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쯤 전인 2020년 9월 카프카스 지역의 '앙숙'인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또 충돌했다. 양측은 서로 상대가 먼저 도발했다고 비난했다.
아르메니아의 니콜 파쉬냔 총리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아제르바이잔의 공격에 맞서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면서 "약 30대의 적 전차및 장갑차, 20대의 드론을 파괴하고, 200명의 아제르바이잔 군인을 죽였다"고 주장했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도 "우리의 전쟁 명분은 정의롭고, 또 승리할 것"이라며 계엄령을 발령했다. 그러나 상대 측 손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아 전쟁은 한달 열흘여만에 끝났다. 인구와 영토,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열세인 아르메니아는 '항복 문서'나 다름없는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오랫동안 실효지배한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 측에 넘겼다.
여섯째(6일)를 맞은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공격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전투를 연상케한다. 곳곳에서 드론이 날고, 주요 도로엔 파괴된 군사 장비가 널려 있다. 양측은 또 경쟁하듯 전과를 홍보하고 승리를 장담한다.
달려가는 차량 앞으로 부서진 군사 장비들이 보인다/사진출처:영상 캡처
타고가던 차량이 드론에 의해 폭파되면서 부상한 러시아 종군기자 포드두브니가 구조를 요청하고 있다/사진출처:영상 캡처
하지만 현지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할 수 있는 언론은 없다. 취재를 위해 격전지 '수드자'로 향하던 러시아의 유명 종군기자 예브게니 포드두부니(Евгений Поддубный)는 타고 가던 차량이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에 폭파되면서 죽다가 살아났다.
'수드자'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취재에 나선 코메르산트 종군기자도 도로 위에 떠다니는 드론에 겁을 먹고 '수드자'행을 중간에 포기했다고 9일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는 수드자에서 온 난민들을 취재해 긴박하게 움직이는 현장 기사를 써야 했다.
취재 여건은 서방 외신들도 다를 바 없다. 너무 위험해 진격하는 우크라이나군을 따라 나설 수가 없다. 러-우크라 현지 군사 전문가들의 발언이나 위성 사진, 소셜네트워크(SNS)에 올라온 글과 영상(사진)을 근거로 전황을 분석하고 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10일 러시아 군사분석가들을 인용해 "러시아군은 쿠르스크 북쪽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을 막고, 이 지역(쿠르스크주)의 다른 곳으로 공격하려는 우크라이나 개별 부대를 제지했다"고 전했다.
쿠르스크 전황을 전하는 미 NYT 10일자 보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국경 지대 공격에 반격, 그러나 키예프의 압박은 계속'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캡처
NYT에 따르면 핀란드 싱크탱크 '블랙 버드'(Black Bird, 위성 이미지와 SNS로 전황을 분석하는 전문 단체)그룹의 전문가 파시 파로이넨은 "우크라이나군이 공격 개시 후 사흘간은 손쉽게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수드자와 국경 마을 근처에서 (진격이) 막힌 상태"라고 파악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 당국은 탱크와 미사일 등 중화기를 현지로 투입해 우크라이나군 격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AP통신은 키예프(키이우)가 쿠르스크 공격을 통해 러시아군이 도네츠크 지역 동부전선에서 주요 무기와 병력을 (쿠르스크로) 이동 배치하도록 만들면서 느리지만 꾸준한 러시아군의 진격에 제동을 걸었다고 분석했다. 이 통신은 또 우크라이나군이 이번 공격을 통해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고, 크렘린의 평판에 타격을 안겼다고도 했다.
쿠르스크로 이동하는 러시아군 병력/사진출처:영상 캡처
그러나 "초기의 작전 성공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의 반격에 의해 우크라이나군의 가장 유능한 부대가 손실을 입고, 도네츠크 전선에서는 긴요한 예비 병력이 사라질 수 있다"고 이 통신은 우려했다. 또 쿠르스크에 교두보를 구축하려는 우크라이나군의 시도가 물류 공급망 차단에 나선 러시아군에 의해 어려운 임무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공격이 크렘린에게는 지난해 6월 바그너 그룹의 군사반란(6.24 군사반란)이후 가장 심각한 도전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분석가들은 WP 측에 "이번 공격이 러시아군의 이동 배치를 압박하고, 향후 협상에 지렛대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분석했다. 또 우크라이나군과 국민의 사기를 높이는 등 심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WP에 따르면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도네츠크 동부 전선에서 열세에 놓인 우크라이나군이 왜 쿠르스크 공격에 나섰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강력한 러시아군이 조만간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낼 것으로 예측했다.
종합하면, 미국 언론들은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에 대한 초기 공격에는 성공했으나, 앞으로 예상되는 러시아군의 반격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은 어떨까?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0일 "쿠르스크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라며 "우크라이나군의 진격로와 러시아군의 방어라인, 나아가 러시아군이 가까운 시일 내에 우크라이나군을 국경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는지 여부 등이 모두 의문에 싸여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지난 2022년 9월, 하르코프주 주둔 러시아군을 격퇴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 작전을 예로 들면서, 러시아 군이 이번 쿠르스크 공격을 언제 어떻게 막아낼런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향후 예상되는 2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러시아군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즉 1~2주내에 우크라이나군을 국경 바깥으로 밀어낸다면, 크렘린은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특별한 정치적, 군사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나아가 크렘린은 "키예프 정권의 모험적인 시도를 짧은 시간에 무산시켰고, 그같은 시도는 앞으로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집중 홍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쿠르스크의 수드자 남쪽 마흐노프카 마을에 진입한 우크라군/텔레그램 영상 캡처
반면, 쿠르스크 전투가 장기전으로 변하고, 우크라이나군이 또다른 러시아 국경 지역으로 공격을 가한다면, 크렘린은 바그너 그룹의 6.24 군사반란과 같은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를 막기 위해 러시아 당국은 일찌감치 쿠르스크 등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벨고로드, 브랸스크주에 '대테러 작전'(режим контртеррористической операции, КТО).명령을 내렸다. 러시아의 '대테러작전명령' 발령은 체첸전쟁과 6.24 군사반란에 이은 3번째다. 우크라이나 국경지대 상황이 그만큼 긴박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 매체는 "푸틴 대통령이 위기에 처할 때 종종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며 "2014년 유로마이단 사태 때에는 크림반도를 병합했고, 2022년 가을 하르코프 퇴각 시에는 부분 동원령을 선포하고 우크라이나 4개 지역의 합병을 선언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푸틴 대통령이 이번에는 새로운 동원령을 내릴 수도 있다"면서 "전선을 하르코프 등 우크라이나 전체로 확대하거나, 키예프 등 주요 도시의 에너지및 기간 시설에 대한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가하거나, 현재 적극 공세를 펼치고 있는 동부전선에서 더욱 과감하게 영토 점령에 나설 수도 있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다만, 쿠르스크 공격은 러시아에게 동원령을 발령할 충분한 명분이 되지만, 그 후폭풍도 만만찮아 크렘린의 최종 결단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매체는 쿠르스크 공격이 우크라이나에게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여름의 반격이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쿠르스크 공격도 같은 결과를 낳는다면, 수만명의 새로운 희생자를 내고 훨씬 더 심한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2주내에 모든 것이 결판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