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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0년 9월 7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대한민국과 이란의 국가대표 친선전이 개최되었다. 서로 아시아의 최강자라고 주장하는 팀들의 친선전이었지만 아직은 서로 전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친선전이었기에 내년의 아시안컵에 대한 참고 정도의 무게감을 가진 경기였다.
2. 포메이션
3. 경기 양상
한국은 전반 시작하자 마자 이청용의 볼 커트에 이은 박주영의 돌파, 그리고 이청용에게 이어진 패스에서 이어진 슈팅이 골키퍼 선방으로 골문을 벗어났다. 이후 경기는 다소 팽팽하게 이어졌다. 한국은 나이지리아전과는 약간 다르게 빠르게 전방으로 패스를 해주는 속공을 했다. 반면 이란은 한국의 좌측면을 지속적으로 공략했다.
한국은 시간이 갈 수록 공수 간격이 다소 벌어지고 중앙에서의 미드필더 숫자 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했지만 곧 공수 밸런스를 회복했다. 이란도 공수 간격을 일정하게 가져가며 전방부터 압박을 했다. 전반 30분이 지날 때 까지 상호간 미드필드에서의 공방전이 이어지며 이렇다 할 찬스를 얻지 못했다. 특히, 양 팀 모두 미드필드에서의 간격 조절과 압박에 주력함으로써 공이 페널티 에어리어에 거의 접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전반 31분 한국은 측면의 최효진 선수에게 이어진 쓰루패스가 슈팅으로 이어졌지만 아쉽게 수비 몸 맞고 아웃되었다.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은 공세를 강화했지만 세트 피스 공격 상황에서 이영표의 백패스가 실수로 이어지며 이란의 쇼자에이가 골을 기록했다. 이후 경기는 계속해서 공방이 이어졌고, 43분에는 박지성 선수의 슈팅이 있었지만 결국 전반은 0-1로 종료되었다.
한국은 후반들어 기성용과 윤빛가람을 빼고 김정우와 김두현을 투입했다. 그러나 투입된 김정우 선수가 시작하자마자 볼 터치에 실수를 하며 위기를 맞았고 정성룡 선수의 선방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 경기는 전반보다는 다소 슈팅이 나오기는 했지만 양 팀의 강한 압박 속에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결국 조광래 감독은 후반 21분경 후반전에 교체 투입한 김정우 선수를 빼고 조영철 선수를 투입했다. 이에 따라 박지성 선수가 김두현 선수와 함께 중앙에 서고 조용철 선수가 측면을 담당했다. 한국은 박주영 선수의 슈팅과 프리킥 등 찬스가 있었고, 후반 33분에는 코너킥에 이은 결정적 찬스를 이어갔지만 마찬가지로 골로 연결되지 않았다. 한국은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찬스를 만들었지만 결국 경기는 0-1, 이란의 승리로 종료되었다.
4. 준비가 부족했던 한국을 상대한 준비된 이란
이미 중국에서 경기를 한 차례 하고 온 이란은 팀 전체적으로도 잘 정비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광래호의 3-4-3 전술에 대해 완전하게 파악하고 준비한 듯, 3-4-3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우선 크리스마스 트리 전술이라고 불리우는 4-3-2-1 형태의 전술을 준비했다. 이 전술은 포백이면서도 중앙 미드필더로 다섯명을 배치하여 중원에서의 숫적 우위를 추구하는 전술이다. 반면 3-4-3 전술은 수비시 5-4-1 형태를 가져가게 되어 있어 아무래도 중원에서 숫자가 한 명 모자랄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공간을 메꾸어주면 이 약점이 극복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중원 공략을 위한 전술은 아니다.
문제는 조광래호의 3-4-3의 공격 전술이 중앙 미드필드를 거쳐가는 형태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고, 중앙에서의 공격 루트가 막히게 되면 경기가 전체적으로 답답해진다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쓰리톱 중의 두 측면 공격진이 미드필드 싸움에 가담하게 되면 반대로 원톱이 고립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기에서도 박주영 선수는 경기 중에 자주 고립되는 모습을 노출했다.
