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173_300.
좋은 일에서는 반쪽이 완전한 것보다 어느 정도 더 나을 수 있을까 ━ 영속적 존립을 위해 정립되고 항상 많은 사람들의 봉사를 요구하는 모든 것에서는, 물론 주최자는 더 좋은 것(더 힘든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몇 가지 덜 좋은 것을 규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주최자는 이 규칙에 따를 수 있는 사람이 결코 부족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계산에 넣고 있다. 그리고 그는 힘의 중간 정도가 규칙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젊은이는 이 사실을 거의 통찰하지 못한다. 젊은이는 자신을 개혁자로 생각하고 자신이 얼마나 정당하며 다른 사람의 몽매함은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신기해할 것이다.
#p178_310.
부의 위험 ━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소유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유는 공적으로 위험한 것이 된다. 즉, 소유가 그에게 보장할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을 사용할 줄 모르는 소유자는 항상 소유하기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이 노력이 그의 즐거움이고, 권태와의 싸움에서의 그의 전략이다. 그래서 정신적인 사람에게 충분할 만큼의 적당한 소유에서, 마침내 진정한 부, 더구나 정신적인 비자립성과 빈곤의 찬란한 결과로서 부가 생겨난다.
이제 부는 그의 궁색한 혈통에서 기대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부는 이제 교양과 예술로 가면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제 가면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는 항상 교양을 부러워하고 가면 속에서 가면을 보지 못하는 가난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들의 질투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서서히 사회적 변혁을 준비한다. 왜냐하면 이른바 ‘문화의 향수’ 속에서 금도금된 저속함과 기만적인 부플리기 양상은 ‘중요한 것은 오직 돈뿐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돈도 약간은 중요하지만, 정신이 훨씬 더 중요하다.
#p179_315.
공허해지는 것 ━ 여러 사건에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점점 더 남는 것이 적어진다. 이 때문에 위대한 정치가들은 한때는 풍요롭고 부유한 인간이었겠지만, 매우 공허한 인간이 될 수도 있다.
#p180_317.
소유가 소유한다 ━ 소유는 단지 어느 한계까지만 인간을 더 독립적이고 더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다. 그 한계에서 한 단계만 나아가면, 소유는 주인이 되고 소유자는 노예가 된다. 소유자는 이러한 노예로서 자신의 시간과 생각을 소유에게 희생해야만 하며 그 후에도 어떤 교제에 얽매이게 되고, 어떤 장소에 고정되게 되며 어떤 국가에 동화되어버린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 모든 것이 자신의 가장 내적이고 본질적인 욕구와는 반대되는 것이리라.
#p194_342.
너무나 아름답고 인간적인 것 ━ “ 너 가련한 죽어야 할 자에게 자연은 너무나 아름답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몇 번 모든 인간적인 것과 그것의 충만, 힘, 섬세함, 사건의 연루 등을 깊이 있게 바라볼 때, 내게는 겸허하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 인간 역시 관찰하는 인간에게는 너무나 아름답다!”라고. 단지 도덕적인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그러하다.
#p196_348.
식인종의 나라에서 ━ 고독한 사람은 고독할 때 자신을 먹어치우고, 많은 사람들 속에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그를 먹어치운다. 이제 어느 한 쪽을 선택해보라.
#p199_357.
명인의 조건인 불성실 ━ 달리 어쩔 수가 없다. 모든 명인은 단 한 명의 제자만 두어야 하고, 제자는 그에게 불성실하게 대할 것이다. 왜나하면 그 역시 명인이 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p199_358.
결코 헛일이 아닌 ━ 네가 진리의 산을 오르는 것은 결코 헛일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오늘 더 높이 올라가거나, 아니면 내일 훨씬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기 위해 힘을 단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201_365.
치료수단으로서의 지나침 ━ 반대의 재능을 오랫동안 지니치게 존중하고 즐김으로써 자신의 재능을 다시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가 있다. 지나침을 치료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예술이 가진 섬세한 기술 중 하나이다.
#p201_366.
