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이야기 외 2편
표순복
전북 고창 출생, 1995년 월간 <한국시> 등단, 시집 <특별하지 않은 날의 주절거림>, 제18회 <서울시인상> 수상
봄이 왔다
겨우내 움츠린 몸을 푸는지
꽃샘추위에도 봄볕 드는 감나무 밭은
닭들의 세상이다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신호 신비롭고
수십 종의 울음소리 감나무와 소통한다
새벽을 알리는 소리 날이 밝고
알 짓는 소리 알 낳았다는 소리
감알이 굵어간다
암탉 따라 우는 수탉의 울음은 능청스럽고
낯선 그림자에 보내는 울음은 절박하다
온 밭을 헤집고 뛰놀다가도
해설피 제 집 찾는 영특함이 있다
감나무 밭에 들면 꼬꼬댁 꼬꼬꼬 소리
옛 추억을 일으키며 아득해진다
한 뼘도 더 남은 해거름에도
우리에 들어 횃대에 오른 녀석들
세상시름에 젖다가도
놈들 보는 재미에 봄날은 짧다
생판 모르는 것들이 만나
감꼭지가 실해지고 닭벼슬이 붉어졌다
바닷가 마을을 지나다
내 어릴 적 바다는 머나먼 꿈이었다
바닷가에 사는 고모, 갯내음을 몰고 오면
우리집은 잔치날이었다
게장이며 비린 것들 챙겨 오셨다
밥상머리에서 바다의 꿈을 키우는 동안
세월 따라 팔순이 된 고모 서울사람 되셨다
그 때의 고모만큼 나이를 먹어
꿈에 그리던 먼 바다, 가깝게 길 나선다
차창 너머 고모의 옛 집이며
고종사촌 오라비 소금 굽던 염전이며
개펄에 등 굽혀 살던 고모의 젊은 날을 만난다
세상살이 좋아져
바다에 이어진 명사십리길
은빛 이랑의 꿈틀임 눈에 벅찬데
바닷바람의 소살거림도 짭짤히 스민다
구시포 썰물 진 바다에 닿자
부모따라 나온 개구쟁이 두 놈
깔깔대며 연신, 꿈을
반죽하고 있다
격세지감
학습지 교사가 오는 시간은
저녁식사 무렵
아파트에서 음식냄새가 난다고 한다
밥 냄새 반찬 냄새 구수한 찌개 냄새
그러면 어머니 냄새
고향 냄새까지 난다는데
학습지 교사 생활 힘들어도
집 밥 냄새는 하루 피로를 풀어주고
사는 의미도 느끼게 해 준다고
허나 요즘 아파트에서
음식냄새 밥 냄새를 맡을 수 없다고 하니
맞벌이 부부 툭하면 외식이며 회식이고
십대 이십대는 집 밥 의미 전혀 없고
동남아인들 모두 밖에서 밥을 먹는다며
머잖아 우리나라 그리 될 것이라네요
꽁보리밥도 배고프던 시절 엊그제건만
집 밥 냄새 맡을 수 없다하니
참! 격세지감이네요
자연의 섭리, 닭 이야기
부모님 가시고 남겨진 빈 땅에 농작물을 키우고 있다. 작년 여름 그 뜨겁던 어느 날 집안 아저씨가 촌닭 7마리를 블루베리 밭 망 하우스에 풀어 놓으셨다. 우리 부부는 생각지 않은 동물농장의 어미 아비가 되어 무더위에 팥죽 같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망 하우스 밖으로 차광막을 둘러 우리를 단단히 만들었다. 여름내 무성했던 밭의 잡초는 닭의 먹이가 되어 말끔해지고, 너른 하우스 안이 그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식물과 동물이 한데 어우러져 제초제를 쓸 필요 없이 풀들이 제거되어 깨끗하고 보기 좋았다. 7마리였던 닭은 알을 낳고 아저씨는 병아리를 부화시켜 자꾸 식구를 더해 놓았다. 60마리 가까이가 하우스 한 켠에 의지하여 겨울을 났고, 봄이 되어 뒤뜰 감나무 밭으로 이사를 했다. 감나무 밭 잡초도 제거하고 싶은 주인의 욕심이 있었다.
닭을 키우며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닭대가리라는 말도 있지만 의외로 닭들이 똑똑하다. 30여종의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닭은 손님으론 못 간다는데, 아저씨는 자꾸 자꾸 손님을 보태 식구가 늘었고, 손님도 별 무리 없이 받아 주어 다행이다. 무리 중에 우두머리가 있기 마련인데 어느 놈이 대장인지 알듯 말듯하다. 어쩌다 인간의 밥상에 오를 놈을 잡아낼 때, 닭들은 무리지어 덤비고, 자루 속 들어가기 싫어하는 녀석 “ 안 돼~ 안 돼~~” 소리내는 것 같아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올 1월말경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갓 태어난 병아리 한 마리 휘청대며 제 어미인 듯 품으로 파고드는 것을 보았다. 뱃 속에 품어 새끼를 출산하는 것도 아닌 암탉이 21일 동안 어디에 알을 감춰 새끼를 냈는지 의아했다. 순간 새(鳥) 새끼인가 생각도 해 보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우리를 뒤져 한쪽 틈에 숨겨져 있는 달걀 무더기를 발견했다. 청란(푸른 빛 도는 알)만 20여개가 구석에서 발견되고 추운 날씨에 날마다 품어주어 성체가 된 병아리가 생명의 탄생을 앞두고 동사해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다 세상의 빛을 본 그 위대한 놈이 무사히 자라길 염원하며 자연의 섭리에 감동받는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참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