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因緣
<제11편 살붙이들>
①조부제삿날-14
그때 사랑채 방문이 빠끔 열리더니만, 쪼그라진 당숙모가 얼굴을 내밀어보이고 있었다. 경산은 그녀를 바른생이네라 블렀다. 바른생이고개 넘어 노 씨네가 친정이라, 그렇게 부른다고 하였다.
천복은 지금도 변함없이 당숙내외가 안방에서 기거하는 줄로만 알았으나, 언제인가 사랑채로 옮긴 모양이었다.
“아이고, 서방님 옷이 엉망여유. 언능 벗어유.”
천복이 토방에 멀건이 서서 방금 동해당숙이 계훈의 등에 업히어서 사랑채로 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둘째형수가 느닷없이 천복에게 달리어들더니, 그의 웃옷을 억지 벗기려는 듯 하는 거였다.
때문에 그는 멋쩍어 주위를 둘러보자니, 세 육촌형수들과 큰형현훈과 막내인훈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현훈과 일훈은 슬며시 사랑채로 가고 있었다. 동해당숙이 발을 헛디디어 접질린 줄은 방금 천복의 말을 듣고 알았지만, 노인의 늙은 삭신이 걱정되는가 보았다.
“서방님두 아부지방으로 들가유. 아녀, 뒷방으로 들가유.”
둘째형수는 동해당숙 방으로 들어가라더니, 금세 자기내외 방인 뒷방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거였다. 그는 얼결에 웃옷을 벗어주어서 넌닝셔츠바람이 되자, 이제는 큰형수가 툇마루로 올라서 뒷방 문을 열어놓는 거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뒷방으로 들어갔는데, 큰형수가 따라들어오면서 말하였다.
“서방님, 금방 아침 자시얀디, 잠깐 벽이다 좀 기대고 앉었어유.”
그녀는 벌써 천복과 동해당숙이 한밤에 제사지내고, 발을 삐끗하여 자전거에 태워 여기까지 왔다면, 밤을 꼬박 새웠으리라 믿는 말일 터이고, 곧 아침을 먹어야하니까, 잠들지 말라는 경고일 거였다.
큰형수가 방을 나아가자, 천복은 그녀가 말하듯,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자니, 흙벽에다 기대었다간 넌닝셔츠마저 흙투성이 되겠기에 모로 쓰러지어 팔베개를 베고, 누워있었다.
방금 큰형수는 주산에서 시집왔다하여 주산댁이라하였다. 또 방금 그의 웃옷을 벗기다시피 하던 둘째형수는 여기서 더 산속으로 들어가는 산골짜기 오지랭이란 세 집 메가 친정인지라, 오지랭이댁이라 하였다. 그리고 막내형수는 바로 열두매기 가운데, 돌보라는 동네에서 시집왔기에 돌보댁이었다.
큰형수 주산댁과 둘째형수 오지랭이댁이 시집오던 모습은 보지 못하였으나, 돌보댁이 시집오던 모습은 그도 보았다.
동해당숙이 막내 장가갈 때에 돌보 신부 집으로 신행을 갔다가 술을 어찌나 많이 퍼들었는지, 그 자리에 곯아떨어지어서 이브자리를 다 흥건히 적시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는데, 천복은 이튿날 막내형수가 시집에 첫걸음으로 왔을 때, 연지곤지로 치장한 신부 모습을 보았던 거였다.
그때 보았던 막내형수는 깡마른 신랑과는 대조적으로 투덕투덕하게 생기어서 어린 마음에도 비록 막내의 신부지만, 마치 맏며느리 감이란 생각마저 들었던 거였다.
천복은 육촌형수들 생각을 하다가 팔베개를 벤 채 깜빡 잠이 들었다.
‘딸랑 딸랑’
상두꾼의 요령소리가 낭랑하나마 불길하게 들리어오더니, 섬뜩하게 상여소리가 들린 거였다.
‘어헤 어헤, 살아생전 아들딸들 육남매에 시집장가 보내놓고, 손자손녀 만당이라, 어헤어헤... 진인사에 대천명하고, 속절없이 떠나가네, 어헤 어헤... 잘도간다 잘도간다 정든집을 등지고서 부부애정 떨쳐두고, 북망산으로 떠나가네...’
“당숙어른! 당숙어른!”
천복은 소스라치게 꿈속을 떨치고 일어나 앉아있었다.
‘당숙어른, 제 허리띠를 꼭 잡으셔요, 그리고 몸을 제 등에 붙이셔요.’
그는 아까 은산에서 동해당숙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이렇게 당부하였었다. 그러자 그는 그 말을 잊지 아니하고, 안나마리 동구에 다다를 때까지 몸을 그의 등에 엿물처럼 붙이고 있었다.
‘그 따뜻한 체온!’
그 체온은 살붙이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온기이었다.
천복은 세상에 태어난 뒤 동혁의 체온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삼촌인 동수는 어렸을 적에 이따금 그를 두 손으로 엉너리치며, 번쩍 들어 올리고는 하였기에 그 열기를 느낀 적은 몇 번인가 있었다.
어제 군대에 입대한 명훈은 동혁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였지만, 천복에게는 느끼어보지 못한 동혁의 체온을 동해당숙에게서 비로소 느끼던 순간이었다.
동해당숙의 아버지인 우현 씨는 바로 두현 씨와 형제인지라 똑같은 열기를 부모로부터 태었을 거였다. 그의 체온이 두현 씨의 체온일 거였고, 또 동혁의 체온일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아무튼 동해당숙은 어떻게 된 것일까.
첫댓글 살붙이.. 피붙이...
형님등에 업혀 놀고 이모님의 등에 업혀 등교를 한 기억이 납니다.
그 등맛은 느껴본 사람만 알겠지요~
체온은 살붙이와 남을 알아보겠지요. 완연히 다르겠지요. 느낌이....
실지 가족들에게 업혀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그 느낌을 실감하지는
못하겠어도 그 느낌을 상상해보면 다를 거 같다는 생각이 나는군요.
아버지 어머니 등에 업혀본 적은 별로 없었고 할머니의 등에 업혔던
두 살적 기억이 날뿐이네요. 헌데 거꾸로 천복은 자전거를 탔더라도
당숙을 업고 느끼는 체온을 말하고 있군요. 그것만 보더라도 천복도
역시 나만큼이나 가족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나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