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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전도서 9:11-12.
우리가 살아 가다보면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터지면 말씀을 듣거나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말씀을 아는 사람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새 힘을 얻습니다.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1. 갑작스런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권병팔 집사 누님되시고, 고 김정자 집사님의 따님 되시는 권금희 집사님(남편 홍병렬 집사)이 어제(12일,수) 54세의 일기로 주님의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명랑하고 열심히 일하고 건강하던 분이 하루아침에 뇌출혈로 세상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집중호우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며칠째 이어진 폭우로 전국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44명으로 집계됐다. 이번 호우로 도로 등 공공시설, 주택, 사유시설이 피해를 입었다. 토사유출, 침수, 엄창난 규모의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고 닭과 오리, 돼지, 소 등 69만3000마리가 폐사했다. 현재 전국 15개 시·도 109개 시·군·구 9231세대 1만4490명이 일시 대피해 3913세대 5876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힘들고... 한국교회가 힘든 시기이고... 이것은 우리 개인의 삶에도 엄청난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이 생기면 무조건 기도를 합니다. 왕부터 나라의 어려움, 민족의 어려움, 개인의 어려움이 생기면 무조건 머리에 재를 뿌립니다. 옷을 다 찢어버립니다. 다른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이 어디 아프세요? 라고 묻는데 “한 번 알아 맞춰 보세요.”라고 하면 안됩니다. 어디가 아프다고 말을 해야 의사 선생님이 처방을 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도 우리가 어디가 힘들고 아프다고 말씀을 드리십시오. ‘이것 때문에 힘들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은데 잘 안되요.’ ‘공부를 잘 하고 싶은데 지혜를 주세요.’라고 눈물로 기도하고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고 해결해주십니다. 이런 사고가 나면 세상은 “누가 잘 못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문제를 몰아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잘 못 했다. 장관이 잘 못 했다. 경찰이 잘 못했다. 거기에 참여한 자들이 잘 못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면 사건 사고의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고 또한 사건 사고를 통하여 인류가 깨달아야 할 귀한 진리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2.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요?
오늘 말씀은 전무후무한 지혜자 솔로몬 왕이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보고” 깨달은 말씀입니다. 단편적인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을 연구하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음을 다하여 연구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현실의 대부분의 일은 합리적이다”는 것입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일을 살펴보면서 대부분의 일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일은 합리적입니다. 본문에 보면 빠른 경주자가 선착하고, 유력자가 전쟁에 승리하고, 지혜자가 식물을 얻고, 명철자가 재물을 얻고, 기능자가 은총을 입습니다. 대부분의 일이 이렇게 합리적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것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에는 비합리적인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대부분 합리적이지만 비합리적인 것도 있습니다. 지혜자 솔로몬이“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보고” 깨달은 것이 이것입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빠른 경주자가 선착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유력자가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지혜자가 식물을 얻는 것이 맞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명철자가 재물을 얻는 것이 맞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기능자가 은총을 입는 것이 맞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 비합리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바로 사건 사고입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일, 우리가 대비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솔로몬은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대부분은 합리적으로 죽습니다. 나이 더 먹은 사람이 덜 먹은 사람보다 먼저 죽습니다. 대부분 이렇게 죽습니다. 그런데 간혹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보다 먼저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비합리한 일이 세상에 있습니다. 사고로 질병으로 먼저 죽는 경우가 세상에 있습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그것을 “시기와 우연(기회, 개역개정)”이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합리적인 것도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장담할 없습니다. 언제 누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전무후무한 지혜자 솔로몬이 마음을 다하여 모든 일을 살펴보고 깨달은 것이 이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비합리적인 일입니다. 이 비합리적인 일 때문에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세상이 난리가 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일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세상에 이렇게 비합리적인 일이 일어나도록 하셨을까요? 모든 일을 100% 합리적으로 만드시지 왜 이렇게 비합리적인 일이 일어나도록 만드셨을까요? 세상의 묘미는 바로 이 비합리적인 것에 있습니다. 이 비합리적인 것을 우리는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나 실제로는 매우 긍정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개역 성경에서는 “시기와 우연이 모든 자에게 임한다”고 번역을 했는데, 개역 개정판에서는 “시기와 기회가 모든 자에게 임한다”고 긍정적으로 번역했습니다. 비합리적인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3. 