“자기 자신을 원하라” ━ 활동적이며 성공적인 본성을 가진 사람들은,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원하라, 그러면 너 자신이 될 것이다”라는 명령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운명은 그들에게 항상 선택을 허용해주었던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비활동적이며 관조적인 사람은 삶에 발을 내디뎠던 그 순간 자신들이 한번 선택했던 것이 어떠한 것인지 되새긴다.
#p202_367.
가능하면 편이 없이 사는 것 ━ 추종자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사람들은 추종자가 추종자이기를 그만두었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p202_368.
은폐하는 것 ━ 모기떼같이 너무 귀찮은 숭배자들을 피하려면 자신을 은폐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p202_369.
권태 ━ 가장 세련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의 권태가 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제공하는 가장 훌륭한 것도 무의미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잘 선별되고 또 훨씬 더 잘선별된 음식만 먹으며 조잡한 것에 대해서는 구토를 하는 습관이 있어서 굶어 죽을 위험에 처해 있다.
왜냐하면 가장 훌륭한 것은 조금밖에 없고 때로는 가까이 할 수 없거나 돌처럼 딱딱해져서, 좋은 이로도 더 이상 씹을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p203_370.
감탄속의 위험 ━ 어떤 특성이나 예술에 대한 감탄은, 우리들이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노력도 억제하게 될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
#p203_372.
탈퇴 ━ 우리에게서 탈퇴하는 사람은 아마 그것으로 우리 자신에게 모욕을 주지는 않겠지만, 분명 우리의 추종자들에게는 모욕을 줄 것이다.
#p203_373.
사후에 ━ 우리는 어떤 사람이 죽은 뒤 한참 만에 비로소 그가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아주 위대한 인물의 경우에는 흔히 수십 년 뒤에야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정직한 사람은 원래 죽음을 대할 때 많이 섭섭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장엄하게 조사를 읽는 자를 위선자라고 생각한다. 곤궁함이 비로소 한 개인의 필요함을 가르쳐주게 되며 나중에 짓는 한숨이 진정한 묘비명이 된다.
#p213_405.
인간을 위한 기도 ━ “우리의 덕으로 우리 죄를 사하게 하옵소서.” 인간을 위해서는 이렇게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p213_406.
창조자와 즐기는 자 ━ 즐기는 자는 누구나 나무에서 중요한 것은 열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씨’이다. 이것이 모든 창조자와 즐기는 자 사이의 차이이다.
#p213_407.
모든 위대한 자들의 명예 ━ 만약 천재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관찰자와 숭배자에게 더 이상 자신은 천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라는 자유롭고 승화된 감정을 부여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천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자신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위대한 인간들의 명예이다.
____________실스마리아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이때,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Clouds of Sils Maria, 2014> 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를 읽으면서 보았었다. '미류나무(곽재은)'가 추천하였다.
책에는 '질스마리아'로 표기되어 있지만, 영화 제목은 '실스마리아'이다.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어서 바로 볼 수 있었다.
실스마리아에 대한 환상을 남겨 놓으려고 검색을 하지 않다가 그때 검색을 했었다. 니체가 이곳에서 요양 및 휴양하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집필했었던 곳이라서, 실스마라아는 유명한 곳이다. 다경은 스위스와 독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는 스외스는 대체로 휴양지의 여유로움과 한적함이다. 실제로 스위스는 여유와 한가함과 은둔을 원하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알맞는 공간과 문화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점이지대이다. 그곳의 풍광과 기후가 점이지대를 만든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평범성과 일상성이다. 영화에서 그녀(마리아/줄리엣 비노쉬)는 그러한 펑범성을 보여준다.
낭독을 하기 전에 이런 대화들을 나누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과2>를 낭독으로 소리 내어 읽어 갔다. 그 전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었다. '영원회귀'에 대해서는 '영원회귀'라는 말 그 자체가 너무 무거워서 쉽사리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이 역시 양자역학으로 풀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______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촬영지로 선택된 이유와 제목이 이렇게 붙은 이유는 역시 같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우리와 과거, 우리 자신의 과거, 우리를 형성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루는 이 영화는, 저와 줄리엣 비노쉬가 공유하고 있는 긴 역사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라고 밝히고 있다.
