 말 물 勿과 함께 하지 말라, 해서는 안된다. 금지를 나타낸 대표 한자다. 무가 물보다 기세가 세다고 한다.
長毋相忘 (장무상망) 늘 서로 잊지 말자.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에 인장을 찍고, 그 일화가 알려지면서 잊히지 않는 글귀가 된다. 김정희가 ”늘 잊지 말자”라고 다정한 말을 건넨 사람은 역관 이상적이다. 그는 평소에 존경하는 스승을 위해 스승이 못 구한, 책을 중국에서 구해서 기력이 쇠잔해 가는 추사의 유배지 제주도 대정현으로 보낸다. 대단한 독서가였던 추사는 스승을 위로하고 싶었던 역관의 소망을 ”늘 서로 잊지 말자“라는 문구에 세한도를 그려 전한다. 자신에 대한 친분을 드러내다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를 일인데, 귀한 책을 구해준 답으로 세한도는 추사의 정성 어린 선물이었다. 그림과 거기에 딸린 글은 후대에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될 줄은 꿈에도 추사와 이상적은 몰랐을 것이다.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를 한 시기는 1840년~1848년까지 9년이었다. 나이는 55세에서 63세였다.
子無敢食我也 (자무감식아야) 넌 날 함부로 잡아먹지 못해. 狐假虎威(호가호위)란 고사성어를 낳게 한 우화의 한 대목이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뻔한 여우가 했던 말이다. 여우는 자신이 하늘님이 임명한 동물의 우두머리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그리고선 자신의 뒤를 따라오며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보라고 호랑이를 꼬드긴다. 여우와 호랑이를 본 동물들이 모두 도망쳤고 호랑이는 여우를 놓아줬다.
2024년 11월 5일
한몬 독해 첫걸음
정춘수 지음
부케 간행
첫댓글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
거촌 선생
반갑습니다.
제가 이것 저것 관심이 많으니 모두 이루기에 시간이 늦어집니다.
감사합니다.
天知 地知 子知 我知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안다.
한참이나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시메온 님
모처럼 뵙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부 잘 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사암 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