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수뇌부 靑 찾은 날, ‘서해 피살’ 기밀 삭제
軍 “월북 발표 전날 함께 청와대 방문, 안보실과 회의”
당일부터 이틀간 軍내부 정보공유망서 기밀 지워져
서욱-합참 “관련없는 부대 전파 막기 위한 조치” 해명
서훈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왼쪽) 등과 대화하고 있다. 2021.2.3./뉴스1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었던 고 이대진 씨의 서해 연평도 피살 사건 당시 군이 수집한 다수의 군사기밀이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서 삭제된 날 군 첩보 관리책임자였던 이영철 당시 국방정보본부장이 서욱 국방부 장관과 함께 청와대를 찾아 국가안보실 관계자들과 회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한 해역에서 이 씨가 발견된 뒤 파악된 첩보 대다수가 군이 생산한 특수정보(SI)라는 점을 고려할 때 청와대 주도로 관련 첩보 삭제 논의나 ‘자진 월북’ 판단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7일 “군이 ‘이 씨가 사망했고, 월북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기 전날인 2020년 9월 23일 이 전 본부장이 서 전 장관과 함께 청와대를 찾았다”며 “피격 사건과 관련한 정보 분석 자료들을 들고 안보실 관계자들과 회의를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9월 22일 오후 10시 40분경 이 씨가 북측 해역에서 피살된 뒤 23일 오전 1시와 오전 10시 서훈 당시 안보실장이 주관한 두 차례 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한 서 전 장관은 이와 별도로 이날 한 차례 더 청와대를 찾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본부장도 이날 한 차례 동행했다는 것.
군은 현재까지 이 씨 피살 사건과 관련해 1, 2급으로 분류되는 군사기밀들이 밈스에서 삭제된 시점을 9월 23∼24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밈스는 사단급 이상 부대끼리 실시간으로 민감한 첩보와 정보를 공유하는 유통망이다. 이들 첩보 삭제가 당시 정보본부장까지 청와대를 방문한 시점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관련 논의나 ‘자진 월북’ 판단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밀 삭제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민감한 정보가 직접 업무와 관계없는 부대에 전파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필요에 따른 조치”라면서도 “원본이 삭제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서 전 장관도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위중하고 불확실한 첩보 내용이어서 꼭 필요한 부서만 보는 게 맞다는 지침을 내렸다”며 자신의 판단에 따라 지침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원본(기밀)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적이 절대 없다”고 덧붙였다. 사건이 중대하고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해 관련 없는 부서에 전파되지 않도록 지침을 줬지만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결코 아니었다는 것. 그는 ‘자진 월북’으로 보기 힘든 첩보들이 당시 삭제된 것 아니냐는 질의에는 “‘민감 정보’라고만 했다”면서 정보의 범위를 특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본보는 이 전 본부장에게도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신규진 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軍측 “서욱 지시로 ‘서해 피살’ 기밀 지워”… 徐 “원본 삭제 안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徐-첩보책임자, 靑서 회의한 날, 대외비 문서 등 10~20건 삭제
徐 “필요한 부서만 보게 지침 적절 조치한것… 올가미 씌우기”
정부 소식통 “민감한 내용 포함” 월북판단에 불리한 정보 가능성
왼쪽부터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장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020년 9월에 발생한 서해 공무원(이대준 씨) 피살 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가운데 군 관련 기밀도 다수 삭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기밀 삭제를 지시한 ‘윗선’으로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이 거론되면서 군과 정보당국이 조직적으로 관련 정보의 은폐를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 軍, 서 장관 지시로 삭제 정황 포착, 서 장관 “적절한 조치, 은폐는 말도 안 돼”
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씨 피살과 관련된 군사기밀들이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밈스)’에서 삭제된 시점은 2020년 9월 23∼24일로 파악됐다.
이 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다음 날(9월 23일) 오전 1시경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국정원장, 서욱 국방부 장관 등이 참석한 첫 관계장관 회의 직후부터 24일 오전 해경과 군이 이 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공식 발표하는 사이에 삭제 조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삭제된 기밀문서는 10∼20여 건으로 1·2급과 같은 대외비 등급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국방정보본부 등을 상대로 관련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서 장관이 삭제를 지시한 정황을 파악했다고 한다. 군 소식통은 “서 장관이 첫 관계장관 회의를 다녀온 후인 23일 삭제 관련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관련 내용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당시 (이 씨 피살사건 관련) 원본(기밀) 삭제를 지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은폐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이어 “(해당 기밀들이) 위중하고 불확실한 민감한 첩보 내용이어서 무관한 부서나 사람들에게 전파되면 더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보고 꼭 필요한 부서만 보게 하자는 지침을 줬던 것”이라며 “차라리 그런 조치를 안 하면 고발을 당하는 게 맞다. 적절한 조치를 한 장관에게 그런 올가미를 씌우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합참 관계자도 이날 취재진에게 “밈스에 탑재된 민감한 정보들이 직접적 업무와 관계없는 부대까지 전파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한 것으로 안다”며 “정보의 원본은 삭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무단 삭제가 아니라 절차에 따른 조처라는 뜻이냐’란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필요에 따라 행해진 조치로 보면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공무원 피격사건뿐만 아니라 북한 목선의 삼척항 무단 입항 등 군이 소홀한 대처로 질타를 받았던 다른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도 밈스에 탑재된 기밀정보가 삭제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관련 의혹이 규명돼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 월북 판단에 불리한 내용 담겼나, 군 소식통 “매우 민감한 내용들”
밈스에서 삭제된 기밀 내용도 초미의 관심이다. 일각에선 삭제된 군 기밀에 당시 청와대와 정부가 이 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불리한 내용이나 월북 추정과 배치되는 결정적 정황들이 포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
2020년 9월 23일 새벽 서 실장 등이 관계장관 회의에서 군과 정보당국이 수집한 관련 기밀과 첩보들을 토대로 논의를 거쳐 이 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으로 판단하면서 이에 불리한 기밀정보와 첩보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관계장관 회의 다음 날인 2020년 9월 24일 군과 해경이 이 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처음 제기한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밈스에서 삭제된 군 기밀들에 워낙 민감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보안을 이유로 언급하지 않았다. 또 다른 소식통은 “당시 군이 밈스에서 관련 기밀을 삭제한 것이 은폐를 위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기밀이) 민감한 내용이니 유의하라는 의미로(삭제가 이뤄진 걸로)도 보일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관련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신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