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마지막 기회' 30년 침체 벗어나 반도체 강국 부활 꿈꾼다 / 3/19(화) / 한겨레 신문
반도체 지경학, 칩을 둘러싼 게임・오그・슬론즈(中) '산업의 쌀' 경제안보 관점에서 접근, 공급망 재편 격변기를 추격의 기회로
"첨단 로직 반도체가 일본에서 생산되는 것은 우리나라(일본) 반도체 산업, 유저 산업에 있어서 큰 한걸음이다. 정부가 계속 반도체 양산 등 지원책을 속도감 있게 실행하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24일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구마모토 1공장 개소식에서 화상 메시지를 통해 반도체 산업 지원을 강조했다. 이 공장에서는 올해 10~12월부터 카메라와 자동차 등에 필요한 12~28나노(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의 비메모리 반도체가 생산된다. 최첨단 반도체는 아니지만 현재 일본에서 양산되고 있는 반도체 중 40나노가 가장 성능이 좋다는 점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변화다.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TSMC 구마모토 제2공장에서는 첨단 반도체인 6나노가 생산될 예정이다.
1980~90년대 초까지 세계 반도체 제조시장의 절대 왕자였던 일본은 30년간의 침체에서 벗어나 거대한 부활을 꿈꾸고 있으며 양배추밭 앞의 TSMC 구마모토 1공장은 이 같은 일본의 변화 움직임을 상징하는 곳이다.
일본 정부는 2021년 6월 '반도체·디지털 산업 전략'을 발표한 뒤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번 전략은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 강화뿐만 아니라 '경제 안보'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를 일본에서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과거와 달리 일본 기업이 아니더라도 일본에 생산거점을 만들면 과감한 지원을 한다.
일본 정부는 TSMC의 구마모토 1공장 사업비 1조1천억엔 가운데 약 40%인 4760억엔을 보조한 데 이어 올해 말부터 공사가 시작되는 2공장에도 약 7300억엔을 투입할 예정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히가시히로시마 공장에도 최대 1385억엔의 보조금 지급을 결정했다.
일본은 미중 갈등으로 시작된 공급망 재편 등 반도체 분야의 격변기를 이용해 반도체 제조 강국으로의 복귀도 노리고 있다. 도요타와 NTT 등 일본을 대표하는 주요 대기업 8개사가 뭉쳐 2022년 11월 반도체 제조업체 라피다스(라틴어로 빠르다는 뜻)를 설립했다. 지난해 9월 홋카이도 지토세에서 공장 건설을 시작해 2025년 꿈의 반도체인 2나노 파일럿(시험) 생산에 이어 2027년경 본격적인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라피다스에 3300억엔의 보조금 지급을 결정했고 여기에 5900억엔을 더해 총 9200억엔을 투입할 예정이다. 라피다스에 참여한 대기업의 출자금이 73억엔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정부가 주도하는 국책기업인 셈이다.
일본도 국제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단기간에 다시 대국 대열에 합류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선택한 것은 동맹·우방국과의 협력이다. 2나노 반도체 생산을 위해 라피다스는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인 IBM과 공동연구뿐 아니라 기술자 육성과 판매처 개척 등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지난달에는 캐나다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트렌트와 2나노 공정 기반의 AI용 반도체 공동 개발과 2028년 양산을 목표로 계약을 맺었다. 그 외, 벨기에의 종합반도체연구소의 IMEC, 프랑스의 전자정보기술연구소(CEA-Leti),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기업의 ASML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일본의 추격은 비메모리 반도체에만 그치지 않는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일본의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와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이 미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양사가 통합되면 이 분야 시장점유율 2위인 SK하이닉스를 제치고 1위인 삼성전자와 맞먹는 규모가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반도체 국내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현재 5%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2031년에는 44%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이라며 이번을 일본 반도체 부흥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