이 영화는 정상에 선 여배우가 그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다시 대면하는, 그 자신의 흔적이 뭉개질지도 모르는 새로운 배역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어린 시절의 그녀가 맡았던 배역의 상대 역할이 그녀가 이번에 연기해야 할 배역이었다. 이미 지나온 자신의 흔적을 다시 연기할 젊은 배우를 상대로 그녀는 젊은 시절에 나이 든 배역을 맡았던 그 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 몹시 강한 불쾌감과 당혹감과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그녀가 그 역할로 이룬 성취도 사라질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매니저인 발렌틴은 그녀를 강하게 추동한다. 발렌틴은 대본 해석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자신이 해석한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연기 연습 상대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발렌틴은 그녀의 일을 존중하지 않는 그녀에게 강하게 항의한다.
그 후 발렌틴은 떠났다. 그녀는 새로운 매니저와 호흡을 맞춘다. 그러나 그녀는 예전 그녀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발렌틴과 있을 때 그녀는 정서불안정처럼 보였으며, 강한 집착과 의구심과 불신 그리고 자유분방함이 있었다. 그러니까 다혈질적인 성격을 내보였으나 그녀는 그때 인간적이었다. 그녀는 그때 발렌틴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발렌틴이 그녀에게 요구한 것은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발렌틴이 떠나고 나서야 그녀 자신에게로 복귀하였다. 젊음에 대한 갈증과 신경질 그리고 현재의 명성과 안정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녀는 드디어 생각하는 여자가 되었고, 안으로 절제하며 수렴하는 여자가 되었다. 세련된 샤프함이 그녀의 주변을 감돌았다. 커트 머리를 한 그녀는 더 우아해 보였다.
그녀는 그 배역을 맡기로 마음을 먹었는가 보다. 그녀의 눈빛은 떠난 발렌틴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혼자서 결연하게 해내어야 한다는 다짐인지 모를 모호한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줄리엣 비노쉬의 눈빛이다.
이 영화는 줄리엣 비노쉬가 그녀 자신에 대한 그리고 여배우가 늙어가는 그 시간에 대해 아사야스 감독과 함께 공유한 지점을 토대로 그 자신들의 본질로 회귀하고픈 열망을 담아 만든 영화이다. 영화 중간 중간에 언뜻언뜻 이러한 내용을 담은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다.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영화적 현실인지 줄리엣 비노쉬도 아사야스 감독도 혼돈이 될 만큼 이 영화는 줄리벳 비노쉬의 영화이기도 하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그들의 삶이 영화와 한데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_________
{ 그가 실스마리아를 떠올리게 된 것은 바로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의 일화와 그가 쓴 ‘영원 회귀’를 논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기나긴 병치레로 ‘실스마리아’에서 요양 중이던 니체는 불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중, 알프스 산맥의 장엄함과 이를 만들어낸 실스 호수를 보았던 순간 황홀함을 느꼈고, 며칠 후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황홀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 모든 순간은 필연적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영원 회귀’를 니체가 생각해낸 곳이 바로 ‘인간의 모든 것보다 훨씬 높은 곳’인 ‘실스마리아’였던 것이다.
여기에 그가 보았던 산악 영화 감독 아르놀트 팡크의 <말로야의 구름 현상>이라는 짧은 영상 또한 큰 이유로 작용했다. <말로야의 구름 현상>은 스위스 동쪽 끝 엥가딘 언덕부터 ‘실스마리아’ 위를 지나 실바플라나, 생 모리츠까지 이어지는 구름, 높은 산맥과 협곡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뱀의 형상과 비슷해 이름 지어진 ‘말로야 스네이크’ 현상을 담고 있다.
1924년 작품인 이 낡고 긁힌 필름 속에 담긴 짧은 영상은 거의 한 세기의 시간 차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가 대치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데, 이를 본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세월과 나이에 대한 성찰뿐 아니라 인생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 가장 잘 맞는, 이상적인 배경이라 생각한 것이다.}/[인용 : (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2117 <프러덕션 노트Production Note>]
_______
*사진은 모셔온 사진
#플래시몹낭독회_낭독놀이
#니체_인간적인너무나인간적인2_책세상
#클라우즈_오브_실스마리아_Clouds_of_SilsMaria_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