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나부인(貫那夫人) "서해로 흘러간 장발 미인" 〔고구려 중천왕〕
관나부인은 얼굴이 아름답고 두발이 길었다고《삼국사기》에서 전한다. 관나부인이 왕의 총애를 받게 되자, 이를 시기한 왕후 연씨(椽氏)는 "지금 위(魏)나라에서 천금을 주고 장발을 구한다 하니 장발미인을 위나라에 보내면 다시는 우리 나라를 침범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여 관나부인을 위나라로 보내려고 하였다. 이것을 들은 관나부인은 왕에게 "왕후가 나를 가죽 주머니에 넣어 바다에 버리려고 하니 집에 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라며 왕후를 참소하였다. 하지만 왕은 그 사실이 거짓임을 알고 정말로 관나부인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 서해(西海)에 던져버렸다.
2.도미의처 "일편단심 민들레" 〔백제 개루왕〕
도미의 처(이하 처)는 백제 개루왕 때의 평민으로, 미인인데다가 절개가 굳기로 유명했다고 《삼국사기》와 함께 《도미설화》에서 전하고 있다. 설화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도미의 처가 미인이며 절개가 굳다는 소문을 들은 개루왕이, 처의 절개를 시험하기 위해 그녀와의 동침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처는 여종을 변장시켜 대신 내보냈고, 화가 난 개로왕은 도미의 두 눈을 뽑아버렸다. 이제 개로왕과의 동침을 더이상 피할 수 없게 되자, 끝내 거부하며 남편 도미와 함께 고구려로 도주하였다고 한다.
3. 미실(美室) “삼대(三代)를 쥐고 흔든 색(色)” 〔신라 진흥왕~진평왕〕
미실은 제2세 풍월주 미진부(未珍夫)의 딸로 절세의 미모와 절정의 색공(色功)을 갖춘 음녀(淫女)로 《화랑세기》는 전한다. 맨 처음 지소태후와 이사부 사이에서 태어난 '세종'에게 시집을 간 뒤, 화랑 사다함과도 정분을 나누었으며 진흥왕과 동륜태자, 금륜태자(진지왕) 3부자와 모두 연을 맺었다.
신라에서 내로라하는 사내들과 모두 정을 통한 미실은 자연히 천하의 권세를 쥐었다. 신라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진흥왕까지도 미실과의 색사 끝에 4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고 하니, 가히 미실의 미색을 알 만하다.
4. 선화공주(善花公主) "국경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 〔신라 진평왕〕
선화공주는 진평왕의 셋째 딸로서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다고 《삼국사기》와 함께 《서동요》에서 전한다. 선화공주를 연모한 서동(薯童)은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선화공주를 참소하는 서동요를 지어 퍼뜨렸다. 이윽고 동요가 금성 내에 퍼지자 진평왕은 선화공주의 행실이 부정하다 하여 귀양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 선화공주는 서동을 만나 결혼하였다. 이후 서동은 백제 무왕(武王)의 위에 오르게 되었고, 선화공주는 황후로 추대되었다.
5. 수로부인(水路夫人) "동해의 아프로디테" 〔신라 성덕왕〕
수로부인은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미인으로, 신라 향가 해가(海歌)와 헌화가(獻花歌)의 주인공이다. 이 중 '해가'의 내용에 따르면 수로부인은 용모가 세간에 견줄 이가 없어, 용에게 납치된 것을 시작으로 깊은 산이나 못을 지날 때면 갖가지 신물(神物)들에게 붙들림을 당했다고 한다. 또 '헌화가'에서는 한 늙은이가 천길이나 되는 바위 위에서 철쭉꽃을 꺾어다 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6. 기황후(奇皇后) "대륙을 호령한 미색(美色)" 〔고려 충숙왕~공민왕〕
기황후는 고려 사람 자오(子敖)의 딸로서 공녀의 신분으로 원나라에 건너간 뒤, 제2황후에까지 책봉된 미녀이다. 1333년 공녀로 원에 바쳐져 원실의 궁녀가 된 기씨는 원 순제의 총애를 받으며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339년 기씨가 황태자 아이유시리다라(愛猷識里達獵)를 낳자 이듬해 제2황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366년 명을 건국한 주원장에게 연경이 함락되자, 기황후는 몽골 내지로 쫓겨갔고 그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7. 어우동(於于同) "조선시대 스캔들의 헤로인" 〔조선 성종〕
어우동은 본래 양반집 자제로 성은 박씨(朴氏)이며 종실 태강수(泰康守)의 아내였다. 하지만 어우동은 천하의 색녀(色女)로 수십명의 조관이나 유생들과 난잡한 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이 같은 방탕한 생활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 하여 결국 사형되었다. 《대동시선》에 <부여회고>라는 시가 전하고 있다.
8. 장녹수(張綠水) "폭군을 조종한 궁녀의 치맛바람" 〔조선 연산군〕
장녹수는 본래 제안대군(齊安大君)의 여종이었지만 용모가 뛰어나고 가무에도 능해 연산군에게 총애를 받으면서 숙원(淑媛)에 봉해졌다. 하지만 장녹수가 왕의 총애를 이용하여 국사에 간여하여 연산군의 실정(失政)을 부추기자, 뒤이어 일어난 중종반정으로 참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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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함니다,역사의 한부분을 이해할수있어 좋았습니다,
미인과 사진이 잘 매칭이 되나 모르겠네요.^^
그시절동영상이 있어드래문틀림없는역사한마당이생생하게 미인과역사공부 잘보고가요
ㅎㅎㅎ 지루하지 않게 보시라고...^^
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다.....미녀는 마음이 고와야 진정 미인이지요...그렇지 못하면 요물이랄까?....^)^
마음이 고워야 예쁜미인이죠.^^근데 너무 예뻐서 남자가 판단력을 상실하면 어쩌죠?
구중궁궐 처마끝에 한맺힌 .....음악 저작권 땜시 노래만 들으면 화가 나던데...이노래는 예외로 듣기에 무척,좋았습니다. ^^
감사합니다.^^
좋은 노래에 마음놓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왜 웃어요? 하긴 유머방이라 웃지!^^*
한국의 10대 미인 잘보고갑니다.
예~^^*
잘 보았네요 생소한 얘기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ㅋ
반갑습니다.^^
공부 잘 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셨어요? 그래야 미인도 얻지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