이란은 이러한 조광래호의 문제점을 미리 숙지하고 철저하게 물고 늘어졌다. 중앙에서 한국 선수가 볼을 잡으면 이미 공간을 선점한 이란 선수 두세명이 에워쌌고, 결국 무의미한 백패스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반면 한국은 전술적으로 전혀 녹아있지 못하고 다소 겉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것이 몇 차례 이란의 수비가 흔들렸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경기 내내 중원 싸움만이 반복되었던 원인이다.
5. 무의미한 패스는 위협적이지 않은 패스이다
경기 전 조광래 감독은 무의미한 패스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의미한 패스란 과연 무엇일까? 수비수가 공격수에게 단번에 넘어가는 패스를 하면 무조건 무의미한 것일까? 아니면 상대 수비수에 막혀 백패스를 하면 무의미한 것일까?
필자의 생각에 축구에서 무의미한 패스란 그 패스로 인해 어떠한 결과도 얻을 수 없는, 위협적이지 않은 패스이다. 즉, 패스를 함으로써 상대 수비진을 조금씩 무너뜨리든, 혹은 단번에 무너뜨리든 간에 어떠한 결과든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결과들이 조금씩 또는 단번에 쌓여서 위협적인 상황를 만들기 때문이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리는 선수에게 찔러주는 킬패스가 물론 가장 위협적일 수 있겠지만, 반대쪽 측면으로 열어주는 패스도 위협적일 수 있으며, 심지어 상대 수비수를 끌어내는 백패스나 수비수가 단번에 공격수에게 전달해 주는 패스도 위협적일 수 있다. 반면, 패스를 함으로써 아무 결과도 얻을 수 없다면, 그저 시간만 끌고 볼 소유권만 유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패스라고 할 수 있다.
이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은 절반 정도의 시간을 무의미한 패스를 하며 보냈다. 한국 선수들의 패스가 무의미했던 이유는 그것이 백패스였거나 롱패스였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한 템포 늦은 패스였기 때문이다. 경기 중 선수들의 패스 타이밍을 살펴보면 미리 다른 선수를 봐두고 원터치로 패스하기 보다는 일단 발 아래 한번 잡아서 패스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상대 선수를 제낄 때에도 패스와 패스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 개인 돌파에 의존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 경기에서 나왔던 몇 차례의 결정적 찬스에서만이 이러한 원터치 패스가 나왔고, 다른 경우에는 이런 패스가 나오지 않았거나 상대에게 바로 공을 뺏기곤 했다.
이렇게 무의미한 패스가 많이 나왔던 이유는 앞서 지적했듯이 한국은 준비가 제대로 안된 반면 이란은 준비가 잘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디로 패스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 거리는 반면, 이란은 이미 한국 선수들의 패스 경로를 미리 꿰차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것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연습 부족과 이란의 전술적 준비가 잘 된 덕이었다.
6. 3-4-3 만을 고집해야 하나?
경기 중계에서 이용수 해설위원이 지적한 것과 같이 한국의 3백은 종종 낭비였다. 상대 공격수 한 명을 막기 위해 세 명의 수비수가 자리를 지키는 동안 한국의 미드필더들은 이란의 미드필더들에게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나이지리아전에서 유기적으로 포백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애초에 3백을 선 세 명의 선수들이 경기 중에 포백으로 전환하는 변형 전술을 소화하기에 적합한 구성도 아니었다. 결국 조광래 감독이 홍정호와 김영권 선수를 테스트하느라 수비 전술에 대한 준비를 너무 경직되게 가져간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어짜피 이 경기는 선수 테스트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A매치는 A매치다. 질 것을 염두에 두고 경기하려면 비공개 연습경기를 하는게 낫다. 감독은 선수를 테스트하지만 팬들은 감독을 테스트하는게 바로 국가대표 평가전이다. 이런 면에서 다소 경직된 전술을 들고 나온 조광래 감독은, 이를 미리 읽고 맞춤형 전술을 준비한 고트비 감독에게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 선수 선발의 문제점
경기 전체를 놓고 볼 때 비록 전술적인 문제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질 정도의 경기력은 아니었다. 문제는 몇 몇 선수의 컨디션에도 있었다.
