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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걷다 보면 발이 더러워지기 마련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는 유달리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들이 많습니다. 바로 작고 가난한 이들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진 난민들, 이주민들, 재소자들, 환자들, 노인들, 가난한 사람들...
이런 분들을 따뜻하게 품어 안고 동반하려는 교황님의 의지가 대단합니다. 교황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총애하시는 당신의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내셨는데, 그것을 바로 오늘,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2015년 미국을 방문하셨을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미국 의회 연설에서 강대국의 횡포를 신랄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야만적인 자본주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횡포로 인한 부의 불균형에 대한 개선을 강하게 촉구하셨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미국 상하원들은 마음 속으로 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연설이 끝나고 교황님과 함께 하는 만찬이 준비되지 않을까? 식사 후에는 교황님과 찍은 인생샷 사진 한 장 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교황님은 연설이 끝난 후 점심 약속이 있다면서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대체 어떤 사람과 점심 약속이 되었을까? 대통령? 아니면 미국 주교단? 모두 아니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성 패트릭 성당으로 자리를 옮겨 300여명의 노숙자들과 함께 간소한 점심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이 작은 이들의 사목자요 동반자임을 만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함께 식사를 나눈 노숙자들을 만나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저도 이민자 가족입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낙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또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셨는데, 그곳은 교도소였습니다. 거기서 재소자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시면서 이렇게 격려하셨습니다.
“걷다 보면 발이 더러워지기 마련입니다.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더러워진 발을 깨끗하게 잘 씻기 바랍니다.”
이혼 후 재혼한 가정과 그 자녀들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목적 배려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님은 단호하게 직진하십니다.
“실수와 죄악은 단죄돼야 하지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이해받고 사랑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바탕으로 현대 가정의 실제 삶과 현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들의 잘못을 단죄하기보다는, 이혼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들을 위해서 교회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합시다.”
“우리 교회는 야전병원입니다. 그 안에서 성체는 완전해진 자들에 대한 포상이 아니라 병자들을 위한 치료약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우선적 선택과 극진한 사랑을 얼마나 본받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종말의 법칙: 죽음의 법칙을 알면 생존 법칙도 보인다>
복음: 마르코 13,24-32
오늘 복음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적어도 이스라엘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죽음은 생각하기 싫은 주제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묵상 할수록 더 오래 살 수 있는 생존의 방법을 터득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멸망의 징조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우선 세상의 한때 잘 나갔다가 망하게 된 여러 사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들에게서도 분명 태양과 달, 별이 빛을 잃는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먼저 한때 휴대전화 분야의 글로벌 리더였던 노키아 제국의 멸망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노키아는 자신의 명성과 기술에 안주하여 새롭게 개발되는 애플과 구글의 터치스크린 시스템을 거부하였습니다. 잠깐이었지만, 더는 그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코닥의 멸망을 살펴볼까요? 코닥은 세계 카메라 필름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하게 되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는 결국 자기 이익을 갉아 먹는 결과를 초래할 것임으로 그 기술을 묻어버렸습니다. 다른 회사들에서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하고 실용화하였을 때 그들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반면 삼성 이건희 회장이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자사 제품을 사주는 고객들에게 불량품을 내놓는 게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호통을 치며, “아내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1995년 삼성 휴대폰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된다는 말을 듣고는 이건희 회장은 공장에서 휴대폰, 텔레비전, 팩스기 등 불량품을 모두 폐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추정 가치 약 500억 원(당시 약 5,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자신들이 만든 상품이 불타 없어지는 모습을 본 삼성 직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자기 이익만이 아닌 고객을 감동하게 하려는 마음을 회복했을 것입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경영 합리화로 잉여를 많이 올려 궁극적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기업인의 본분이며 사회적 의무다.”(1976년 언론기고)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면 그 상품을 사용하는 사람의 이익은 잊히게 됩니다. 그러면 구매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그러면 망하게 됩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처음의 관심은 고객들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나약함으로 차차 자기 이익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홍익인간, 곧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이념으로 생겼습니다. 이것이 잊힐 때는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계명을 기억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이익을 조금은 희생하면서 본래의 정신을 회복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예배’라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계명을 위해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살려면 규칙적인 화형식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셋째 날에 땅에서 나무들이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 나무들이 인간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인간이 멸망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존재임을 되새겨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습니다. 해는 하루, 달은 한 달, 별은 1년 주기로 돌아옵니다. 이 규칙적인 예배와 기도가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경에는 하루, 한 달, 1년 주기로 규칙적인 예배 규정을 수없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가 무시되는 날 종말입니다. 이것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으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입니다.
