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한 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가끔 웃으시는 아버지
나팔꽃으로 피어난 아버지
봄이 오자 친구가 내게 나팔꽃 씨를 주었다. 새 양복을 사면 윗도리 호주머니 속에 여분 단추가 든 작은 비닐봉지가 있는데 그런 비닐봉지에 나팔꽃 씨를 가득 넣어 내게 주었다. 집집마다 아파트 베란다에 빈 화분이 많은데 올봄에는 그 화분에다 나팔꽃을 활짝 피워보라면서.
나는 깜박 잊고 나팔꽃 씨를 호주머니 속에 넣은 채 그대로 며칠 지니고 다녔다. 그러다가 아버지랑 점심 식사를 하면서 휴지를 꺼내려고 양복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호주머니 속에는 휴지 말고도 나팔꽃 씨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나팔꽃 씨을 꺼내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식사를 다 하고 나서 그 나팔꽃 씨를 잡수시려는 게 아닌가, 연로하신 아버지는 혈전용해제 등 이런저런 약을 많이 복용하고 계셨는데 그 중에는 환약도 있었다. 나팔꽃 씨가 작고 둥근 삼각형이어서 당신이 잡수시는 환약인 줄 착각하신 거였다. 아버지는 노인성에 의해 이미 한쪽 눈이 실명된 시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러실 수 있었다.
"아버지, 그거 나팔꽃 씹니다.잡수시지 마세요."
나는 얼른 나팔꽃 씨를 못 드시게 말렸다.
"와? 약 아이가?"
아버지가 비닐봉지를 열고 나팔꽃 씨를 잡수시려고 하다가 한참 들여다보셨다.
"하하, 이거 나팔꽃 씨구나,내가 나팔꽁 씨를 다 먹을 뻔했네!"
아버지가 소리 내어 크게 웃으셨다. 참으로 오랫만에 보는 아버지의 유쾌한 웃음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 노트북 전원을 켜고 시를 썼다. 평소 시를 단숨에 쓰지 못하고 수십 번씩 고쳐 쓰는데 '나팔꽃' 이 시만은 단숨에 썼다. 단 한 군데도 고친 데가 없다.
현실 속에서는 아버지가 나팔꽃 씨를 드시지 않았지만, 시는 그것을 드셨다고 해야 비로소 시작된다. 그리고 나팔꽃 씨를 든 아버지가 다음날 아침에 토사곽란을 만나 설사를 하는 고통을 당했다고 하면 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의 세계에서는 나팔꽃 씨를 먹었으니 다음 날 당연히 나팔꽃으로 피어나야 한다. 그리고 나팔꽃으로 피어난 아버지가 울고 슬퍼하거나 통탄하시는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 아침마다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흐느끼시는 아버지' 혹은 '자꾸 통곡하시는 아버지'라고 쓰면 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삶에 대한 원망과 부정의 마음만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라고 썼다. 이 '웃으시는'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감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죽음에 대한 순응과 긍정 등이 내포돼 있다.
그러나 나팔꽃은 내가 쓴 시가 아니다, 미수[米壽]의 아버지가 내 시속으로 걸어 들어와 쓴 시다. 아버지는 밤마다 기도할 때 죽어 나팔꽃으로 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도 모른다. 누가 나무에게 하느님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러자 나무가 꽃을 피웠다고 한다.
나도 아버지에게 인생을 보여달라고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팔꽃으로 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가 아침마다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길 바라면서 〈나팔꽃〉 시를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돋보기를 끼고 한번 읽으시고는 쓰다 달다 아무 말이 없으셨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