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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8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지금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장맛비로 인하여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곳 베트남도 마치 장마처럼 비가 오고 있습니다.
비가 이렇게 오면 전에 살던 반까오는 아마도 물난리가 날 것 같은데 우리 미련하고 연약한 이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어제는 몸이 안 좋아서 예배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찍 잤는데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주님 말씀 앞에 앉는 것이 내게는 최고의 일임을 알아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과 교제하기 원합니다.
이 종을 긍휼히 여기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내 영을 정결케 하여 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
육신으로 행하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의 뜻과 의지로 행하지 않도록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복음으로 주님의 뜻인 영생을 날마다 누리기 원하오니 크신 은혜로 더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12:9-21
제목 : 유다 왕 요아스가 금을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9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가져다가 그것의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 문 어귀 오른쪽 곧 제단 옆에 두매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 오는 모든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10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대로 그 은을 계산하여 봉하고
11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자의 손에 넘기면 그들은 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12 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성전 파손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성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13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성전의 은 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 그릇도 만들지 아니하고
14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15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16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17 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18 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19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였고
21 그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더라. 그는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나의 묵상
요아스 왕은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성전을 수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요아스가 통치한 지 23년이 지나도록 성전이 파손된 곳을 수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아스는 제사장들로 하여금 성전 수리하는 일에서 제외시키고 백성들이 직접 하도록 명하였다.
그래서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상자 하나에 구멍을 뚫어서 제단 곁에 두었다.
백성들이 바친 돈이 그 상자에 가득 차면 왕의 신하와 대제사장이 돈을 계산하여 성전 공사의 책임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 하는 사람들의 품삯과 물건을 사는데 쓰게 하였다.
그렇게 왕의 명령이 하달되자 그 일이 속히 진행되었다.
이처럼 요아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대하여 열심을 품고 일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왕하 12:2)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날 동안에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증언한다.
(왕하 12: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성전 수리하는 일이 끝나갈 무렵 아람 왕 하사엘이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군한다는 소리를 요아스가 들었다.
이에 요아스는 여호사밧과 여호람 그리고 아하시야 왕이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렸던 성물을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과 함께 아람 왕 하사엘에게 바쳤다.
그것을 받은 하사엘은 곧바로 예루살렘을 떠났다.
그후 요아스의 신복 중 요사갈과 여호사바드가 반역하여 요아스를 밀로 궁에서 죽였다.
그리고 그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었다.
요아스는 나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왕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많은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용두사미와 같은 자가 되고 말았다.
처음과 끝이 모두 좋았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인데 그는 마지막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을 하기보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어려운 난관을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그것은 요아스의 신앙의 행적 중 참으로 부끄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유혹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믿는 자들에게 이런 유혹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믿는 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유혹의 손길이 더 많이 다가오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은 이런 유혹 앞에서 갈등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믿는 자들은 갈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유혹 앞에서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의 중요한 요소이다.
삶에서 순간순간 결정해야 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다.
이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곧 말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아사 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41년간 다스렸는데 그를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하였다.
이런 칭찬을 들은 이유는 그의 할머니가 아세라 상을 만들어 섬길 때 할머니라고 봐주는 것이 아니라 태후의 위를 폐하고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 불사를 정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렸기 때문이다.
그는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기도 했고, 은 금 그릇들을 구별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도 하였다.
이런 아사였지만 북 이스라엘 왕인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오자 아사는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주고 이스라엘을 물리쳐 달라고 부탁한다.
이후 선견자 하나니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아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는 분이신데, 왕은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하였으므로 앞으로 아사 왕에게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로 인하여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 하나니를 옥에 가두어 버린다.
게다가 그의 말년에 발에 병이 들어 위독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원들에게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였다.
율법학자요 제사장인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2차로 귀환한 지도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에게, 자기가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였다(스 7:7).
그런 에스라가 길에서 적군을 막고 자기들을 도와줄 보병과 마병을 아닥사스다 왕에게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그 이유는 이전에 왕에게 신앙고백적인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스 8: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그는 충분히 능력이 있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사람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아하와 강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스스로 겸비하여 자기들과 어린 아이들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달라고 간절히 간구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얻게 되었다.