대전 ‘성심당’을 모델로 삼읍시다. 창업자 임길순 씨는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라는 정신으로 ‘성심’(예수님 마음)으로 가게명을 지었습니다. 여기서도 화형식이 있었습니다. 사업 확장을 위해 무리하게 빚을 냈다가 공장에 불이 난 것입니다. 이때부터 다시 마음을 다잡고 후손들은 창업자의 홍익인간의 마음으로 시작하여 5개의 매장으로 순이익이 3,400개 대기업 파리바게뜨를 넘어섰습니다. 지금도 그분들은 성당에 나와 기도하며 하느님과 창업자의 정신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만든 물품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괜히 그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기 위해 그것을 파기합니다. 제 역할 수행을 위해 우리의 태양과 달과 별빛이 흐려지지 않도록 합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르 13,24-32: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오늘의 전례는 만물이 어떻게 마지막 날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밝혀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역사를 외면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간성을 완전하게 성장시킬 수 있도록 역사 속에 깊이 잠기는 것을 말한다. 다니엘서의 내용은 육신의 부활을 긍정하는 구약의 문헌 중의 하나이다(2마카 7,9 참조). 이제 인간은 마지막 때에 하느님을 자기 전 존재로서, 육체를 가진 자로써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마르코 13장 전체에 걸쳐서 하신 종말론적 담화이다. 오늘의 이 대목은 예수님의 종말론적 메시지를 “아들”(32절)이신 예수님께도 알려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신앙의 차원으로 확대해 실현하게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먼저 예루살렘이 당할 재난을 말씀하시고, 당신이 마지막 날에 심판자로 다시 오시리라고 하신다.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26절)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하느님의 영광에 들어가시고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시며(마르 16,19) 마지막 날에 영원히 계속될 하느님 나라에 뽑힌 이들을 모으기 위해 다시 돌아오실 분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27절)라는 말은 히브리 사상에서 기다림에 대한 응답이다. 구약에서는 이것을 오직 이스라엘 12지파의 재결합만을 생각했지만(신명 30,4; 에제 34,12~; 이사 27,12-13; 43,5-6; 즈카 2,10; 8,7-8 참조), 여기서는 모든 믿는 이들의 ‘새로운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다(참조: 요한 11,52).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는 예수님 자신도 모른다고 하시며 알려주시고자 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할 수 있으나 복음사가가 의도하는 것은 오셔야 할 그분은 어느 때나 어느 순간이나 오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풀지 말고 깨어있어야 하는 ‘기다림’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29절).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28절), 주님이 문 앞에 다가온 줄을(29절) 알 수 있는 표징들이 있다. 예루살렘의 종말은 그 동시대인들에게 표징이 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건이 종말의 예표일 수 있었고, 예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32절). 그러기에 항상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마르 13,35-36 참조). 그러므로 종말론적 삶이란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일상 활동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온갖 사물과 이 세상을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더 합당한 요소가 되게 하고, 언제나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금의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언제나 오실 수 있는 그분을 맞이하는데 떳떳하고 기쁘게 나아갈 수 있는 삶을 사는 삶을 말한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해 계속 전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제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영광스러운 사제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아버지 오른편에 계시면서 당신의 사제직을 수행하고 계시다. 즉 현재에도 실현되고 있는 사제직이다. 둘째는 종말론적 내용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히브 10,12-13).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에 우리를 만나러 오실 때에는 심판관으로서의 모습이지만, 또한 우리에게 대사제이신 분이시다. 그래서 지금도 아버지 오른편에서 수행하고 계신 사제직 때문에 더욱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마지막 때를 잘 맞이하기 위해서도, 그때가 되어 여러 가지 어려운 때가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이 잃지 말아야 할 희망을 간직하고 이겨내고, 항상 깨어있는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깨어있는 삶은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해 줄 것이며 완성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오, 예수님. 거룩해진다는 건 얼마나 쉬운지요. 선의만 조금 있으면 되니까요. 예수님은 영혼 안에서 매우 작은 선의라도 발견하시면 서둘러 당신을 영혼에게 주십니다. 그때는 영혼의 잘못도, 넘어짐도, 그 어느 것도 예수님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매우 관대하시며 아무한테도 당신 은총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시기까지 하는 분입니다. 성덕에 이르는 지름길은 성령의 영감에 충실히 머무는 것입니다.”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님의 일기 중 일부입니다. 성녀의 말씀처럼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약간의 선의만으로도 거룩해질 수 있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약간의 선의에도 조건이 붙으면서 주님의 활동을 가로막아 자기의 거룩함은 물론이고 하느님의 거룩함을 세상에 알리지 못하게 됩니다.
악습에 빠진 사람이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에 대한 비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습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만나면 먼저 비판부터 하게 된 것입니다. 비판할수록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변화를 위해, 비판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성호경을 그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비판이 아닌 상대방의 좋은 점을 먼저 찾게 되었습니다.
성호경으로 주님을 초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를 변화시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신 것입니다. 성호경이 힘든 기도일까요? 성호경 하는데 5분에 걸쳐서 해야 한다면 힘들다고 인정하겠지만, 아무리 길어도 5초면 충분히 마칠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까? 이 조금의 선의를 통해 그 사람의 생각을 바꿔서 거룩해지게 된 것입니다. 참 쉽지 않습니까?
이 정도의 선의도 실천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종말에 관한 가르침을 전해주십니다. 얼마 안 있어 끔찍한 일들이 자기들 주변에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 말씀에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알고 싶은 것은 그런 일이 어디서 일어날 것이며, 특히 언제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렇게 알려주십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불안해하고 걱정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약간의 선의만으로도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굳게 믿고 우리의 선의를 세상에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따뜻함을 나누면 서로의 마음이 맑아져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됩니다(법정).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매일매일 말씀을 묵상을 하며
깨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매일 묵상하는 이 시간이
인간적으로는 쉽지 않다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내가 굳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되나?
남들처럼 그냥 편하게 살까?
하느님의 시간(카이로스)과
인간의 시간(크로노스)은 다릅니다.
나의 믿음을 지키고 그 안에서 준비된 삶,
예수님께서는 준비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이 찿아 가시고
당신을 더 많이 내어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쁜 일상에 밀려 믿음이 약해지면
빈자리에 인간적이고 세속적이고 육적인
자기만을 위한 시간으로 채우게 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함과 한계 때문입니다.
깨어 준비된 종으로 오늘을 살기 위해
오늘도 깨어 기도해야겠습니다.
내 안에 오실 주인을
애타게 저는 오늘도 깨어 기다립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그 때에 네 백성은 구원을 받으리라.>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2,1-3
1 그때에 네 백성의 보호자 미카엘 대제후 천사가 나서리라.
또한 나라가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재앙의 때가 오리라.
그때에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2 또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
3 그러나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무궁히 빛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11-14.18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3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24-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25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26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28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1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2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