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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칼럼 제1414호 |
시 작은어머님의 고백 |
지난 7월초에 같은 지역에 사는 시 작은어머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교회에 다니게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시댁(본가)은 경북영주에서 더 들어간 시골에 있고 시 작은집은 같은 광명지역입니다. 20 여 년 전 제가 결혼을 했을 당시 시 작은어머님은 제게 너무나 큰 자였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던지 순종해야 하고 또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먼 일가친척 대소사의 모든 일에 다 따라 다녀야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시댁 집안이라 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 어렵고 또 제 자신이 어려 뭐라고 변명도 못하고 주일이든 아니든 다 참여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큰 아이 유치원 다닐 때 쯤 부터 채소가게를 하게 되었습니다. 조그마한 채소가게 운영을 하면서부터 차츰 집안의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게 되고 점차 시 작은댁과도 같은 지역에 살지만 1년에 몇 번 안부만 전하는 그런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다른 장사를 하게 되었고 늦은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를 다니면서 더욱 관계가 멀어지고 1년에 한두 번 찾아뵙던 것마저도 소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지났고 저는 저 나름대로 직장생활을 하고 교회 생활에 자유(?)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저는 시댁에서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미운 오리새끼가 되었습니다. 다른 형제보다 더 어렵게 사는 것도 덕이 되지 못했고 또 어렵게 시댁에 갈 때마다 준비해간 선물은 가치 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막내아들인 제 남편 또한 함께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는 것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두 아들 또한 사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인이 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께서는 제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셨고 결혼하여 장사를 하면서 7년 동안 고등학교 대학교 공부를 마치고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 후 직장생활 가운데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면서 공부할 때 받아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 표창장 같은 것도 받게 되고 남편 또한 여러 표창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시부모님의 귀에도 들어가고 남편의 형제들과 조카들에게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참 많이 울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가족 간의 갈등은 없습니다. 아니 그냥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운 오리새끼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아름다운 백조는 아니지만 당당하게 미우면 미운대로 제 자신 부딪히며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고 서서히 시 작은집과 왕래가 조금씩 있기 시작했습니다.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와서 시 작은집 식구들을 모시고 저녁을 함께 해 먹었습니다.뭔지 모를 소통이 조금씩 이루러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어머님으로부터 교회에 다니시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처음 교회를 나가니 누가 좀 인도 해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알고 보니 작은 어머님 친정 자매중 한 분은 권사님이시라고 하더군요.제가 다니는 교회는 작은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곳이고 또 작은 어머님 또래가 없어 작은집 근처의 교회를 알아보았습니다.
전화를 하니 어느 여 전도사님을 소개해 주시더군요. 작은 어머님의 사정을 말씀 드리고 심방할 것을 권유했습니다.다행히 작은 어머님은 교회에 잘 적응하시고 계셨으며 얼마 후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습니다. “교회를 소개해줘서 고맙다. 잘 다니고 있다. ‘고맙다’ 열심히 다닐게”너무나 감동적인 문자였습니다.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 안에 시댁에 가면 늘 피해자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시댁 식구들 전도는 생각지도 못했었습니다. 늘 피해 다니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었는데.......소심한 제 자신이지만 이제는 좀 더 용기를 가집니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