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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 3부 - 침노하는 이방여자들은 신부된 교회의 모습.
(다말, 라합,룻, 밧세바)
https://youtu.be/hW8PHB5pcJY?si=CVkMZBaDwXWwHlQy
룻기서 3부 - 침노하는 이방여자들은 신부된 교회의 모습.
(다말, 라합,룻, 밧세바)
룻기1:15~18
부 르 심:베드로전서1:3~4
교 독 문:3번, 시편 4편
찬 송:8(9),80(101),246(221),175(162)
기 도:
1)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동행
2)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구원
3)진실한 표를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되게 하소서
4)자유대한민국 자유통일 주사파척결 총선 200석 성령충만
1.룻이 다신교를 버리고 유일신교의 하나님을 믿음
1>유일신교로 거듭난 룻의 굳은 결심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룻기1:18)”
룻의 출신은 모압 이방여자입니다.
룻의 처음 종교는 모압의 신들을 섬기는 다신교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이 거듭나는 것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믿는
유일신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룻이 거듭난 시점은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기쁜 소식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 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룻기1:6)”
동서 오르바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함을 들었어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동서 오르바는 끝내 시어머니와 헤어져 모압 백성과 그 신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좋았더라(룻기1:14)”
복음의 소식을 듣고 변화되어 거듭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복음의 소식을 들어 복음의 능력이 되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다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품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위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끓어 질 수 없는 믿음으로 결심하여 동행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끓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8:39)”
하나님의 말씀의 떡이 있는 베들레헴으로 가고자 힘쓸 때 함께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굳은 결심에 룻과 같은 천국을 침노하는 자의 그리스도의 신부된 모습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방여자들의 이름과 유대 여자 마리아
(마태복음1:1~17)
마태복음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다섯 명의 여자 이름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된 여자 이름은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그리고 나사렛 처녀 마리아입니다.
다섯 명의 여자 중에 유일하게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은 나사렛 처녀 마리아입니다.
다섯 명의 여자 중에 다말과 라합과 룻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는 이방여자들입니다.
유일하게 마리아만 촌 동네 나사렛 유대 여자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생각할 때
다말과 라합과 룻과 밧세바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모습입니다.
나사렛 처녀의 몸인 여자 마리아는 이스라엘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이방 여자들 다말과 라합과 룻과 밧세바는 남자가 먼저 접근하기 보다
이방 여자들이 먼저 남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여자들의 이름이
두 분류로 언급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한 분류는 침노하는 이방 여자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신부된 모습의 교회와 선택받은
이스라엘로 여자 마리아를 본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마태복음에 1장에 굳이 여자 이름들을 넣어서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라스와 세라를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다말, 라합, 룻, 밧세바라는 이방여자들의 이름을 읽음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된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과 유대 여자 마리아를 읽음으로
이스라엘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게 하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의 오늘날 교회와 이스라엘을 구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뜻을 행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의 예비된 신부의 모습을 하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요한계시록21:2)”
3.마태복음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침노하는 여자의 이름 다말
(창세기38:1~30)
1>유다와 다말의 관계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마태복음1:3)”
유다와 다말의 본질 관계는 무엇입니까?
유다는 시아버지이고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부정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관계가 될까요?
유다가 다말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고
다말이 유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도덕적 관계를 넘어
영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겠습니다.
다말은 천국을 침노하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유다와 다말의 관계가 요셉 이야기의
중간의 즉 틈사이로 끼워져 있습니다.(창세기38장)
창세기 37장 요셉 이야기 - (38장 유다와 다말)- 39장 요셉 이야기
창세기 37장은 17세 된 요셉의 꿈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39장은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이야기와 옥에 갇힌 요셉의 모습입니다.
유다와 다말의 관계가 요셉의 이야기 틈 사이에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틈 사이에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로
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알고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틈 사이에 끼워져
있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은혜의 축복임을 감사합니다.
창세기 38장에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를 취하여
차례대로 엘, 오난 셀라를 낳았습니다.
유다의 장자 엘이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었습니다.
유다의 장자 엘이 다말에게 들어갔으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유다가 장자 엘이 죽었으니 둘째 오난을 형수 다말에게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형 엘이 후손을 남기지 않았으니 아우가 형수를 아내로 맞아서
아들을 낳아 형의 이름으로 상속하는 것을 계대법이라 합니다.
그런데 오난이 그 씨가 자기의 것이 되지 않을 줄을 알고 형수에게 들어갔으나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였습니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서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오난도 죽이셨습니다.
유다가 막내 셀라가 장성하기까지 다말을 친정으로 보냈습니다.
유다가 막내 아들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말이 소식을 기다려도 유다가 알려주지 않자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가 어디 있음을 알아내어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과부의 옷을 입고 유다가 지나가는 길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는 유다의 아들 셀라가 장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얼굴을 가린 다말을 보고 창녀로 여겼습니다.
유다가 들어가고자 하나 위장한 다말이 유다에게 약조물을 요구하였습니다.