나는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삶에서, 심지어 목회 현장에서조차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다.
그런 사람을 찾으면 안도의 한숨을 쉬지만, 그렇지 못하면 좌불안석이었다.
나를 도우시는 이는 주님이 아니라 나에게 가까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17년 전, 교회를 개척하면서 나는 정말 순수하고 순전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꿈꾸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하였다.
그런데 목회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선배 목사님들에게 배운 것이 전부였다.
신학교에서 목회학을 배우기는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땅의 것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목회의 성공이란 이 땅에서 숫자적 부흥을 일으켜 큰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목회의 본질인 줄 알았다.
그래서 정말 교인 숫자를 늘리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이를 위하여 전도 축제를 하고, 교인들에게 전도하라고 압력을 넣었으며 이로 인하여 교인들은 피로감에 싸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내가 전하는 설교에는 사실 복음의 핵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교인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는 설교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정말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지도 않았다.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 그 천국을 가기 위하여 이 땅에서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면 앞뒤 보지 않고 가서 말씀을 펼쳐들고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
성도들은 그런 위로의 말씀에 사뭇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성도들이 영적으로 자라나지는 않았다.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교회다운 교회, 목회다운 목회, 목사다운 목사가 되고자 순전한 마음으로 시작하였지만, 점점 가면 갈수록 용두사미 목회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에 복음을 듣게 되었고, 그 복음은 나의 목회를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그 전까지 내가 해오던 목회는 단지 이 땅의 것만을 추구하는 목회였다.
그만큼 복음은 나의 목회의 본질과 가치 그리고 목적을 바꾸는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
마치 애벌레가 고치가 되었다가 정말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순간이었다.
복음을 알기 전까지 나의 목회는 용두사미였음을 고백한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로 시작하였으나 세상적 가치관으로 땅의 것만 구하는 목회로 내리닫고 있었다.
많은 경우 목회의 시작은 이처럼 순수하나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큰 교회 짓는 것이 목회의 성공으로 귀결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경우 그것이 잘못된 목회인 줄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목회의 꿈도 목적도 본질과 가치도 오직 영생이다.
물론 지금은 국내 목회를 접고 베트남에서 한인목회를 하고 있다.
나의 한인목회는 규모가 아주 작다.
옛날 가지고 있던 목회의 본질로 보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하면서 벌써 내동댕이쳤을 법하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목회의 목적이 결코 크기나 숫자에 있지 않기에 몇 명이든 상관없이 함께 연합하여 영생을 누리는 목회를 하고 있다.
나로부터 시작된 영생의 삶이 구석구석 파고 들어가서 모든 성도들이 복음으로 무장되어 영생의 삶을 날마다 살아가는 그것이 목회의 본질이다.
고난당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주님이 주신 것임을 알고 그 안에서 주님과 함께 장사되어 연합 안에 거하면서 성소를 지어나가는 것이다.
그 때가 바로 새 생명으로 일으키심을 받는 순간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처음에는 순수한 영혼으로 신앙과 목회를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변질되어 세상적 탐욕을 구하는 자가 되고 말았나이다.
내게 복음이 없었더라면 나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나이다.
아직도 한 번씩 넘어지지만, 언제든지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주신 복음 때문입니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은 나는 이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나이다.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하여 영생을 맛보고 누리며 사는 자입니다.
이 일이 나의 목회의 본질이오니 어떠한 경우도 세상의 것, 땅의 것을 구하는 자 되지 말게 하소서.
목양을 받는 성도들 역시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어 위로부터 온 영생의 삶을 살도록 그들을 붙드소서.
오늘도 주의 말씀으로 세상의 유혹을 넉넉히 이겨내오니 주님으로 하루를 마감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빛이 비쳐야 어둠이 드러나는 법.
잘못된 목회인지도 모르고 열심낸 자가 여기 있나이다.
베트남도 폭우네..
여기는 근래 보기드문 장대비가 계속 내려ㅠㅠ
생명의 폭포수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