우주만물의 섭리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합리적으로 돌아간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것이 하나님이 됩니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것이 있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끔 이런 비합리적인 사건 사고들을 일으키시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이 우주만물을 섭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을 섭리하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우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솔로몬도 이것을 깨달았습니다.(9:1)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리고) 그들의 행하는 일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 솔로몬은 의인도 지혜자도 그들이 행하는 일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즉 의인도 지혜자도 그들의 삶을 주관하는 것은 자기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부 잘했다고 꼭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다시 찾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며, 모든 것은 합리적이다고 생각을 해서 버렸던 하나님을 다시 되찾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번 집중호우 재난 사건을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이 아니며, 인간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으시고 그 동안 잃어버렸던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4. 삶도 죽음도 다 비합리적입니다.(11-12)
솔로몬은 세상에서의 삶도 비합리적이고 예측할 수 없지만, 또한 죽음도 비합리적이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1절 말씀은 삶의 비합리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이것은 세상일의 비합리적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비합리적인 것도 있습니다. (12)은 죽음의 비합리성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 이것은 죽음의 비합리적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비합리적인 죽음이 많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노인보다 먼저 죽습니다. 선인이 악인보다 먼저 죽습니다. 이번 장마 폭우 사고로 죽은 자들의 사연이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신혼 2개월째인 30대 초등교사부터, 세 아이를 둔 40대 치과의사, 영주시 풍기읍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부녀지간인 2명이 숨졌다. 예천에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해 지역에서 유명인으로 알려진 부부도 숨졌다. 주말에 가족 다 같이 놀러 가기로 했었다는 사연도 있습니다. 이것을 솔로몬은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시기는 무엇입니까? 죽음의 때를 이야기 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죽음의 때를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죽음은 비합리적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서 기름준비하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와 같이 늘 깨어서 기름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마 25:1-13) 열 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등과 기름을 준비해서 나갔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만 들고 나갔습니다. 신랑이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신랑이 옵니다. 처녀들에게 나와서 신랑을 맞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많이 가서 등불이 꺼져갑니다.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채워서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자들은 등불이 꺼져가자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은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부족하니 주유소에 가서 사오라고 합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주유소에 간 사이에 신랑이 와서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들과 함께 혼인자리에 들어가고 문이 닫혔습니다. 기름을 넣고 온 처녀들이 자기들에게도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신랑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삶도 죽음도 다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름 준비하고 깨어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신앙의 잠을 깨어 기름(죽음)을 준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위에 신앙의 잠을 자고 있는 식구들, 성도들을 다 깨워서 다음 주일에 교회로 데려오시기 바랍니다. 너무 오래 신앙의 잠을 자다가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할 때 거기 걸릴까 두렵습니다.
5. 어떤 상황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전지하시고 합리적인 하나님이 세상에 비합리적인 것이 있도록 만드신 것에는 매주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인간으로 희망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리적이라면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2등 이하는 달려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는 자는 노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거북이는 달려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이 얼마나 절망적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세상이 합리적이 아니라고 불평하나, 세상이 합리적이면 세상은 절망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비합리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끝까지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끝(죽는 날)까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 세상은 모든 일은 미래입니다. 즉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일은 기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끝까지, 죽는 날까지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태풍가 와서 모든 주위가 온통 쑥대밭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 시간 나는 희망을 갖고 신문을 읽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우리가 아무리 암담한 현실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희망을 갖고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솔로몬 왕의 “모든 산 자 중에 참여한 자가 소망(희망, 기회)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는 말씀을 명심하시고, 살아서 의식이 있는 한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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