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이야기를 쓰겠노라고 말하고 나서 돌아서며 후회했다. 여자인 내가 여자를 이해하기도 힘드는데 굳이 남자까지 이해하며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딱 두 종류의 인간이 여자와 남자일 터인데 근본적으로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이해하지 않고서야 어찌 살아가겠나 싶기도 했다.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여자란 말이 있다. 그런데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늙으나 젊으나 남자는 그저 남자이다. 그같이 여자와 남자가 생물학적이고 원초적으로 다른 태생임을 아는 것과 인정하는건 사실 별개의 문제이다.
‘도대체 남자들은 언제 철이 드나?’
‘남자들은 왜 생각이 단순할까?’
‘남자는 여자의 말을 왜 못 알아들을까?’
여자들이 갖는 남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이다. 여자들은 멀쩡하던 남자가 결혼 이후 아이가 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바지에 날 새우고 다니던 그가 결혼과 동시에 현관 입구부터 양말, 바지 등등을 벗은 채로 허물벗고 사라지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여자들도 대부분이다.
두 눈을 덮었던 사랑이란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삼백예순다섯 날 펼쳐지는 버라이어티한 남자와의 동거는 분명 신비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그거야 남자들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이슬만 먹고 살 것 같던 그녀는 야식없인 못사는 야식녀였을 수도 있다. 임신으로 불어나던 배가 출산이후도 꺼질 줄 몰라 허리 잘룩한 원피스만 입던 그녀의 실루엣을 기억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청초하던 그녀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결혼을 물리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늙으나 젊으나 남자는 그저 남자이다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서로 다른 종족들이어서 평생을 살아도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모르고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남자이야기를 처음 시작할 때 지인들에게 물었다.
“남자에 대해 궁긍한 거 있음 말해봐. 남편에 대한 궁금증도 좋아. 내가 대신 물어봐 줄게.”
“그래요? 도대체 남자들은 일 끝나고 뭐하는지. 일 안할때 뭐하는지 궁금해요. 진짜.”
그녀는 정말 그것이 궁금해 보였다. 살부비고 사는 부부이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가 밖을 나서면 무엇을 하는 지가 궁금한 거다.
“가장으로 식구들도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하잖아요. 그게 하기 싫거나 도망치고 싶은 적은 없을까 그런 생각 해봤어요.”
“도대체 남자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걸까요? 아니면 아직도 꿈이란게 있을까요?”
이 질문들을 실제로 남자들에게 물었다. 모든 남자들의 일반성을 측정하기에 인터뷰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래서 중년 남자들, 특히 접근성이 좋은 사십대 남자들을 선택했다. 가장 왕성한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 변화하는 남녀관계의 전환점에 서있는 나이이기도 하단 판단때문이었다.
남자들과의 인터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그들은 바빴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나 개인 사업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의외로 업무 후 술자리도 많지 않았다. 일이 없다면 들어가서 육아를 도와주는 경우들이 많았다. 맞벌이를 하는 경우는 그것을 더욱 당연히 여겼다. 외벌이의 경우도 예외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유롭게 인터뷰 시간을 잡는 것이 늘 어려웠다.
얘기할 대상이 없다기 보다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남자들조차도 남자들은 단순하다고 말한다. 밥 제때 주고 적당히 엉덩이 두드려 주고 잔소리 안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 말에 잘 따른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들은 단순하지 않았다. 자신을 드러내 놓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마음 속을 털어놓을 대상을 원하기도 했다.
실제로 남자들도 들어주는 사람만 있다면 여자 못지않은 수다스러움을 갖고 있었다. 인터뷰한 남자들의 대부분은 아내에게는 힘들거나 복잡한 마음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장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남자로서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평소 생각 잘 안해봤는데 얘기하니까 좋네요.”
“이런 이야기를 남자들은 절대 친구와 하지 않아요.”
“이야기 하고 나니까 속 시원하네요”
하는 반응들은 인터뷰가 끝날 즈음이면 어김없이 나왔다. 어찌 생각해 보면 얘기할 대상이 없다기보다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남자들의 꿈도 궁금해서 인터뷰한 모든 남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었다. 꿈이 무엇인지, 아직도 꿈을 꾸고 사는지. 남자들의 꿈은 대부분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해주는 것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두에게 그런 답변은 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남자들의 진짜 꿈이 궁금했다.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꿈을 말해달라고 했다. 남자들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반응도 많았다.
우리가 서로를 잘 알 수 없었던 건
단순히 남자와 여자여서가 아니다
여자들도 그렇겠지만 남자들은 결혼은 자기가 책임져야 할 무리를 갖게 되는 과정으로 여겼다. 남자들에게 결혼은 '책임'의 구체적인 형태였다.
우문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하면서 자신이 가장이란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결혼하면 남자에게 가장이라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아닌데도 남자는 자신이 가장이란 생각을 당연히 하고 있었다.
상당히 많은 남자들과의 인터뷰가 끝이 났다. 그들이 모두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는지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당한 연식의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전혀 몰랐던, 혹은 이해하기 힘들었던 남자들을 조금 알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여자인 내가 여자를 이해하는 것도 힘든데 남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줍잖은 위선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가 서로를 잘 알 수 없었던 건 남자와 여자여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꾸짖고 타박하거나 가르치려 하는 대화말고 서로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대화를 해보기를 바란다. 들어주는 힘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이숙정 객원기자 / 민중의소리
첫댓글 이래 저래 살다보니 후딱 70대가 되었네요 후후껄껄
칠십년 살아보니 남자나 여자나 별거없고 특별한것 없었요
각자 생각대로 마음대로 좋은대로 팔자대로 운명대로 한세상 살다 가는 검니다
앞으로 미래 시대는 남자나 여자나 홀로 혼자 사는 사람들 천지 라고 하네요
무엇이든 어떤것이든 신경 쓰지 않고 구속 받지 않고 포로가 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혼자 산다고 하네요
남자나 여자나 특별 한거 없습니다 각자 자유 도생 입니다 하하하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