기성용 선수의 경우 패스와 드리블이 늦고 전체적으로 순발력이 매우 저하된 모습이었다. 소속팀에서 경기 출전 문제로 마음 고생을 하는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축구 선수라면 언제든 출전 가능한 몸상태를 만들어 놔야 한다. 그런데 기성용 선수의 반응 속도나 폼은 국가 대표 경기에 선발 출전할만한 수준은 솔직히 아니었다. 만약 소속팀에서도 내내 이런 모습이라면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컨디션의 선수를 선발 출전시킨 코칭 스태프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후반전 교체 출전해 불과 20분만에 교체된 김정우 선수의 부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우 선수는 현재 광주 상무 소속인데 최근에 군사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선수를 꼭 국가대표에 선발해야 했을까? 그리고 선발 했더라도 출장까지 시켰어야 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석현준 선수의 경우 미래를 보고 선발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가 아직 18세이다. 19세 이하 대표팀도 있고, 올림픽 대표도 있다. 리그에서 나름 활약하는 선수들을 선발하지 않고 아직 어린 선수를 선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험으로 놓고 보자면 그는 소속팀인 아약스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입장이다.
8. 맺음말
아직 초반이기는 하지만 다음 경기는 한일전, 그리고 몇 달 후에는 아시안 컵이다. 아시안 컵이 무슨 듣보잡 대회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시안 컵 우승국은 각 대륙 우승국들이 맞붙는 컨페더레이션스 컵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협상할 필요도 없이 세계 최강 팀들과 개런티를 받으며 싸워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은 마음 편히 준비할 처지가 아니다.
이번 경기에서 조광래 감독은 유연한 전술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선수들 역시 조광래 감독의 전술에 맞는 움직임을 충분히 보여주지도 못했다. 이미 약점을 파악하고 파고들어오는 이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패배로 이어졌다.
우선 조광래 감독은 몇 명의 유망주를 빼고 다소 안정적인 선수들을 선발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중앙 수비진은 좀 더 선수들을 물색하거나 경험많은 수비수를 선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조광래 감독의 전술을 선수들이 단기간에 소화해내기가 쉽지 않아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한일전에서까지는 확실한 색깔이 안 나올 것으로 보이고 그 이후에 아시안컵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색깔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조광래 감독의 전술은 조직력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유럽파를 계속 차출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감독들 처럼 몇 경기는 국내파로, 다시 몇 경기는 해외파와 섞어서 준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 조광래 호의 앞날은 “아직 알 수 없음”이다. 분명 한국 대표팀에서 보기 힘들었던 축구를 하는 팀이다. 하지만 현재 노출된 약점, 즉 전술적 유연성이 떨어지고, 막는 방법이 정해져 있으며, 중원 싸움에 약하고, 원톱이 고립되기 쉬운 점 등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측면 윙백들이 부진할 경우 공격 활로를 찾기도 어렵고 수비도 불안해지는 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 윙백의 체력적 부담이 크다는 점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조광래 감독이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도 당분간 국가대표 축구 경기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Barry Lee
원글 링크 : http://barryspost.net/post/1909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트위터에서 관전평쓰셨다고 올리신거 보고 싸월로 왔습니다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조광래감독은 k리그감독 처럼 철저히 자기에 맞는 선수 찾아서 국대를 운영할려고 생각 하는 것같습니다..다음 월드컵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장 코앞에있는 아시안컵 생각하면 안타깝네요... 워낙 아시안컵이 중요대회이니 국대감독이라면 자기축구를떠나 단기적 대응도해야 적어도 국대감독자격이 있다고봅니다... 이번 아시안컵은 경기내용을떠나 철저히 이기는축구해서 우승하는 것 보고싶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잘 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동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전 대표팀과 비교할 때 수비시 중원의 헐거움이 더 두드러진다고 보였습니다. 하지만 전술상 수미의 부재 때문인 아니면 선수구성상 몸싸움에 능한 선수가 없기 때문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더군요. 김정우선수가 정상컨디션이었다면 중원싸움이 좀 다른 양상을 보여줬을것 같습니다.
다소... 늦었지만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늘 잘 보고 있지만요....)
큰(?!?!)경기 있은 후에는 배리님 글을 봐야 후련해지는 느낌...
배리님의 글이 왜 아직 안 올라올까 ... 기다리다가...이제야 쏵~ 후련하게 배설했네요~!
경기 후 관련된 영양가 있고 ,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축구팬들의 디맨드입니다.
배리님 글은 언제든 되도록 빨리 올라왔으면 하네요~ ^^;
물론 배리님 의견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배리님의 글만은 기다려집니다.~!