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 요셉이야기 II (창세기 37 - 51 장)
돌베개 성서반에서 매주 나누는 복음을 카페의 많은 분들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글로 옮기는 일이 여전히 자신이 없어 공부한지 일 주일이 넘도록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도움이 될수도 있으려니 하고 용기를 내어 제가 할 수 있는만큼 나눠보려 합니다. 제가 실지 못한 다른 이야기들은 다른 분이 보충하여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4월 27일 나눔
하느님은 요셉과 함께 계셨으며, 그것을 요셉도 확신하고 있었고,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인 파라오의 경호대장 보티발조차도 그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 팔린 후에 보여준 한결같이 성실한 모습이 이끌어낸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초대교회의 모습 (사도행전)에도 적용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의 굳건한 믿음을 보며 그리스도교에 감화되었으며, 이것은 훌륭한 선교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으로 인해 보티발의 집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축복받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멸하지 말도록 기도하는 것, 백인대장의 기도로 그의 종이 치유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보티발 부인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후, 파라오 술시중의 꿈을 해몽한 후 감옥에서 빼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후에도 요셉은 2년을 더 감옥에서 보내야 했는데 이는 모든 것이 인간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준비기간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꿈 해몽을 잘하게 되었을까요? 당신의 도구로 쓰기 위해 하느님이 그에게 영적 통찰력을 주셨기 때문일까요? 파라오의 술시종과 빵 시종이 꿈을 꾸었는데 그들에 대한 요셉의 관심과 배려가 그들에게 다가가고, 잘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근심중에 있는 그들의 안색을 살필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해와 달과 11개의 별들이 자신을 향해 절을 하는 꿈을 꾸었다며 천진하게 형제들에게 자랑하던 요셉은 불행을 통해서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졌습니다. 하느님과 가까이 할수록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도 커지고 영적 통찰력도 얻게 됩니다.
보티발 부인의 유혹사건을 이겨낸 요셉의 모습은 참으로 납자답습니다. 젊고, 잘 생기고, 몸짱인 요셉에게 여인의 유혹은 집요하였지만 그는 단호히 물리칩니다. 그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가야하지만요.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기도, 묵상, 성서공부는 불행을 이겨나가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굳건히 불행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5월 4일 나눔
지금부터는 용서와 화해에 관하여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리모두는 관계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며 그 안에서 상처를 받고, 관계회복을 위해서 끊임없는 용서와 화해 가 요청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에굽에서의 노예생활이 요셉에게는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상처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랑받는 아들이며 모든것이 모자람이 없었던 생활을 뒤로하고 형제들에게 버림받아 한순간에 노예가 되어버린 그의 생활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점에서 요셉의 노예생활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비유됩니다. 한편, 요셉의 형제들은 기근에 시달려 양식을 구하려 에굽에 와서 요셉이 동생인지조차 모르며 그를 만나던 순간까지는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의 요셉과 그의 형제들은 각각 그리스도교 신자와 비신자에 비유하여 말할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죄와 죽음의 한계속에 있는 인간을 잘 인식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하느님과 그의 백성들의 화해가 이루어짐을 기뻐합니다. 하지만 비신자들은 자신의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요셉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한다고 해서 그의 형제들의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니며, 잘못을 인식하고 죄인임을 깨닫는 것은 그의 형제들이 치러야 할 몫입니다. 요셉은 그의 형제들이 양식을 구하러 에굽에 왔을 때, 까닭없이 못살게 굼니다. 이것은 그의 형제들이 지난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요셉의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할까요? 일상생활에서의 참회와 성찰은 우리의 죄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잘못을 인식하고 나면 용서와 화해를 위한 준비가 한걸음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에 비유되는 요셉의 힘든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은 그에게는 상처가 아니넜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요셉에게는 하느님이 늘 함께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런 확신은 그의 형제들과의 용서와 화해가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야곱이 죽은 후 그의 형제들은 요셉이 변심하여 그들을 못살게 굴지나 않을까 불안해 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믿음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불안해 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지인들과 가족들과의 관계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요셉과 같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같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는다면 우리는 상처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상처를 받을까요? 요즈음 일어난 고위층의 자살사건들에서 보듯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무너질 때입니다. 그 누가 봐도 별 볼일 없는 생활 중에서도 요셉은 하느님이 그와 함께 계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자긍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 나라의 총리로 성공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현재 믿음이 부족하고, 앞으로 믿음을 키워감으로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문제이지만 이미 받은 상처가 있고,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준 상처도 있는데 실질적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화의 기술, 사랑의 기술,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는 참회와 성찰, 자신의 상처를 객관화함으로서 상처 덜 받기, 자신에 대한 자긍심 높이기, 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 역시 현실적인 대책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만, 용서와 화해가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기는 더 어렵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믿음을 키우기는 너무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릴것 같아서 현실적인 대안들을 찾다가, 결국에는 믿음을 키우는 것만이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제일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돌아갔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모두는 요셉입니다.
요셉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들어간 배경, 사건을 다루면서 출애굽기의 단초를 제공합니다. 요셉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창세기를 마감하며 다음주부터는 출애굽기 공부가 시작됩니다.
첫댓글 쿠오오~~ 엘리사벳누나.. 무슨.. 논문같아요.. 엘리사벳누나 멋재이~~^^=b 나도 어여 올려야하는데.. 힝...
좋은 나눔 감사합니다. 관계 안에서 살아가면서 요셉처럼 상처를 덜 받는 길은 무엇보다 믿음, 곧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존엄성과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깨닫는 것이라는 나눔에 깊이 공감합니다.
엘리사벳 언니 대단해요~~ 우리가 아픈 것을 상처로 남기지 않고,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 그 모두가 믿음의 힘, 즉 무엇이든 이루실 수 있는 하느님 안에서, 그분의 도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창세기 공부 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 알게 해주시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 깨닫게 해주신 신부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서공부 모임이 '돌베개 성서반'인지 이 글을 읽고 알았습니다. ^_^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율리아나.. 이렇게 까페에서도 보게되어 넘방가와여~~ 왜 저희 모임이름이 돌베개인지는 잘 모르시죠? 약간 이름이 거시기하지만, 얼마나 심오한 뜻이 있는데요..ㅋㅋ 암튼 한가족이 되신거 정말정말 환영하구요.. 앞으로 많은 활동 기대할께여.. ^^
저 joythree는 율리아나가 아니라 이재열 프란치스까인데요... 회사에서 사용하는 영문이름이 Joyce Lee여서 비슷한 발음의 joythree를 예명으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혼동하시게 해서 죄송 !
호곡.. 프란치스까..자매님 예명을 못알아뵈어서.. 죄송해여..^^;; 새식구 늘어난 바로 담날 글이 올라왔길래.. 율리아나가 올린줄 알았어여.. ^^ 그렇다면 율리아나는 가입안한겐가?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