다말이 유다의 도장과 그 끈과 유다의 손에 있던 지팡이를 달라 하였습니다.
유다가 다말에게 세 가지의 약조물을 주고
며느리인줄 모르고 그녀에게 들어갔습니다.
유다가 떠나가서 여인의 손에서 약조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 여인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석달쯤 지나 유다에게 들리는 것은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여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다말을 끌어내어 다말을 불살을려고 하자
다말이 이 물건을 보여 유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하니 유다가 보니까
자기의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였습니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창세기38:26)”
2>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마태복음1:3)”
마태복음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상 2장 3절부터 4절까지는 유다의 아들 다섯명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2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과 셀라니
이 세 사람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로 말미암아 낳은 자요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게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고 4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로 말미암아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더라(역대상2:3~4)”
그러나 유다의 다섯 아들 이름 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유다가 다말에게서 낳은 베레스와 세라 중에 베레스로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되었습니다.
왜 유다 중 아들 베레스만이“베레스가 헤스론을 낳는”족보가 되었을까요?
다말이 임산하여 보니 쌍둥이였습니다.
해산 할 때에 손이 먼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산파가 먼저 나온 자라 하여 홍사를 가져 그 손에 매었습니다.
그런데 그 손에 홍사를 맨 아기보다 다른 아이가 먼저 나왔습니다.
다른 아이가 홍사를 맨 아이를 비집고 먼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베레스라 하였습니다.
그 뒤에 홍사를 멘 아이가 나오자 그 이름을 세라라 하였습니다.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 고로 그 이름을 베라스라 불렀고
그 형제 곧 손에 홍사가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창세기38:29~30)”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먼저 홍사를 멘 세라가 아닌
비집고 나온 베레스의 족보가 되었습니다.
베레스의 뜻은 “비집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베레스는 비집고 나온 자로 베레스의 족보가 되어 다윗왕을 낳는 것이었습니다.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기4:18~22)”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다말은 그리스도의 신부의 모습이 되어
천국을 침노하는 자의 것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선택한 여자 이스라엘은 아니지만
지금 있는 일의 교회의 몸된 지체가 되어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 드립니다. 아멘.
4.자기 민족보다 상천하지의 하나님을 믿었던 라합(여호수아2장)
- 라합이 두 정탐꾼에게 말할 때 마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사모함
마태복음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두 번째 이방 여자로 기록된 이름은
여리고성 기생 출신 라합입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마태복음1:5)”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엿보고 정탐하도록 두 사람을 보내었습니다.
두 사람은 라합이라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유숙하였습니다.
여리고왕이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여리고로 들어왔다는 정보를 보고 받았습니다.
여리고왕이 라합의 집에 숨어 들어간 두 정탐꾼을 잡고자 하였으나
라합이 이미 두 정탐꾼을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노흔 삼대에 숨겼습니다.
왕이 보낸 병사들이 두 정탐꾼을 끝내는 잡지 못하였습니다.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여호수아2:9)”
라합은 비록 여리고의 기생의 신분이었으나
여리고에서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라합은 여호와께서 홍해 물을 마르신 일과
요단 저편 두 왕을 진멸시킨 일을 들었습니다.
라합은 자기 민족보다 상천하지의
하나님을 믿는 절대희망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여호수아2:11)”
사랑하는 여러분, 민족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유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라디아서5:1)”
오늘날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속지 말아야 할 것은 민족주의입니다.
“우리 민족끼리 하자”는 미혹입니다. 우리 민족끼리 하자고
반미감정,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주사파를 경계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우리 민족끼리가 아닌 자유를 주시는
민족통일, 연방제 통일이 아닙니다.
자유통일을 이루는 예수한국 복음통일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라합은 자기 민족보다 상천하지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여호수아2: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얼마나 여호와를 사모하는지
두 정탐꾼에게 말을 할 때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말하였습니다.
“여호수아2:8~12”
여호수아 2장 8절부터 12절까지 라합은 정탐꾼에게 말하는 절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9절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10절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무를 마르게 하신 일과”
“11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라”
“12절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그러므로 천국을 침노하는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5.창에 붉는 줄을 매는 진실한 표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여호수아2:12)”
표는 살리는 것과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죽음이 피해갑니다.
거짓된 짐승의 표 666을 받으면 불못의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여호수아2:18)”
여리고성은 곧 무너질 성입니다.
파수꾼의 경성이 허사가 되는 멸망의 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의 어떤 성을 쌓아 견고해 보여도
여호와께서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편127:1)”
생명나무가 없는 여리고성은 여호와께서 무너지게 할 성입니다.
여리고성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계획은 무너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여호수아6:20)”
곧 무너질 여리고 성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구원은 창에 붉은 줄을 매는 것입니다.
라합과 그 가족들은 붉은 줄을 맨 집에 모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세의 오늘날 모이는 것이 유흥을 즐기는 것이 되지 말고
오직 창에 붉은 줄을 매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보혈의 진실한 표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13:14)”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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