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고대사는 3세기 중후반에 야요이시대에서 고분시대로 바뀌는데 흔히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뉩니다. 전기고분시대와 중기고분시대는 396년 가을 8월 광개토왕의 잔국토벌을 경계로 나뉘는데, 전기와 중기는 같은 전방후원분인데도 유물은 하나도 연결되는 것이 없고, 완전히 불연속적인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5세기 중기고분시대와 6세기 후기고분시대가 모두 백제식 고분시대라서 둘을 하나로 통합하여 후기고분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중기와 후기의 구분은 488년 북위-백제 전쟁이 경계입니다.
제가 아는 전기와 중기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혹시 틀렸거나 추가하고자 하는 내용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전기고분시대(396년 8월 이전) 중기고분시대(396년 9월 이후)
1. 초대형 전방후원분은 없다. 초대형 전방후원분이 있다.
2. 일본열도 유물이 출토된다. 한반도 유물이 출토된다.
3. 농기구와 소형 무기가 출토된다. 대량의 갑옷과 무기류가 출토된다.
4. 원시적 갑옷 뿐이다. 첨단 판갑옷이 등장한다.
5. 가야처럼 무덤을 언덕에 쓴다. 백제처럼 무덤을 평지에 쓴다.
6. 유물에 가야문화의 흔적이 강하다. 유물에 백제문화의 흔적이 강하다.
7. 가야식 고분시대라고도 한다. 백제식 고분시대라고도 한다.
8. 말이 없다.(기병이 없다) 말이 있다.(강력한 기병이 있다)
9. 큰 전쟁의 흔적이 없다. 대규모 전쟁의 흔적이 있다.
10.금은제 위세품이 없다. 화려한 금은제 위세품이 있다.
11.외교를 못했다. 외교를 했다.(왜5왕)
(비미호는 야요이시대임) (22세 청령 이후 외교권 상실, 7세기에 회복)
12.국가의 흔적이 없다. 강력한 국가의 흔적이 있다.
13.문화수준이 한반도에 50년 이상 뒤졌다. 문화수준이 한반도와 대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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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고 4세기 전기고분시대에 왜국이 외교를 했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그 왜국은 일본이 아닙니다. 당시 삼한사회는 봄에 국혼을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4세기 이전 신라-왜의 국혼(봄에 화친한 기록): 8회 시도 중 5회 성공, 3회 실패.
1) 전기신라: 지마이사금, 아달라이사금, 첨해이사금 때 왜왕과 석우로(실패), 미추이사금 때 갈나고와 석우로부인(실패), 기림이사금 때 장흔, 흘해이사금 때 급리,
2) 후기신라: 흘해이사금 때 강세(실패)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왜국은 가야사회의 일부입니다. 구주의 야마토(비미호의 왜국) 역시 임나가야인들이 건국한 가야사회의 일부였습니다. 반면에 잔국토벌 다음 해인 397년에 백제본기에 출현하는 왜국은 광개토왕이 토벌한 잔국입니다. 이들은 백제의 일파로 모두 일본열도인데 가야의 일파인 신라본기의 왜국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존재입니다. 광개토왕의 고구려군이 내려오기 전 4세기 후반(연나라 모용황의 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한 이후) 낙동강유역에서 발굴되는 가야 갑옷은 신라를 공격하던 신라본기 왜병의 무구입니다.
