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소설 '관촌수필'에서
"나는 한동안 두 눈을 지릅뜨고 빗발무늬가 잦아가던 창가에 서서,
뒷동산 부엉재를 감싸며 돌아가는 갈머리부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음이 들뜬 것과는 별도로 정말 썰렁하고 울적한 기분이었다.
내 살과 뼈가 머문 마을이건만,
옛모습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던 것이다.
옛모습이 남아난 것이 저토록 귀할 수 있을까..... "
"싱금싱금한 청포묵 앗는 냄새는 그리 자주 맡는 게 아니었지만,
간수를 칠 때마다 부얼부얼 엉기던 두부솥의 구수한 내음이며,
엿밥을 애잇 짜내고 조청으로 졸일 때 밥맛까지 잃도록 달착지근한 풍기던 엿 고는 냄새만은
다시 한 번 실컷 맛보고 싶은 뼈끝에 매듭진 추억이었다....."
"아, 대복이 뒤만 따라다니면 모든 것을 맘대로 해도 겁날 게 없었던 시절의 이 그리움-,
먹고 살다 주워들은 문자지만 '실락원의 별'이란 말이 그처럼 실감날 수가 없었다.
길에서 비를 만나면 제 옷을 벗어 내게 덮씌어주었고,
밤마실 이슬 길에 달이 거울 같아도 제가 좋아 나를 없고 오며 가지 않았던가....."
"모닥불은 계속 지펴지는 데다 달빛은 또 그렇게 고와 동네는 밤새껏 매양 황혼녘이었고,
뒷산 등성이 솔수펑이 속에서는 어른들 코골음 같은 부엉이 울음이
마루 밑에서 강아지 꿈꾸는 소리처럼 정겹게 들려오고 있었다.
쇄쇗 쇄쇗…… 머리 위에서는 이따금 기러기떼 지나가는 소리가 유독 컸으며,
낄륵-하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마당 가장자리에는 가지런한 기러기떼 그림자가
달빛을 한 옴큼씩 훔치며 달아나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별 하나 주워볼 수 없고 구름 한 조각 묻어 있지 않았으며,
오직 우리 어머니 마음 같은 달덩이만이 가득해 있음을 나는 보았다....."
"고향을 지키고 있어
고향에 가려면 반드시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산을 관산(關山)이라 일컬어온 것은
마사[馬史- 사마천의 '사기'] 이래의 일이었다.
내게는 이제 복산이가 관산이었다.
그가 그곳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
나는 그곳이 고향이라는 증거를 한 가지도 지니지 못할 셈이 될 터였다.
그는 그곳에 남아 있었다.
옛 문장을 빌려 말하면
목우즐풍(沐雨櫛風)- 비로 목욕하고 바람에 머리 감는 신산고초를 견디고 이겼으니
그를 관산으로 여김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믿는다...."
고운 우리글의 맛깔스럽게 끈적끈적한 말투의 관촌수필!
이선생의 고향인 충남 보령, 한번쯤 들르시어 느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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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잠시 글을 읽으며 모든 풍경이 떠오르는 듯 . 그러나 가슴이 싸하며 아파오는 것은 왜 일까요?
영상과 글이 고향을 생각나게 합니다 ...언젠가 돌아가야 할 엄마품 같은곳 ...님 ~ 감사드리구요 ...좋은시간 되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