桓檀古記
수隨, 당唐의
뿌리가 된 鮮卑族
북흉노가
1세기
말 멀리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떠나 버리자 흉노의 본거지이던 몽골 고원은 일시적으로 공백지대가 되었다.
그래서
흉노의 지배 받았던 여러 유목집단이 초원을 차지하며 각축전을 벌였다.
결국
선비족이 패권을 잡아 北方지역을
통일했다.
※북방
민족사 전문가인 朱學元(주쉐이안)에
의하면 원래 선비는 ‘사비’
혹은
‘시비’로
발음되었을 것으로 추정했으며,
시베리아의
‘시베르’도
선비와 有關하다고
보았다.
시베리아
=
‘선비리아’라는
것이다.(주쉐위안,『진시황은
몽골어를 말하는 여진족이었다』p.246)
선비에
관한 기록은 춘추시대의 기록인『國語』에
처음 나타난다.
(“周나라
초기에 남쪽 오랑캐인 楚나라가
또 다른 오랑캐인 선비와 함께 회맹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後漢書』에는
선비와 오환을 모두 東胡(藩조선)의
후예라고 했다.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오환(烏丸)은
동호(東胡
:
동쪽
오랑캐)이다.
한나라(漢)
초기,
흉노(匈奴)의
모돈(冒頓)이
그 나라(오환의
옛 나라)를
멸하자,
여류(망한
나라의 무리)는
오환산(烏丸山)에
터를 잡았고,
그
이름을 오환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상을
종합하면,
선비는
고조선에 속한 족속 중 하나.
선비족의
발상지는『魏書』에서
大鮮卑山으로
꼽았는데,
이에서
선비족이라는 族名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大興安嶺
일대가
대선비산이라는 사실은 1980년에
中國
학자가
대흥안령 북단 알선동(嘎仙洞)
동굴
벽에 北魏시대의
석각 축문을 발견함으로써 입증되었다.
선비족의
기원은 고조선에 속한 동북지방이었던 것이다.
선비족은
2세기
중반에 檀石槐라는
영웅 밑에서 여러 부족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다.
선비제국은
흉노가 약화된 틈을 타서 北으로
Baikal
湖,
西로
신장의 일리江,
東으로
만주 일대에 걸친 옛 흉노지역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단석괴가 사망하자 선비제국은 순식간에 여러 집단으로 분할되었다.
이
무렵 漢나라가
망하고 나서 조조,
동탁,
원소,
유비
등 군웅이 패권을 놓고 다투던 삼국시대와 그 뒤를 이은 魏晋
제국(220-317)이
붕괴,
中原이
혼란에 빠지자 선비족은 그 틈을 타 대거 중국으로 밀고 들어갔다.
拓跋(탁발),
慕容,
宇文,
殷,
乞伏
등
선비족의 여러 部가
이 때 거의 남하했다.
중국사에서
말하는 소위 5胡16國시대가
시작된 것.
5호16국
시대를 연 것은 흉노의 왕자인 劉淵이다.
당시
晋나라의
왕족인 司馬씨
사이의 싸움(왕의
亂)을
틈타서 유연은 大單于(대선우)로
추대되어 304년에
漢國을
세웠다.
후에
탁발부족의 代國(315-376)이
다른 국가들을 모두 정복,
북중국을
통일하였는데,
이
나라가 바로 北魏이다.(386-534).
北魏는
東魏와
西魏로
분열,
그
이름은 北齊와
北周로
바뀐다.
北周의
귀족 양견이 패권을 잡고 나라 이름을 隨(수)라
했다.
수나라
뿌리는 北周이고,
북주의
뿌리는 선비족이므로 中國을
통일한 대제국 隨나라도
결국 북방 유목민족이 세운 나라이다.
隨를
이어 唐나라를
개국한 李淵도
혈통이 선비족에 가깝다.
이연의
조부 李虎는
西魏를
주도한 20가문
중 하나로 선비족 출신이다.
이연은
北周와
隨나라에서
대장군을 지냈다.
이연의
왕비 두태후도 선비족 출신.
隨,
唐의
기원은 선비족.
5호16국
시대에 북방 유목민족들은 중국 본토로만 진출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로도
적지 않은 수가 내려 왔다.
북방
유목민 일부는 신라에 정착했다.