첫댓글 반갑습니다. 과거와 미래님
전기 고분시대 (3세기 중반 ~ 4세기 말)
이 시기는 야마토 1기 정권이 성립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신라계가 이즈모에서 나라분지로 이동하여 형성된 하시하카 고분(3세기 중반)과 가야계로 대표되는 규슈지역의 숭신천황대의 고분군이 형성 됩니다.(3세기 후반)
이때는 초기 고분의 단계로,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주로 구릉이나 산등성이의 자연 지형을 이용해 고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수혈식 석실이 주를 이룹니다. 돌을 쌓아 방을 만들고 위에서 관을 내린 뒤 천장석을 덮는 방식입니다. 이는 한 번 폐쇄하면 다시 열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부장품는 거울, 구슬, 벽옥제 팔찌 등 주술적 의미를 지닌 물건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특히 삼각연신수경과 같은 청동거울은 피장자의 종교적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중기 고분시대는 야마토 정권 2기인 응신조 이후가 됩니다 (5세기 초 ~ 5세기 말)
이 시기에는 거대 고분이 정점에 달하며, 정치적 권력과 군사적 성격이 뚜렷해집니다.
자연 지형보다는 평지에 거대한 규모로 축조되기 시작합니다. 인덕천황릉(다이센릉 고분)처럼 거대한 해자를 두른 대형전방후원분이 등장합니다.
야마토 정권 1기중 규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분군으로 거론되는 곳은 지역이나 고분의 형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학술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규슈 오이타현의 아카쓰카 고분과 미야자키현의 이키메 고분군입니다.
아카쓰카 고분 (오이타현 우사시)
오이타현 우사시의 가와베 다카모리 고분군 안에 위치한 아카쓰카 고분은 규슈에서 가장 오래된 전방후원분으로 꼽힙니다.
축조 시기는 3세기 후반으로 추정됩니다.
특징: 전체 길이는 약 57.5m이며, 내부에서는 삼각연신수경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이는 야마토 1기 정권의 영향력이 초기부터 규슈 동부 지역까지 미쳤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야마토 왕조 및 계통 통합 비교
| ① | 선착 세력 | 신라계 | 나라의 일부 | 야마토 이전 | 나카스네히코 (長髓彦) | 무당적 (주술왕) | 청동기 | 3세기 중반 | 하시하카 고분군 |
전기전방후원분
| ② | 스진 왕조 (제1왕조) | 가야계 | 규슈 지역 | 야마토 1기 | 니니기 후손 | 농경 왕조 | 청동기 | 3세기 후반 | 전기전방후원분
| ③ | 오진 왕조 (제2왕조) | 웅진 백제계 | 기내 일대 | 가와치, 나라 | 오진 | 정복 왕조 | 철기, 기마 | 4세기 후반 | 중기전방후원분
| ④ | 게이타이 왕조 (제3왕조) | 웅진 백제계 | 기내 일대 | 아스카 | 게이타이 | 오진 5세손 | 철기, 기마 | 6세기 초 | 후기전방후원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림이사금 3년(300), 봄 정월, 왜국과 친선사절을 교환하였다.*
이때의 왜는 일본에 있는 야마토는 아닙니다.
300년 이전에 일본에서는 외교를 할만한 그럴듯한 정치체가 보이질 않습니다. 실질적인 야마토는 2기인 응신 이후에나 등장하므로 300 년의 왜를 일본으로 보시면 안될 거 같습니다.
비미호도 마찬가지입니다. 300년 이전에는 일본에서 외교를 할만한 정치체가 없었습니다.
비미호가 248년 죽었다고 하시하카 고분이 혹시 비미호 무덤일거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거 같은데요. 아닙니다.
삼국사기에서 왜라 하면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지는데
전기는 245년이전 진한왜
중기는 369년이전 변한왜
후기는 369년이후 마한왜로 생각하시면 될거 같습니다.
따라서 삼국사기에 173년 신라를 내방한 비미호나
위나라에 239년경 사신을 보낸 비미호는 진한왜 또는 변한왜의 수장이라 할수 있습니다.
일본에 한문이 전수된 시기는 4말5초에 해당됩니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왕인 박사의 도왜(渡海)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인 박사는 논어(論語) 10권과 천자문(千字文)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전해집니다.
이 시기는 일본의 응신천황 시기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대략 서기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해당합니다.
이때 한문이 전수 되었는데 과연 239년 일본에 있는 사신이 교서를 작성해서 위나라에 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