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와 칼 / 최장순
먹는 일은 거룩하다. 소화하고 배설하는 신진대사에 그치지 않는, 나누고 기뻐하는 사건이다. 두레상의 소박한 한 끼든, 바베트가 정성으로 차린 1만 프랑의 만찬이든.* 그러나 그 거룩한 양식을 위해 무자비한 살육이 정당화된다.
타자의 희생이 전제될 때,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행위는 희생제의犧牲祭儀다. 생선과 채소, 동물의 죽음으로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음식 재료를 썰고 자르고 다지는 칼과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도마는 필수적인 조리도구다. 힘의 논리로만 본다면, 이 둘은 물리적 상하관계 또는 갑을 관계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둘은 협업 관계라 할 수 있다.
무수한 자국을 지닌 도마. 서슬 퍼런 흔적은 칼이 만든 상처다. 도마 위에서 춤춘 칼의 무예는 생각하기에 따라 귀를 부드럽게 간질이는 음악이 되기도 한다. 잠결이지만 선명하게 들리는 또닥거림에 밥솥이 내뿜는 콧김 소리와 물 트는 소리, 가스 불을 켜거나 냉장고를 여닫는 소리가 장단을 맞추는 주방의 리듬이다. 일과가 시작되었다는 알림이자 생동감이다.
도마가 노트라면 칼은 펜이다. 탕탕탕, 기록한 문장들. 요리는 한 권의 책이다. 창작의 바탕에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는 작가의 마음에 달렸다. 형상은 사라졌어도 본질은 ‘먹는다는’ 행위에 동화된 이야기가 있다. 장르마다 먹음직스럽거나, 맛있거나, 영양가가 높거나, 개성이 뚜렷한 책들. 그러나 갖가지 레시피 속 내력에 언제 한번 귀 기울인 적이 있던가. 선뜻 자신을 내어놓은 음식 재료들을 우리는 동의 없이 요리한다. 한 끼를 성찬으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
신명 난 공연 난타에서, 4명의 요리사가 결혼피로연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선보인다. ‘마구 두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소리와 리듬이 어우러져 사물놀이의 장단이다가 비트 장단이 되기도 한다. 냄비, 프라이팬, 접시 같은 각종 주방기구가 동원되지만, 도마와 칼이 주 악기로 등장한다. 난타는 도마와 칼이 만들어낸 주방 음악이다. 재료들은 난장亂場에 널브러지고, 축제로 승화된 죽음은 요란한 공연의 여운으로 남는다.
칼의 속성은 공격이다. 그러나 요리사의 손에 들렸을 때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음식을 만드는 결정적 도구. 도마의 몸에 수많은 자국을 남기면서 칼은 제 뜻대로 자르고 깎고 썬다. 칼날은 물론 묵직한 칼등으로 후려치기도 하고 무게 실린 칼자루로 다지기도 한다. 칼은 도마가 있기에 마음 놓고 기량을 발휘한다. 도마는 무수한 칼자국을 받아들여야 할 운명. 쓰면 쓸수록 제 몸이 패이고, 반면 칼은 무디어지는 서로의 공멸이다. 요리를 위한 살신성인의 맹약이다.
협력, 협동, 협업이란 말은 딱딱함 속 아름다움이다. 요리는 도마의 포용력과 칼의 결단력이 만들어내는 협업으로 탄생한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고 한다. 손을 잡은 자들이 미처 손잡지 못한 자들을 물리치고 사는 세상이라 한다. 경쟁은 승패를 나누지만, 협업은 시너지를 낸다. 경쟁은 혼자 살아남는 법이고, 협업은 함께 살아가는 길이다. 경쟁은 싸움을 부르지만, 협업은 배려하고 양보한다. 함께 웃는 협업은 난타 공연 같은 신바람이다.
협업이 깨질 때가 있다. 움직임이 없는 도마보다 이동이 자유로운 칼 쪽이 원인일 때가 많다. 도마를 떠난 칼은 때로 불법적이다. 요리사의 손에서 벗어난 칼은 협업의 가치를 지닌 존재가 아니다. 인연이 악연으로 변하는 순간, 협업 관계는 힘으로 부리고 그 힘에 복종해야 하는 갑을 관계로 변질된다. 즐거울 수 없는 칼의 노래다. 살상의 무기로 돌변하여 주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칼과 권력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살아있는 권력엔 무딘 칼이지만, 죽은 권력엔 예리한 칼이다. 권력자의 손에 놀아나는 칼, 그 하수가 휘두르는 칼은 원한과 미움을 거두지 않으면 망하는 이치다. 숨긴 칼이 무섭다. 감추어 두지 말고 항상 보이는 곳에 안치安置 시켜야 하는 이유다. 임무가 끝나면 칼집에 얌전히 꽂아둘 일이다.
도마와 칼은 적과의 동침이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연분이다. 예리함을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주거나 무마시키거나, 상황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관계의 밀착은 둘의 적절한 각도로 이루어진다. 도마와 칼로 만난 부부관계다. 누가 도마이고 칼인지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온통 짜증 난 소리와 깨어지는 소리가 가득해도 기분 상한 것은 너끈히 자르고 다지면 될 일. 상쾌한 아침을 여는 것은 둘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 서로를 받아들이는 소리는 경쾌할 수밖에 없다. *
* 『바베트의 만찬』(이자크 디네센의 소설) – 자신에게 생긴 1만 프랑을 모두 사용해, 자신을 받아준 루터공동체 설립자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만찬을 공동체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 최재천.[출처] 도마와 칼 / 최장순|작성자 erigeron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