4-5세기
경 조성된 신라의 대형 積石木棺墳
무덤에서
중앙아시아의 文化的
기류를
느끼게 하는 유목들이 대거 발굴되었다.
훈족(흉노)의
출현으로 유라시아 대륙 西部에서
민족 대이동이 일어난 동시대에 대륙 東部에서
또 다른 북방 민족에 의한 민족 대이동 발생했다.
결국
흉노와
선비족이 일으킨 이동의 파도는 유럽에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가져왔으며,
중국
북방민족이 중원을 장악한 5호16국
시대를 낳았다.
또
한반도 남부와 일본에 기마민족의 정권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고조선의
文化적
자양분을 섭취하며 동북아 북방서 자란 유목민의 대이동이 유라시아 대륙 역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西아시아
발칸반도까지 진출한 돌궐족突厥族)
※돌궐은
흉노,
선비,
유연의
뒤를 이어 변방의 대초원 지역을 통치한 중국의 고대민족.
역사적으로는
그들을 ‘흉노의
별종’이나
‘평량잡호’의
계열로 분류하였으나,
근대에는
그것을 적종(狄種)으로
분류하는 학자들도 있다.
사실상
그것은 고대에 흉노 이북 지역에 살던 부족의 한 갈래로 후대의 고차,
철륵과
동족이다.
그들의
언어는 알타이어계 돌궐어족에 속한다.
6세기
초엽에
금산(金山,
지금의
알타이산)
일대에서
유목생활을 하였는데,
돌궐은
금산의 모양이 투구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돌궐어로
투구를 突厥이라
한다)
주대에
돌궐은 유연족에 종속되어 노역을 하면서 제련업에 능하였기 때문에 ‘유연의
제철공’이라는
칭호가 있었다.)
『檀君世紀』에는
흉노의 시조에 대한 언급뿐만 아니라,
돌궐계인
康居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사기』에서
흉노의 서쪽에 자리 잡은 유목민으로 소개되는 康居가
반란을 일으키자 3세
嘉勒檀君이
支伯特에서
토벌했다는 것이다.
지백특은
Tibet을
지칭.
18세
冬奄단군
때 지백특 사람이 공물을 바치러 왔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기록을 보면 고조선의 활동 영역이 Tibet
인근까지
뻗쳐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양
고대사와 서양 중세사에 큰 영향 미친 민족인 Turk族이
바로 突厥族이다.
Turk족은
6세기
중반에 (서쪽으로)
카스피海에서
(동쪽으로)
몽골과
만주에 이르는 광대한 유라시아 초원에 강력한 제국을 세웠다.
돌궐족은
원래 몽골족 국가인 柔然에
예속되어 있던 집단으로 알타이 지역에서 주로 治金
일에
종사하였다.
철광석
제련기술 보유+금속가공에
뛰어난 솜씨.
553년에
유연을 멸하고 돌궐국가를 세웠다.
흉노
붕괴 500년
만에 초원의 유목민을 다시 통합하고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세운 것.
돌궐제국은
건국자 土門이
죽자 아들 형제에 의해 二分되었다.
長子(무한)⟶
東돌궐(583-630)⟶
제2돌궐제국(682-744)⟶
Uyghur
제국(745-840)⟶
셀주크
투르크(1037-1307)⟶
오스만
투르크(1307-1920)⟶
아우(아스테미,
칭호=야브구)
西돌궐
(583-657)
이렇게
한 때 유럽,
서아시아를
지배했던 흉노,
선비,
돌궐
등의 북방 민족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神敎
三神文化의
天神思想이었다.
흉노의
경우 單于(선우.
흉노의
수장)는
天神의
子로서
그 뜻을 지상에 펴는 제사장이며 대리자였다.
선우는
漢
皇帝에게
보낸 文書에서
늘 자신을 ‘하늘이
세운 흉노 대선우’
혹은
‘천지가
낳고 日月이
세운 흉노 대선우’라
칭하였다.
흉노인은
또 天神像을
만들어 받들었는데,
금으로
된 큰 신상을 모시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한서』「흉노전」의
기록이 그것을 말해 준다.
또
흉노 사회에서는 주술과 의술을 겸한 무당이 있었다.
선비족,
돌궐족도
이런 흉노사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